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비트 PCM 블루레이
하클에서 2011년 베를린필 실베스터 콘서트 영상물 리뷰가 올라와 있네요.
시작부터 화제를 모았고, 연주내용도 참 좋습니다.
이미 2018년 이후 떠나겠다고 래틀이 선언했고, 여러가지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베를린필은 베를린필입니다. 이 영상물에서도 금관이나 타악기 소리는 대단합니다.
그런데..베를린필은 참 오디오적으로 보면 불운한 오케스트라입니다.
사실 1970년대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비록 DG의 아날로그 녹음이 상대적으로 좀 음질이 떨어지긴 했지만,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의 연주력이 왜곡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심각한 문제는 80년대 CD의 등장과 디지털녹음 도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DG는 디지털녹음기술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같은 유니버설 계열의 Decca가 이미 1978년부터 준비를 완료했던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준비가 부족했던 DG가 80년대초에 했던 디지털녹음의 품질은 끔찍했습니다. 정보량은 부족하고 혼탁하고 거칠고..
90년대초 애호가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던 카라얀 골드 시리즈(일명 카라얀 금딱지)는 역설적으로 80년대 카라얀과 베를린필 녹음의 열악한 음질을 확인하게 해 줍니다.
아바도가 부임한 89년부터 2002년까지 DG 녹음은 여전히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80년대 초중반보다는 나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4D 녹음기술은 대편성 음악에서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밸런스가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DG 음질에 대한 기대가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아바도 시대 베를린필 영상물의 완성도는 새롭게 주목할 만한 볼거리가 되었습니다. 카라얀과 베를린필 영상물들이 성부간 분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혼탁한 음질에 지휘자 중심의 답답한 카메라워크로 뛰어난 연주의 가치를 끌어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Euroarts, Arthaus, TDK 연합이 담아내기 시작한 아바도와 베를린필의 영상물은 제작진의 정확한 스코어판독에 따른 적절한 카메라워크와 DG의 음반보다 더 좋은 음질이 돋보였습니다. DVD 초창기 클래식영상물이 주로 유럽지역에서 PAL 방식 위주로 유통되던 시절부터 일부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NTSC 음악 DVD가 일반화되어 있어서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02년 사이먼 래틀이 상임으로 부임한 이후 베를린필은 발매하는 소프트의 음질 측면에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EMI의 경우 90년대가 디지털녹음 기술 측면에서 품질이 양호했습니다. 21세기 들어오면서 품질은 전반적으로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그래도 런던에서 제작되는 녹음들의 음질은 괜찮았지만, 래틀을 전담하는 프로듀서는 역대 최악의 판단력을 가진 인물입니다. 결국 래틀 부임 이후,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궁합, 정통독일 음악의 약점 등을 거론하기 이전에..래틀과 베를린필의 EMI 녹음은 형편없이 왜곡된 음질로 소비자에게 전달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팬들도 많이 가지고 있을, 사라장과 베를린필 래틀의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에프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을 들 수 있습니다. EMI의 베를린필 녹음에 대해서는 완전히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위안이 된 것은 실황녹음 DVD 및 블루레이였습니다. 야외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2004년 아테네 실황 European Concert 블루레이 같은 경우 EMI 음반에서는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좋은 음질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하늘도 무심하시지..과거부터 클래식 영상물 제작의 오랜 역사를 가진 유니텔이..HD 클래식 영상물 시장의 가치를 인식하고 Cmajor라는 회사를 별도로 설립했습니다. 이 바닥의 우수한 엔지니어들 풀은 제한되어 있는 것이고, Euroarts (한동안 Mediciarts라는 서브브랜드로 블루레이 및 DVD가 나왔습니다. 지금은 추억이 된 고품질 영상물들이 많이 나왔습니다)의 핵심인력이 대거 Cmajor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어서 아바도가 붐을 일으킨 루체른 페스티벌의 영상물 제작을 위해서 Accentus라는 새로운 레이블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Euroarts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전력이 현저하게 약화되고 말았습니다. 핵심인력이 빠져나간 Euroarts 블루레이의 품질은 처참하게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기본적인 화이트레벨 보정조차 되지 않은 영상물이 발매되기도 하고..오디오애호가들에게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블루레이의 24비트 PCM마저 기본사양이 되지 못하는 어처구니 없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2011년 래틀과 키신, 베를린필의 뛰어난 공연이 담겨 있는 Euroarts의 블루레이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16비트 PCM입니다. 마침 비슷한 시기에 RCO의 말러 블루레이가 나왔는데..업계의 표준인 24비트/48khz를 뛰어 넘는
24비트/96khz PCM이 수록되어 있고 DTS-HD 또한 96khz인데..정말 음질 차이가 하늘과 땅입니다.
클래식 음악 블루레이를 보면 2006년 공연실황부터 품질이 좋아지면서 오디오애호가들의 기대치를 높였는데..오히려 시대에 역행하는 소프트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통탄할 노릇이고..대부분의 소스가 베를린필 연주이니..
16비트 PCM이 수록되어 있는 시대역행적 클래식 블루레이 사례를 열거해 봅니다.
1) 2011년 베를린필 송년음악회 실황, 래틀, 키신 (Euroarts)
2) 2011년 베를린필 발트뷔네 콘서트, 샤이 (Euroarts)
3) 2011년 베를린필 유로피언콘서트, 래틀 (Euroarts)
4) 2010년 잘츠부르그 페스티벌, Berg, Lulu, VPO (Euroarts)
5) 2010년 베를린필 유로피언콘서트, 바렌보임 (Euroarts)
6) 2009년 베를린필 발트뷔네 콘서트, 래틀 (Euroarts)
7) 2010년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게르기에프,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6번, 파리 실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