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변일기.33

세수하러 들어간 욕실 거울 속에서 예기치 못하게 

불현듯 찾아온 서글픈 노년처럼, 올해 가을은 슬며시 

해 넘어가며 짙어지는 땅거미가 되어 내 곁에 다가왔다

집안에 새 생명 둘을 얻고 이런 저런 잡사에 신경을 쓰다 보니 

9월이 다 가고 있고, 친구들에게 인사   드리는 일도 

가물가물 꼭 총각시절 내 잘못으로 멀어진 여자친구의 

얼굴만큼이나 애매하고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어제 몇 달 읽으려 주문한 책 일곱 권이 도착해

유리감옥이란 책의 첫 몇 페이지를 넘기는데 

오래 벗하지 못한 탓인지 이조차도 어쩌면 빌려 입은 

옷처럼 불편하다. 호흡 같았던 책 읽기와도 담을 쌓고 

지내는 나태함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한달 여 집에 눌러 앉았다 추석 무렵에 

제 집으로 돌아간, 몸푼 내 작은 딸아이와 

녀의 딸아이로 인하여 몸은 파김치가 되고 

집구석조차 회오리바람 지나간 마구간 꼴이 되었다가 

이제서야 겨우 일상으로 돌아 왔다. 그나마 12월이 되면 

갓 백일을 넘길 내 손녀딸과의 기나긴 전쟁을 

치러야 할 처지이므로, 이제 막 11월 말까지 석 달에 

채 못 미쳐 짧디 짧은, 어쩌면 내 인생의 마지막 휴가 

혹은 황금기가 시작된 것이다. 황금기가 별건가

그저 몸 크게 아픈데 없고 아내와 평온한 관계를 

유지하며 음악과 책 그리고 운동으로 하루가 

저물어 준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인생의 보람을 찾는다거나

인류사회에 족적을 남길만큼의 기여와 공헌을 함으로써 

내적 희열을 얻을 방법 혹은 가능성이 내게서 

멀어져 간지 벌써 몇 해! 이제 어쩌면 사회의 

기생식물이 되어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으면 

다행인 처지가 되었지만 내 가족에게나마 

약간의 소용이 있는 존재로서 기능할 수 있다면 다행아닐까!

 

나처럼 우리 모임 게시판의 형편도 말이 아니다^^ 

매달 빼먹지 않고 몇몇이 모여 술잔과 한담이 

교차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간간히 오디오가 

저작거리로 입들을 거치기는 하지만, 부경방이 

생긴지도 1024일이면 어언 13년이니 우리 모임도 

이제 늙었나 보다. 사람이나 모임이나 세월이 가면 

늙어 피부에 주름이 생기고 근육은 위축되며 

기력이 떨어진다. 사람나이 13세면 이제 갓 피어나 

눈부실 시기이지만 동호회 모임의 13년에 이처럼 

활력이 떨어진 건 아마도 새로운 물이 흘러 들어오지 않는 

고인 웅덩이가 되어서 일 터이다.

 

여러 번 내 곤궁한 처지를 토로한 바가 있지만

오디오파일로서의 내 삶은 꽤 오래 전에 끝났고 

그 원인에 관하여 이실직고를 다시 해 보자면

귀 어두워지고 주머니가 비어가는 탓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음악에 대한 갈망과 애호가 아직 퇴색되지 

않은 걸 보면 오디오의 여러 불편한 진실에 눈을 

뜬 점도 전혀 터무니없는 분석이 아닐 듯하다

나는 때로 대안과 퇴로를 찾는 데 있어서는 꽤나 

약삭빠른 점이 있는 인물이라 스스로 짐작하고 있으니

현명하게도 지난 몇 년 악기와 음악 듣기가 그 것이며 

내 음악생활은 한층 풍요롭고 윤택해졌다.

 

오디오에 관하여 한마디 전제를 던지지 않으면 

이제부터의 내 엉뚱한 제안이 논리적 근거를 확보할 수 

없으므로 반론의 호된 돌팔매질을 각오하자.

1.    오디오기물에 집착하는 것은 소금물을 들이켜는 일과 

많이 닮아 있어 갈증의 악순환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2.    내 경험에 의하면 음악에 관한 깊이있는 이해력이야말로 

오디오루저들의 유일한 대안이자 활로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신다거나 스스로 오디오루저가 

아니라고 생각되면, 당분간 갈증을 좀 더 즐기시는 

도리밖에 없겠다.^^

 

모임이 늙어 쇠퇴해 가는 모습을 방치할 수는 없다

몸이야 어쩔 수 없더라도 하다못해 얼굴이라도 

주사바늘을 찌르거나 잡아당겨 꿰매는 방법으로 

좀 젋어질 수 없을까? 비록 예전과는 다른 모습일지라도… 

돌팔매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만끽하며

한가지 제안을 해 보자.

 

오디오 20 / 음악의 발굴과 듣기40 / 악보 및 악기공부 20 

/ 모여 떠들고 놀기20 이면 합이 100이다

비록 작은 소모임방 내에서이지만 퓨전과 짬뽕으로 

변신을 해보면 어떨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단 말도 있으니 모임이 늙어 소멸해가는 것보다는 

고통스럽지만 공부라도 하면서 명맥이라도 이어 나가는 게 

낫지 않을까! 이대로 간다면 부경방 13년을 이어온 

온라인게시판은 ‘Dust in the wind’ 꼴이 되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고인 웅덩이가 쇠퇴의 주요한 

원인이라면 열린 마당을 만들어야 하고 그 계기는 그릇에 

담을 컨텐츠의 다양성과 풍부함이 요체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건 외람되나마 앞으로 10년의 우리모임 

먹거리를 결정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추측컨대, 이번이 

온라인 장의 장래를 결정하는 마지막 기회가 되지 않을까!

 

창립일 1024일을 포함하는 10월 모임에, 13주년을 

기념하여 많이 모여앉아 새로운 변신으로 심기일전하고 

다시금 하클 지역소모임 최선임방의 책임을 되새겨 보자고 

감히 제안드리고 달리 마땅한 곳이 없다면  

내 누옥이나마 장소로 제공할 용의가 있다.

각 주제에 관한 책임자도 정하고 공부를 위해 전문가도 

초빙하는 등의 실무적 의논도 좀 해 보고…^^

 

산파의 한 사람으로, 증발해 가는 우리 터전이 

안타까워서 해 본, 그러나 오디오루저의 공허한 

한담일 뿐인 제안에 대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실지 

궁금하다.


오늘 저녁엔 친구들 모임으로 다대포 전어회 부부동반 파티다

우리 모임도 과거 야유의 아름다운 추억이 많지 않은가

새로운 컨텐츠로 새로운 친구들을 맞고 또 다른 멋진 

추억으로 아로새겨질 새 10년의 희망을 꿈꾸어보는 

아침이다. 이 순간 내 방안에는 음악이 충만하다

소리, 흠잡을 데 없다. ? 나는 Audio Loser 이니까!


친구들 모두 즐거운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