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대구 국제오페라축제]로미오와 줄리엣- 2014. 10.10(금)
어려서부터 얼마나 많이 이 이야기를 들어왔던가?
동화로 연극으로 뮤지컬로, 또 발레로는 프로코피에프가 음악을 작곡하고 수많은 안무가가 우아한 춤으로 이 이야기를 표현하여 왔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올리비아 핫세라는 아이돌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그 영화의 감독은 그 때는 잘 몰랐지만 유명한 오페라 연출가이기도 한 바로 프랑코 제피렐리였다. 최근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으로 다시 제작되기도 하였다.
위에서 발레를 잠깐 언급하기도 하였지만 음악 이야기를 좀 해보아도 많은 음악가가 이를 소재로 음악을 만들었다. 차이코프스키가 환상서곡을 썼고, 베를리오즈가 드라마틱 교향곡을 같은 제목으로 하여 곡을 쓰기도 하였다. 그리고 사라사테는 ‘로미오와 줄리엣 주제에 의한 판타지’를 그의 ‘카르멘 환상곡’과 같은 방식으로 작곡하였다.
이렇게 회자되어온 이 이야기의 출처는 알다시피 이탈리아 소설을 기반으로 한 셰익스피어의 희곡이다. 이 희곡을 읽었든 안 읽었든 이토록 많은 경로를 통하여 우리들은 이 이야기를 익숙하게 알고 있다. 이런 환상적이고 극적인 이야기에 구노(Charles Francois Gounod,1818~1893) 또한 오페라를 작곡하게 되어 10여편의 다른 오페라 중에서 가장 훌륭한 ‘로미오와 줄리엣’을 재창조하였다.
셰익스피어와 조금 다른 점은 아버지가 정해준 파리스와의 결혼 장면이 오르간 음악을 배경으로 거행되고, 마지막에 파리스와의 결투 장면이 없고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는 로미오가 죽기 전에 줄리엣이 깨어나서 잠깐이나마 두 연인이 마지막을 함께 보내는 것이다.
구노의 음악으로 우리는 ‘아베마리아’를 알고 있다. 이 곡은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의 가장 첫 곡인 C장조 전주곡을 이용한 노래이고, 그의 대표작인 오페라 ‘파우스트’는 괴테의 소설에 기반하고 있으니, 유명 작품을 음악화하는 것,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썼던 것에 도전하는 데 흥미가 많았는 지도 모른다. 나는 구노의 음악이라면 오페라도 좋지만 ‘성 세칠리아를 위한 장엄미사’를 으뜸으로 여기며 즐겨 듣는다. 그리하여 ‘신부 구노’ - 그는 이렇게 불리우기를 원했다고 한다. - 는 성과 속을 넘나들면서 작품을 썼던 것이다.
이제 다시 가을 축제 속으로 떠나 보자.
제법 쌀쌀한 날씨가 아침 저녁이면 따뜻한 불가가 그리워지는 계절이 되어 버렸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10월 10일, 11일 두 번 공연 모두 같은 캐스팅이라 첫 번째 공연이었던 ‘투란도트' 처럼 트리플 캐스팅 중 나머지 두 공연이 궁금하였던 아쉬움은 일단 없다.
오늘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테너 김동원과 소프라노 손지혜로서, 대구에서 ‘투란도트’가 공연되던 지난주에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기념하여 공연된 그대로의 프로덕션으로 다시 대구오페라축제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미 서울에서 실연 연습을 충분히 한 상태이니 대구 공연이 더욱 기대가 되었다.
일단 연출이 그야말로 ‘대박’이다. 호주 출신의 엘라이저 모신스키(Elijah Moshinsky)!
그리고 무대와 의상에는 뮤지컬 ‘라이언 킹’의 리차드 허드슨(Richard Hudson)이다. 여기에다가 지휘는 대구시향의 마에스트로 줄리안 코바체프(Julian Kovatchev)이니 스텝의 중량감이 압도적이다. 모신스키는 작년 2013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서 ‘돈카를로’를 연출하여 멋진 무대를 보여 주기도 하였다. 모신스키와 허드슨은 영상물로 나와 있는 것만 보아도 이미 98년에 팀을 이뤄서 작업을 한 경험이 있으니 두 분의 호흡은 완벽할 수 밖에 없다. 모신스키의 메트로폴리탄에서의 2001년 나부코, 92년과 96년의 오텔로 그리고 2002년 코번트가든의 일트로바토레 등을 잊지 못하기에 더욱 그의 프로덕션이 궁금하다.
그리고 2014년에 새로 부임한 우리 대구시향의 코바체프 지휘는 벌써 여러 차례 들어온 터라 친근하고 푸근하기까지 하다. 그의 스타일을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프로코피에프 교향곡 5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 카르미나 브라나 등의 레파투어를 보면 의욕이 넘쳐나고, 흔히 연주되지 않는 곡들을 실연으로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구노의 이 오페라는 말할 것도 없이 테너와 소프라노의 역할이 중요하다. 혹자는 이 오페라는 들을만한 아리아도 하나 없다고 얘기하지만 어쩌면 그건 너무 많아서 딱히 하나를 집어내기가 어렵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주인공 두 사람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그들의 기가막힌 이중창이 각 막마다 등장한다.
즉, 1막의 무도회 장면에서 Ange adorable(고귀한 천사여)로 만남의 벅찬 감동을 노래하고, 2막에서 유명한 발코니 장면의 이중창이 빛난다. O nuit divine! Jet'implore(오 신성한 밤이여! 당신께 애원합니다) 그리고 3막의 비밀 결혼을 마치고 4막에서 이른바 신혼의 장면으로 Va! je t'ai patdonne(가세요! 당신을 용서하겠어요)에 이어지는 신혼의 밤, 사랑의 밤(Nuit d'hymenee O douce nuit d'amour)을 애절하게 부르며 첫날밤과 함께 이별을 하고, 이어지는 5막에서 애간장을 녹이는 피날레 이중창 Console-toi pauvre ame(슬퍼하지 말아요, 가여운 영혼이여)로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이 4곡의 이중창만 잘 따라 가면 이 오페라 감상의 절반 이상은 섭렵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중창을 전후하여 등장하는 아리아와 조연들의 노래를 함께 들으면 된다.
1막의 줄리엣 아리아 Ah! Je veux vivre(꿈속에 살고 싶어)나 2막의 로미오 아리아 Ah! Leve-toi, soleil!(아, 태양이여, 솟아올라라!)와 1막의 맵여왕의 발라드나 3막의 로렌스신부의 노래와 계속되는 제르트뤼드와의 4중창, 스테파노의 샹송 등 주옥같은 노래들이 간단없이 이어지고 있다.
줄리엣의 나이가 14살이 아직 안되었던 것을 생각할 때, 줄리엣 역은 아무리 역량이 출중한 가수라 하여도 나이가 들어서는 관객들의 몰입을 이끌어내기가 어려운 점이 있다.
2008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롤란도 비야손의 상대로 니노 마차이제라는 25세의 약관의 소프라노가 신데렐라처럼 등장하여 줄리엣을 부르고 유럽 오페라무대에 나서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또 94년 코번트가든에서 로베르토 알라냐와 함께한 바두바의 깜짝 등장이 있었으며, 같은 해, 같은 장소에서 줄리엣을 안젤라 게오르규로 바꾸어 다시 공연하고 이 두 사람은 2년뒤 결혼을 하였다.
모신스키는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강렬한 사랑 이야기를 아름다운 시로 표현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모신스키와 허드슨의 무대는 가히 시적이고, 이 비련의 두 주인공의 사랑을 우주 저 멀리에까지 울리려는 듯 환상적이다. 그의 말을 빌자면 ‘Cosmic Blue'라고 하는 신비스런 청색으로 무대를 뒤덮고 있다. 조명을 맡은 나이젤 레빙스에게 박수를 보낸다.
모신스키는 복잡한 무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의 연출 중에서 장대하게 보이는 몇몇 작품은 무대 디자이너와의 콜라보레이션이 낳은 결과이다. 그러면서도 복잡하지 않은 무대는 극의 몰입과 인물들의 감정표현과 동선을 관객으로 하여금 보다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하여준다.
주인공 두 사람은 최고였다. 특히 로미오의 김동원 테너는 불과 3개월전에 바뀌어서 그 짧은 기간 동안 이 역할을 준비하느라 4Kg이 빠졌다는 전언도 있었다. 4막의 신혼 장면에서는 여기저기 눈물을 닦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어느새 내 눈가도 붉어지고 있다. 우리 나라 베이스의 실력은 이미 유럽에서도 인정되고 있는 터이지만 역시 저음 가수들의 기량이 가슴을 저미게 한다. 요즈음 독주회나 콘서트 공연을 가보면 독주나나 오케스트라의 역량이 놀라울 정도로 좋다. 오늘의 공연은 전술한 무대도 무대이거니와 구선구석 세세하게 신경쓴 흔적이 역력하다. 결투 장면에서는 현지에서 무술 감독까지 데려와서 연기자들을 훈련하였다고 한다.
처음 막이 올랐을 때, 오케스트라의 금관 총주 시에 불협화음이랄까 아니면 찠어지는 소리가 거슬리고 줄리엣의 고음 처리가 힘겨워 보여서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극이 진행될수록 기가막힌 앙상블을 보여 주었다. 흔히 오디오 기기는 에이징이라는 것이 필요하여서 어느 정도 장치가 열을 받아서 전자의 전달 및 흐름이 안정적으로 되는 번인( burn-in)시간이 필요한데, 그것이 공연에도 적용되는 것인가. 물론 콘서트홀도 에이징이란게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시멘트나 목재 등 건축자재가 건조되고 자리를 잡아 가면서 일어나는 경시적 변화를 말하는 것이지 이처럼 3시간 남짓의 짧은 시간 동안의 변화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아마도 관객들의 열기와 그들이 뿜어내는 열정, 그리고 감정의 무게가 깊어 가면서 공연 자체가 에이징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브라보! 브라보! 뜨거운 박수를 지면으로 다시 보낸다.
다시 10월의 두 번째 주가 지나가고 있다. 태양은 점점 그 궤도를 낮추고 있고 낮은 짧아져만 간다. 밤! - 사랑의 밤이 깊어가고 있는 것이다. 나이팅게일의 울음소리는 영원한 사랑을 재촉하는데 초로의 흰머리가 새삼스레 서글퍼진다.
종달새여! 멈추어라!
나이팅게일이여! 향기로운 어둠 속에서 밤을 더듬노라!
환영인가, 백일몽인가?
사라졌노라, 그 노래 소리는 : 나는 깨어 있는가? 자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