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름.2^^

시계바늘은 혼자서도 잘 돌아, 부지불식간에 시월의 마지막 밤을 지우고

11월의 첫날 아침을 가차없이 밝히고 있다. 잿빛 하늘에 점점이 박힌

푸른 조각들만 제외하면 저 어둑함을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어,

간밤의 꽤난 세찬 빗줄기로 아직 젖어있는 길바닥처럼 내 마음도 어둡고 차분하다.

용솟음쳐 일어나떨칠 기력도13시간을 넘긴 공복상태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늦은 시간까지의 붓질로 인해 우리집 화백님은 아직도 곤한 잠에 빠져 있고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음악외에는 다만 나이들어 얻은 가벼운 이명만이

내 귀를 자극하고 있다. 굳이 손을 꼽아 헤아려보니 토요일이다. 베토벤선생의

피아노음악 비창이 무겁고 흐릿한 내 방의 공기를 진동시키고 있다. 익은 소리

익숙한 멜로디이다. 빠른 리듬의 소리 그리고 음악이 나를 감싸 적시고 있다.

좀 전 일어 나자마자 밤새 잘못된 호흡으로 해서 메말라 서걱거리고 있는

목구멍을 넘긴 한잔의 물처럼

 

한순간 내 귀를 두드리는 오디오소리는 내게 머릿속에 오래 형성해 온

어떤 음향의 기억을 일깨우는 방아쇠일 뿐이니 내가 실제로 듣는 그 머릿속의

소리는 천상의 소리이다. 물리적이고 현실인 이 세계의 파동으로 이루어진

음향은 다만 기억의 재고에서 꺼내어진 어떤 이미지의 홀로그램에 불과하다.

언제부터인가 내게는 그게 진실이 되었다.

 

그새 피아노가 멎고 오르간이 그 특유의 위용을 자랑한다. 바흐다.

 

몇날 며칠을 곰곰히 생각하고 또 궁리했다. 이름하나를 조합해 내는 일이

내게는 쉬운일이 아니다. 상상력의 빈곤, 메마른 감성, 공감능력의 고갈이지만

필요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내 퇴화해 가는 회색의 뇌가 억지로

뭉쳐 밀어낸 이름 하나를 겨우 건지고 내 생각의 회로는 오래된 윈도의

블루스크린처럼 다운되었다. 더 이상 붙잡고 있어 봤자 나올 게 없을 것 같으니

부질없는 일은 그만 밀쳐두고 이 아침에 마무리를 한다.

 

소리골, 음악샘

 

아기자기하고 조그만 오솔길따라 오르는 아침의 골짜기,

이윽고 한숨돌리고 싶은 산책객의 눈에 띈 반짝이는 샘 하나.

새벽녘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목을 축였을 그 물을 푸진 손바닥으로

움켜 입술에 댄다. 차갑고 맑아 내 영혼이 정화된다. 내 지난 삶은 이를 닮았다.

힘겹게 오솔길을 올랐고, 미처 물병을 준비하지 못한 어리석음에 이제서야

겨우 한모금 갈증을 풀 수 있는 맑은 샘을 마주한 행운에 안도하고 있는

 

모두에게 좋은 느낌, 좋은 운율로 읽히지는 않으리라. 다만, 내 절실함이

빚은 여섯자 조각품이니 이를 기꺼워할 밖에

 

오랜만에 콘테스트에 출품하는 자의 설렘을 맛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