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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철학적인, 혹은 원시적 생명력이 감도는 독특한 작명으로 토템을 기억하는 오디오파일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토템의 가장 경이로운 작명은 ‘Mite’가 아니었을까 싶다). 새로운 ‘엘리먼트’ 시리즈는 불, 흙, 나무, 물, 금속 등의 타이틀을 붙였는데, 짐작하건대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리한 우주 구성 ‘원소’이론의 북미 인디안 버전이 아닐까 싶다. 필자가 지금까지 보아온 바로는, 각 이름과 사운드, 혹은 디자인 간에 별다른 상관관계는 없어 보인다. 다만, 토템의 스피커들은 왠지 《카르미나 부라나》, 《불새》 같은 원시군무 레퍼토리에 능할 것만 같았다.

 

90년대 중반, 필자의 오랜 오디오교우가 북미에서 귀국하면서 들고 온 ‘모델 원’은 필자에겐 강렬한 인상을 선사했다. 뭔가 마이너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토템’이라는 이름 자체가 그다지 진지한 분위기를 만들지 못했지만, 시청곡이 늘어날수록 생겨나는 독특한 흡인력은 그 이후에도 그 생생하고도 야무진 음색을 종종 떠올리게 만들었다. 가격에 비해 모양새가 밋밋하다는 게 좀 아쉬웠지만, 유사한 시기에 디자인으로도 크게 어필했던 노틸러스 805와 같은 제품과는 대조적으로 적당히 낯가림과 은근한 매력을 선사했다. 한 번도 메인 시스템이 되어 필자의 시청실에 자리잡은 적 없이 어느 새 ‘토템’과도 이십 년의 인연을 함께 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제품들이 어떤 기회로든 항상 필자 주변을 맴돌며 소리를 들려주었기 때문에 그 ‘인연’은 진행형이다.

 

시기적인 요청 또한 반영되었겠지만, 토템은 ‘엘리먼트’ 라인업으로 새로운 변신을 하게 되었으며 이전에 있었던 어떤 경우보다도 변화의 폭이 클 것으로 보인다. 총 5종의 엘리먼트 모델 중에서 본 엘리먼트 ‘메탈’은 최상위에 위치하는 플래그쉽 기종이다. 정면에서 보았을 때, 특유의 로고 조차 없다면 이 스피커가 토템의 제품인지 알아차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닛도 자사제로 대폭 변경되었고 구성 또한 파격적이다.

 

트위터와 두 개의 쌍둥이 미드베이스, 둘 간에는 다소 위화감이 있어 보일 정도로 사이즈나 디자인에서 서로 다른 스타일을 보인다. 아래쪽으로 가면서 좌우 폭은 증가하는데, 활짝 핀 꽃 같은 정사각형 프레임 두 개가 세로로 이어져 있으니 시선의 진행이 잠시 난처해지는 느낌이다. 최근 라인업이 다양해지면서 토템의 유닛은 다소 자유분방해진 인상이 있으나, 알려진 바 고유의 포맷이 있었다. 즉, 그물망이 씌워진 시어즈(SEAS)의 알루미늄 트위터, 그리고 유닛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지 커버로 덮힌 다인오디오 혹은 ATI 의 미드베이스 유닛 등이 토템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간혹 ‘윈드’와 같이 독특한 형태를 가진 탑엔드 기종들이 있었지만, 토템의 대다수 톨보이 기종들은 반듯하고 슬림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본 엘리먼트 메탈은 수직방향으로 사다리꼴의 패널형태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뒤쪽으로 갈수록 특정 기울기로 폭과 높이가 조금씩 줄어드는 구조를 하고 있다. 바로 아래 기종인 ‘Fire’와는 얼핏 같은 제품처럼 보이지만, 본 ‘Metal’이 키가 약간 크고 모든 유닛이 액티브로 동작한다(Fire는 아래쪽 미드 베이스 유닛이 패시브).

 

공칭 임피던스 4오옴에 91dB의 능률, 시청하기 이전에 본 엘리먼트 메탈의 스펙은 다소 호기심을 자극해 온다. 출력은 낮고 전류는 시그널이 요구할 때마다 아낌없이 쏟아 부어주어야 하는데, 게다가 트위터에 걸어놓은 간단한 필터 이외에는 아래쪽 대역에는 크로스오버를 걸지 않았다.

 

크로스오버를 생략한 두 개의 미드베이스 유닛 어셈블리에는 사실상 본 제품의 정수가 되는 내용들이 아낌없이 투입되어 있는데, 기술적으로나 물량 면에서 토템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두 개의 7인치 병렬 ‘토렌트(Torrent) 드라이버’가 그것이다. 사진으로만 보았지만, 휴대용 보온밥통 만한 자석 컴파운드와 각 네 귀퉁이를 지탱하도록 제작된 이 육중하고 강건해 보이는 7인치 유닛을 보고 있으려니 예전 ATC의 처녀작 SCM20의 미드베이스 드라이버를 처음 보았을 때가 생각난다. 이들은 아마도 자신들이 지향하는 사운드를 기반으로 일단 제작을 해놓고 보자고 달려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본 토렌트 드라이버 어셈블리는 수작업으로 7시간을 들여 제작된다고 한다).

 

그 다음에 크로스오버를 생략하든, 앰프로 해결하든 대책을 좁혀나갔을 것이고, 그에 따라 스피커의 모양도 이렇게 뒤쪽으로 소실되는 구조를 하게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폴리프로필렌 재질의 콘 프레이트는 고무재질의 에지로 접착되어 있는데, 만지고 두들겨 보면 매우 견고하기도 하거니와 특유의 탄력으로 인한 장점이 잘 살아날 것으로 보인다.

 

뒤쪽으로 길게 이어진 구조의 어셈블리 형태로 디자인된 트위터 또한 제조원을 변경해서 토템의 특주설계로 제작되었다. 알루미늄 플레이트와 드라이버 전체를 알루미늄 합금으로 제작해서 방열효과를 거두고 있다. 트위터를 덮고 있는 그릴의 중앙에 어퓨저와 같은 수지재질을 부착시킨 디자인도 기존 제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본 그릴의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청을 해 보면 기존 시어즈의 쨍하고 예리한 촉감과는 노선을 다소 달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탁 트이고 선명한 고역이지만 결이 고운 소위 ‘실키한 고역’의 전형을 보여준다. 몇 가지 장르를 시청하는 동안, 필자는 ‘싱싱하고 건강한 소리’라고 반복해서 메모를 하고 있었다. 3겹으로 도장을 했다고 하는 하이그로시 마감은 상당히 매끄럽고 하이엔드스럽다. 블랙과 아이스 화이트, 두 가지 칼라가 있다.

 

앞쪽엔 한 개의 클로(Claw)를, 뒤쪽엔 양 측면으로 두 개의 스키드(skid) 플레이트를 사용해서 지지하고 있다. 일종의 스파이크 역할을 하는 ‘클로’는 내부에 볼 베어링을 사용하고 있는 공진감쇄 효과가 뛰어난 토템 전용 고성능 트리거로서 기존의 톨보이 모델들에 채용해오고 있다. 토템의 스피커들은, 특히 톨보이로 갈수록 인클로저 자체의 두터움으로 공진을 차단하는 방식이 아니라, 바디 아웃라인의 모양새와 말단에 이런 액세서리들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불필요하게 파생되는 주파수들을 제거시키고 있다. 그래서 비트의 변화가 큰 곡을 시청할 때 인클로저를 만져 보면 자체 울림이 다소간 느껴진다. 하지만, 마치 물 속에서 막 나온 강아지가 몸을 뒤흔들어 물기를 털어내듯, 독특한 설계방식으로 진동을 소멸시킨 채로 말쑥한 울림을 들려주는 기술은 언제나 감탄스러웠다.

 

뒤 패널 하단에는 세 개의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를 배치시켰는데, 내부 구조가 파악되지 않아 정확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두 개의 포트를 가로로 두고 그 위쪽에 작은 포트를 별도로 둔 이유가 뭔지 상당히 궁금해진다. 만들고 보니 두 개로는 부족했던 무슨 이유가 있어서 추가했던가, 아니면 배출 경로를 달리한 어떤 어쿠스틱의 효과가 있던가 둘 중의 하나일 것으로 보인다. 가느다란 핀으로 점프되어 있는 두 쌍의 WBT 플래티넘 스피커 터미널은 제품의 특성상 필히 바이와이어링 연결로 시청을 해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본 엘리먼트 ‘메탈’은 기존 토템의 어쿠스틱 기술에 스케일을 입히고 사운드를 고급화시킨 제품으로 일괄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자의 분류표로 구분하자면 ‘오디오적이고 스피디한’ 카테고리가 되며, 스케일이 크고 구체적인 표현에 능하다. 원래의 장기였던 정교한 레이어링은 대역 및 양감과 함께 좀더 심화되어 있다. 뭐랄까, 이전의 북쉘프들이 20대의 자기주장이 강한 기교의 적극적인 표현이었다고 한다면, 본 제품은 무한 공력을 은밀히 즐기며 표출하고 있는 상황의 30대가 아닐까 싶다. 노골적이지 않을 뿐, 원작의 내용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하지만 매우 세련된 어조로 표현하고 있어 보인다.

 

사운드 스타일 자체가 궁금하기도 하거니와 퍼모먼스에 대한 대략의 감을 잡기 위해 아델의 ‘Rollling In the Deep’을 시청해보니, 기다렸다는 듯 거침없는 사운드를 유감없이 펼쳐낸다. 특히 중간부터 낮은 중역대로 이동하는 과정은 무서울 정도의 기세로 전개된다. 급하든 여유 있든 에너지를 더할수록 핵이 깊고 두텁게 감싸오는 베이스이다. 전 대역에 걸쳐 뛰어난 해상도가 흔들리지 않고 정확한 페이스에 실려 제시된다. 크로스오버를 거치지 않은 중역대는 이 강렬함 속에서도 보컬의 음색을 선명하게 도드라지게 하고 있다. 거칠게 몰아가지만 강약의 묘사가 드라마틱하게 대비를 이루는 속에서 청아한 보컬을 발견한다. 한가지 특기할 만한 사항은, 기존의 토템과 비교해 볼 때, 이 사이즈의 스피커가 낼 수 있는 극한의 파워핸들링을 보여주면서도 긴장을 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강렬하지만 과장하지 않고, 사실적이지만 미학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이 단순해 보이는 곡 하나만으로도 많은 좋은 점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북쉘프 수준의 리듬 앤 페이스를 보여준다는 점 또한 본 제품의 장점이다. 트윈 베이스 유닛을 가진 제품들의 난제 중의 하나로서, 30Hz에 이르는 아래 대역에서도 싱크로율 100%에 도전해야 하는 한 쌍의 베이스 유닛의 동작은 앰프와의 조화 또한 크게 작용하는 부분이다. 오디오리서치의 레퍼런스 250 모노블럭으로 드라이브한 ‘메탈’은 잠시 아래 대역을 뒤쪽 어딘가에 숨기고 북쉘프로 변신해 있다.

 

오트마 리버트가 연주하는 ‘Barcelona Nights’는 오랜만의 초여름 저녁 시간에 한 번 꺼내 들어 봄직한 곡으로서 그 탄력 넘치는 경쾌한 비트를 신명나고 쿨한 느낌으로 들려준다. 비트마다 새김이 깊고 분명하게 운행을 하는데, 부스팅의 느낌이 거의 없다. 대구경 우퍼를 가진 스피커들에서는 일반 시청공간에서는 얻어내기 어려운 정확한 리듬 앤 페이스를 구사한다. 탄력 넘치는 다이나믹스를 이처럼 구체적으로 묘사하지만, 모니터적이라는 인상을 거의 남기지 않고 음악에 몰입하게 해준다. 하모닉스를 잡아내는 장면도 극히 자연스럽다. 작은 무대를 가진 현장의 어쿠스틱에 가까운 음색이라는 생각이다. 연주자의 모습도 잘 도려내주고, 입체적인 스테이징도 뛰어난 토템의 장점이 잘 살아나서 스피커가 순간 순간 사라지고 있다.

 

한 편, 수직 위치에 따른 편차가 있어서 귀 높이에 따른 뉘앙스와 스테이징이 차이를 보인다. 가장 좋은 위치는 트위터와 같은 눈높이, 혹은 약간 위쪽에서 내려다 보는 정도의 자리에 위치한다면 베스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설계자가 권장하는 바, 본 스피커는 토우 인을 거의 주지 않을 것을 권장한다. 스피커의 간격이 대략 3미터가 넘고, 시청자와 스피커와의 거리가 그 이내로 들어오는 경우라면 토우 인을 주기 시작할 것을 권장한다.

 

미묘한 뉘앙스의 표현과 더불어 광채를 발하는 중역대가 위력을 발휘하는 곡으로서 헤레베헤 지휘의 바하 B단조 미사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이 곡에 이르러 기존의 토템과 차이를 보이기 시작한다. 기존 토템의 북쉘프들이 종종 섬세하고 정교한 표현으로 인해 공간이 비는 부분들을 만들어 내곤 하는데 비해서 엘리먼트 메탈은 유사한 정교함과 더불어 공간을 밀도감 있게 채운다는 점에서 뉘앙스를 달리한다.

 

스테이징에 있어 토템 고유의 정교함과 화려함이 가히 꽃을 피우고 있는 곡이라고 해도 좋을 만하다. 적막하고 까만 배경 위에 보컬이 서로 다른 위치에서 출현하며 물결처럼 이동한다. 무대 위의 상황이 밝게 구석구석 비추어지며 전후간 좁은 공간의 느낌도 미세하게 전달된다. 포커싱 또한 선명하다. 예전에 ‘모델 1’이나 ‘마니 2’로 이 곡을 시청할 때 그랬듯이 입김이 보일 듯한 미세한 움직임이 집합되어 움직이는 모습은 실로 감동적이다. 높은 중역에서 고역 끝에 이르는 촉감이 선명함 속에 매끄럽게 이동하고 있음을 느낀다.

 

특히 12곡 Cum Sanctu Spritu에서의 관악기와 섞여 나오는 푸가의 하모닉스는 입체교차로를 움직이며 부산하게 움직이는 자동차들의 모습을 상공에서 관찰하는 듯, 서로 다른 속도로 좌우를 이동하며 미세하게 거리가 멀어지며 초점이 흐려지는 듯한 아련한 복합 운동을 지켜 보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시그널과의 오차를 발견하기 어려운 일급의 스테이징과 포커싱이다. 음색 또한 거칠게 나타나는 부분을 느낀 적이 없다. 극히 자연스럽고 사실적이며 음악적이다.
 
성의가 없을 정도로 그저 ‘1호기’라 불리던 ‘모델 1’에서 기원한 토템은 어느새 우주의 원소들을 한데 규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 사이에 모델 1은 시그너춰 버전과 마이너 체인지 버전으로 이어져 있고, 모델 2에 해당하는 마니 2의 확장 또한 북쉘프 스피커의 영역에 눈에 띌 만큼 큰 획을 그어 놓았다. 하지만 토템은 다수의 라인업으로 가지를 치고 기업화 시키는 활동보다는 심화를 택한 것 같다. 기본적으로 대단히 신중하고 완벽주의자의 기질을 보인다. 많은 곡을 들어보지 않고도 수많은 대화를 하고 있는 제품들이 있다. 필자는 이런 경우를 놓고 표현력이 뛰어나다고 구분하곤 한다. 토템의 엘리먼트 메탈은 그런 스피커 중의 하나이다. 빠른 속도로 지나가느라, 혹은 다른 이유로 눈 앞의 상황을 압축시키고 생략하는 경우가 있지만, 본 제품은 구석에 있는 작은 점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런 능력을 강조해서 보여주지도 않는다.

 

본 제품은 필자가 그다지 탐탁해 하지 않던 토템의 모난 부분들 – 가늘게 파고드는 고역, 차가운 음색, 아쉬운 양감 등 – 을 아예 마음먹고 잘 패치시킨 제품처럼 보인다. 필자의 음성을 들은 것이 아니라, 좀더 보편적인 특성을 호소하는 오디오파일들로부터 그런 요청이 많았을 지도 모른다. 최소한 필자가 ‘윈드’에서 아쉬워했던 뭔가 스산한 기운은 이제 따뜻해져 있다. 기존 토템의 팬들, 그리고 토템에서 어떤 완벽함을 아쉬워했던 오디오파일이라면 언제고 시청을 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문제는 1000만원을 훌쩍 넘는 가격과 누구에게나 첫 눈에 환영 받지는 못할 것 같은 모양새이다. 토템은 여전히 고유의 개성을 갖고 있는 브랜드이지만, 엘리먼트 메탈의 소리에 거부감이 있다면 굳이 고가의 하이엔드를 찾아 다니는 의미를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이 제품의 소리는 상당히 사실적이면서도 감성적이라는 어려운 조화를 현실화시켰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많은 감명을 받은 간만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