HIFICLUB, High-end Internet

예전에 처음 뮌헨 하이엔드 쇼에 갔을 때의 일이다. 모든 것이 생소하고 신기하기만 했던 시절, 눈길을 끄는 브랜드가 하나 있었다. 모양도 신선하고, 소리도 좋았다. 진공관 앰프로 이 정도 마무리면 상당히 인기를 끌겠구나 싶어서 주위를 둘러보니 한국인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 많던 수입상들이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후 브랜드 명을 확인하기 위해 기기에 다가가 상표를 살펴보고는 한 방 먹고 말았다. 에밀레. 바로 우리 브랜드였다. 수입상들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사실 에밀레보다 광우전자로 더 친숙한 내게, 20년 전 재즈에 몰두해서 클립쉬의 라 스칼라를 신주 모시듯 사용하던 무렵, 이 회사의 제품은 정말로 좋은 친구였다.

이 시기에 블루 노트, 버브, 프리스티지, 리버사이드 등의 카탈로그를 뒤지며 A부터 Z까지 다 모으자고 결심했으므로, 돈만 생기면 음반 숍이며 수입사를 달려가 창고를 뒤졌다. 그리고 한 보따리 사 갖고 와서 라 스칼라로 모던 재즈의 향연을 즐겼던 것이다. 그 중심에 광우전자의 제품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 후, 세월이 지나 이 회사의 존재는 흔적도 없이 뇌리에서 사라졌다. 그러다 객지에서, 그것도 매우 세련되고 멋진 자태로 나타났으니 그 기분은 뭐라 형용할 수가 없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에밀레는 수출에 주력한 상태였으므로, 국내에 판매 계획이 없다고 했다. 실제로 런던이나 프랑크푸르트 등에 소재한 오디오 숍에서 에밀레의 제품은 발견할 수 있었지만,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므로 쇼에서 만나 인사나 하는 정도에서 인연은 멈췄다.

한데 이번에 극적으로 해후하게 되었으니, 거기엔 흥미로운 사실이 개재한다. 최근에 발매한 아라(Ara)가 해외에서 호평을 받은 것을 계기로 광우전자 측에서 국내 판매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사실 외지(外誌) 운운하는 제품들을 가끔 볼 수는 있지만, 이번에 소개된 「하이파이초이스」라는 잡지는 2008년 2월, 필자가 직접 사무실을 방문해서 편집진과 미팅을 가진 바 있으므로, 비교적 친숙한 존재여서 할 말이 많다. 여기서 간단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광고를 개재했다는 이유만으로 호평을 내는 잡지는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기조는 「스테레오파일」이나 「앱솔루트사운드」 등 우리가 익히 아는 잡지 모두 마찬가지다. 어떤 제품을 선택해서 평을 쓰느냐는 전적으로 편집부의 몫으로 결코 사주나 광고 팀이 뭐라 터치하지 못한다. 기본적인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켜가는 것이다. 게다가 편집장이 제품을 선택해서 평을 맡긴다고 해도 해당 리뷰어는 자기 원칙에 따라 좋고 나쁨을 쓴다. 그런 면에서 이 잡지에 단순 개재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호평을 이끌어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겠다.

사실 아라가 포진한 가격대는 일종의 각축전을 방불케 한다. 가까이 중국산 제품들이 즐비하고, 일본에서도 여러 제품들을 발견할 수 있으며, 최근에 진공관 앰프의 성지로 떠오른 동구권에서도 다양한 모델들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런 여러 제품들을 듣고 어느 정도 비교 데이터를 갖고 있는 입장에서 단언한다면 아라는 아주 우수한 퀄리티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거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음질.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제품의 소리는 매우 유연하고, 디테일이 풍부하고, 감촉도 좋다. 거기에 현대적인 와이드 레인지, 하이 스피드 등 여러 덕목을 골고루 갖췄다. 즉, 진공관을 선택할 때 소비자들이 원하는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뒤에 가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기능성이다. 이 가격대에 이런 내용을 담으면 반칙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요즘 애호가들이 원하는 것들을 모두 포괄했고, 실제로 그 퀄리티도 상당하다. 거기에 상급기에 필적하는 수려한 마무리를 생각하면, 굳이 외지의 평가를 빌리지 않더라도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울 만한 것이다.

여기서 잠시 진공관 배치에 대해 살펴보자. 우선 프리단에는 6922를 사용했고, 위상반전 및 드라이버단에도 역시 6922를 사용했다. 좌우 채널에 한 개씩 사용했으므로, 총 4개가 투입되고 있다. 관심을 모으는 출력관은 흔한 KT88이나 EL34가 아닌 7591A라는 관이다. 푸시풀로 했을 때 얻는 출력이 22W에 불과하지만, 실제 스피커 구동력이 상당해서 87dB 이상의 감도를 가진 스피커라면 충분히 매칭해볼 만하다. 사실 흔하디 흔한 KT88이나 EL34를 떠나 이런 출력관의 맛을 새롭게 발견하는 맛도 각별하지 않겠는가?

한편 기능을 살펴보면, ‘진공관=아날로그’라는 등식을 깨고도 남을 만큼 디지털에 대한 배려가 충만하다. 우선 뒷면을 보면 SPDIF용 단자와 USB용 단자가 별도로 제공되는 점에 놀랄 것이다. 전자는 CDT에서 받은 신호를 내부에서 DAC 처리한다는 의미다. 그렇다. 본기에는 별도의 DAC부가 내장되어 있는 것이다. 여태 많은 진공관 앰프들을 접했지만, 이런 기능을 갖춘 예는 거의 없어서 상당히 놀랍고 또 신선하다.

그런데 여기서 DAC를 일체의 업샘플링 없이 처리하는 점이 흥미롭다. 즉, 필립스 TDA 1543을 4개 병렬 배치한 가운데, 이 칩의 성능 자체를 최대한 끌어내는 데에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현행의 DAC 기술을 보면 삭막한 스펙으로 무장한 업샘플링 계열이 있는 반면, 이렇게 일체의 손질을 가하지 않고 칩 자체의 성능에 기대하는 부류가 있다. 결론은 잘만 다루면 둘 다 좋은 음질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 후자의 경우 사운드 스테이지가 커지거나 공간을 확장하는 맛은 약하지만, 대신 안길이가 깊고, 음의 골격이 또렷해지는 느낌은 받을 수 있다. 만일 아날로그를 오래 만진 분들이라면 이런 음에 상당히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한편 USB는 전적으로 PC-Fi 애호가들을 위한 선물로서 이를 통해 입력된 신호는 PCM-2906단을 통해 SPDIF 리시버 칩인 CS 8416을 거친 후, 최종적으로 TDA 1543으로 보내진다. 즉, 간단히 말해서 PC의 신호를 어느 정도 컨트롤한 후 DAC로 전달한다는 것이다. CD에 버금가는 음질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본기의 외관은 상당히 수려하고, 시선을 잡아 끈다. 게다가 기능성도 좋다. 전면에 배치된 세 개의 노브는 각각 전원, 볼륨, 셀렉터단이며 그 중간에 헤드폰 단자까지 제공된다. 네 개의 기둥 위에 올린 본체는 상판을 덮을 경우 그리스나 로마의 신전에 온 듯한 풍모를 느끼게 하며, 그게 음악적인 열락이나 감동으로 연결되고 있다. 즉, 보는 맛도 듣는 맛 못지 않게 뛰어난 것이다.

본기의 시청을 위해 준비한 스피커는 본격적인 3웨이 플로어 스탠딩 타입인 KEF의 Q900이다. 과연 22W의 출력으로 이 녀석을 제대로 구동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첫 음을 듣고 난 후에는 그게 기우였음이 판명되었다. 소스는 처음에 네임 오디오의 CD5i-2를 이용했지만, DAC만을 듣기 위해 나중에 로텔의 RCD-1520을 동원, 트랜스포트부만 따로 사용했다. 참고로 시청 CD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야니네 얀센
-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펄만 & 아쉬케나지
- 윈턴 켈리 "Whisper Not"
- 존 콜트레인 "Bakai"

첫 곡에서 놀란 것은 빼어난 스피드. 대개의 진공관 앰프들이 어딘지 모르게 딜레이가 걸린 듯 속도 면에서 답답한 감이 있는데, 본기에선 전혀 느낄 수 없다. 무엇보다 레인지가 넓고, 투명하며, 해상도가 출중해 잘 만들어진 하이엔드 솔리드 스테이트 앰프와 같은 느낌을 전달한다. 덕분에 얀센의 바이올린엔 힘과 신선함이 넘쳐서 마치 싱싱한 어깨로 160km대의 강속구를 펑펑 던지는 느낌을 준다. 물론 곡이 가진 음영과 에스프리도 잘 포착해서, 진공관 특유의 포실함과 부드러움도 넉넉히 담아내고 있다.

이어지는 펄만과 아쉬케나지 콤비의 연주로,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역사적 만남이 갖는 완결성과 아름다움이 충분히 드러나는 재생이다. 일단 두 악기의 위치가 정확하고, 잔향이나 여운과 같이 음악성을 풍부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눈에 띈다. 또 음색 자체가 워낙 매혹적이어서 만일 좁은 리스닝 룸을 갖고 있다면 소형 스피커와 매칭해서 실내악을 만끽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하게 한다.

윈턴 켈리의 연주에선 저역의 다이내믹스가 두드러지지만, 케니 버렐의 기타가 갖는 다소 거칠면서도 블루시한 음색이나 켈리의 깔끔하면서 멜랑콜리한 연주도 각별하게 다가온다. 사실 이 시대의 모던 재즈엔 뭔가 일관된 기조가 있어서 특정 레이블 몇이 아니면 맛이 없다고 판단되어 왔다. 그러나 이렇게 신기술로 무장한 스피커로 매칭하니 별 불만이 없다. 또 본기에서 이렇게 마성적인 느낌의 재즈도 가능하다는 점에 상당히 놀랐다.

마지막으로 콜트레인을 들어보면, 무려 세 개의 관악기가 동원된 복잡한 편성이 부담스럽지만, 개개의 악기들이 갖는 음색이나 존재감이 또렷하게 포착된다는 점에서 탄복하게 된다. 마치 서로 경쟁하듯 불어 제끼는 모양새가 좋고, 빠르게 패시지하는 더블 베이스의 움직임이 적절해 연주에 단연 활기와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그런 여러 요소들을 빼어나게 분해할 뿐 아니라, 원곡이 지닌 맛이나 풍미까지 적절히 재현해서 리뷰 중이라는 사실을 잊고 그냥 음에 몰두하고 말았다.

한편 후반부엔 로텔의 CDT만 사용해서 본기의 DAC 성능도 점검해봤다. 우선 그 해상력과 완성도에 놀랐다. 분명 이 회사는 DAC와는 인연이 멀었다고 생각하는데, 이 정도 퀄리티일 줄은 몰랐다. 브람스의 경우, 디테일이나 잔향 처리 등도 우수하고, 무엇보다 음색이나 음악적 쾌감이 상당하다. 곡이 갖고 있는 시정이나 우수가 절묘하게 드러난다. 윈턴 켈리도 베이스 라인이 보다 선명하게 부각되고, 기타와 피아노가 서로 악상을 주고받는 대목이 또렷이 포착된다. 만일 갖고 있는 CDP의 퀄리티에 불만이 있다면, 과감하게 본기의 DAC를 이용하라고 권하고 싶다.

최근에 스텔로 500 시리즈나 KEF의 뉴 Q 시리즈, 오디오퀘스트의 USB, 랜, HDMI 케이블 등 가격대비 탁월한 성능을 가진 제품들이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데, 이 리스트에 단연코 아라를 추가해야겠다. 하이엔드 마켓의 경쟁이 치열한 요즘이지만, 이렇게 부담 없는 가격으로 충분히 음악적인 감동을 만끽하도록 만드는 이런 제품들의 존재는 오디오 인구를 넓힌다는 측면에서 더욱 귀중하다 하겠다.

-llhtml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