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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의 내놓으라 하는 평론가 중에 가장 필자의 취향에 가까운 인물이라면 아무래도 일본의 미우라 다카히토라는 분이 꼽힐 것이다. 원래 음반 관계 일을 하다가 우연히 후 노부유키라는 오디오 평론가를 알게 되면서 스피커를 바꾸고, 앰프를 올리고 하는 와중에 오디오 관계 일을 시작하다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평론가의 한 사람으로 자리잡았다. 그는 클래식도 좋아하지만 록이며 재즈에도 조예가 깊고, 빈티지 계통보다는 저역의 에너지를 충분히 갖춘 하이 엔드쪽을 좋아한다. 그 점에서 필자의 오디오관과 일치한다고 하겠다.

미우라가 처음 쓴 스피커는 굿맨의 액시옴 301이다. 그가 대학 1학년 때 오디오 애호가인 숙부로부터 물려받은 제품이다. 이후 알텍 604-8G, JBL L-300을 거쳐 후에게서 양도받은 어쿠스태트를 들은 후 전향, 잠시 어쿠스틱 에너지 AE 2를 쓰다가 와트 퍼피 계열에 안착한다. 그 후, 그는 와트 퍼피의 전도사로 나설 만큼, 이 새롭고 싱싱한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데 공헌했는데 얼마 전 불현듯 스피커를 교환했으니 그게 바로 크렐의 LAT-1이다. 당시 그가 이 스피커를 들일 때 주위에서 말이 많았다고 한다. 마침 데이빗 윌슨이 시스템 7을 내놓을 무렵이어서 바꾸더라도 시스템 7을 들은 후에 결정하는 편이 옳지 않았냐 항변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므로 필자로서는 당연히 LAT-1의 소리가 궁금했으나 불행히도 접해볼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이번에 LAT-1000으로 갑자기 진화했는데(아무래도 1이란 숫자에서 1000으로 바꾼 것이 느닷없는 기분이 든다), 지난 번 도쿄에서 개최된 오디오 페어에서 마침 미우라의 사회로 진행된 시연회에 참석할 기회를 얻었으므로 중점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크렐의 파워 앰프 에볼루션 600과 연결한 것으로 기억되는데, 매우 상쾌하고, 나긋나긋하며, 하이 스피디한 음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물론 가격적으로 시스템 7이나 8에 비해 본 기는 훨씬 높다. 소리 역시 그런 가격대까지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한 수 위라 인정할 만한 퀄리티였다. 그러나 이런 시청회라는 것이 아무래도 어수선하고, 공간도 낯설고 해서 정확한 실력을 판가름하기는 힘들다. 이번에 익숙한 하이 파이 클럽의 시청실에서 대면하게 되었으니 나름대로 감회가 크다.

본 기는 외관상으로 볼 때 그리 대형기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다가가서 인클로저를 시험 삼아 밀어봤더니 꿈쩍도 하지 않는다. 무려 122.7 Kg. 게다가 앞부분이 일반적인 커버가 아닌, 천연 고무의 그릴이 달려 있어서 함부로 만졌다간 유닛을 손상시킬 수 있다. 하이파이클럽의 시청실이 2층에 있는 관계로, 본 기를 운반하는데 무척 애를 먹었다고 한다. 무려 5명이 2시간에 걸쳐 끙끙대며 옮겼다고 하니 얼마나 무지막지한 물건인지 알 만도 하다.

그런데 스펙을 보면 더욱 경악하게 된다. 감도는 89dB로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정격 임피던스가 무려 3오옴. 파워 앰프의 구동력이 시원찮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수치다. 주파수 응답 특성을 보면 저역이 28Hz까지 내려가고, 고역은 30KHz까지 뻗는다. 대형기라고 하면 저역이 좀 아쉽기는 하지만, 청감상 그리 큰 문제는 안되고, 오히려 상쾌하게 뻗는 고역에서 꽤 쾌감이 느껴진다. 크로스오버를 300Hz 및 2.9KHz에서 끊었으므로, 보컬이나 색소폰, 첼로 등 일반적으로 중역대를 담당하는 대역의 손상을 피했다고 하겠다.

우선 인클로저 이야기부터 하자. 5년 전, 처음 LAT-1이 발표되었을 때 모두 놀란 것은 알루미늄 인클로저의 채용이다. 당시 MDF나 HDF 혹은 카본 파이버 등의 소재로 국한된 스피커 시장에서 앰프나 CDP의 샤시에 쓰이는 알루미늄을 인클로저로 채용한다는 것은 거의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이의 강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내부에 일체의 흡음재를 넣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교묘한 만곡 형태의 형상에 줄무늬를 가함으로써 스피커 드라이버로부터 나오는 막대한 에너지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도록 마무리했다.

물론 단순히 알루미늄을 채용했다고 해서 저절로 이런 결과가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옆면, 배플, 내부 단면 등의 재질이 다르다. 옆면에 6063-T5를 채용했다면, 배플에는 6061-T6를 사용했고, 내부에 설치된 단면들은 0.75인치~1.5인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두께를 변화시켜 튜닝을 했다. 뒷부분에는 세로 방향으로 주름(gather)를 가늘게 새기고 또 완만하게 곡선을 줘서 고역의 회절을 감소시켰다. 내부에는 중고역 챔버와 베이스 챔버를 철저하게 독립, 서로 다른 설계로 마무리지었다.

이어서 유닛을 보자. 본 기에는 3개의 우퍼, 2개의 미드 레인지 그리고 한 개의 트위터로 구성되어 있다. 유닛의 사이즈나 구성은 전작과 동일하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역시 막대하게 투입한 R&D의 효과가 드러나고 있다. 우퍼부터 보면 본 기를 위해 스캔스픽이 특별 개발한 8인치짜리인데, 특히 0.8mm 두께의 캐스트 알루미늄 콘을 채용한 것이 눈에 띤다. 알루미늄 소자의 우퍼는 스피디한 반응에 매우 유리해서 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추세로 에벤X5나 조셉 오디오의 펄 등에서도 역시 발견할 수 있다.

콘 표면은 흑색으로 아노다이징 처리를 해서 분할 공진을 방지하고 있고, 스파이더는 고분자 응고 처리로 강화한 두께 0.3mm의 특수 섬유를 사용했다. 그럴 경우 큰 진폭에도 전혀 흔들림 없이 유닛을 지지하게 된다. 에지는 천연 고무에 가장 가까운 스틸렌 부타디엔계 고무를 채용했고, 자기 회로는 강력한 스트론튬 페라이트 마그넷을 탑재했으며, 이를 7mm 두께의 알루미늄 다이캐스트 프레임으로 감쌌다.

미드레인지는 5.25인치짜리로 두 발이 쓰였는데, 콘 다이어프램에 얇아도 쉽게 휘어지지 않는 마그네슘을 채용했으며, 이의 표면을 흑색 아노다이징 처리한 가운데 에지를 천연 고무로 해서 공진이 없는 높은 리니어리티를 얻고 있다. 자기 회로가 무척 강력해서 이 사이즈로는 상상하기 힘든 6개의 네오디뮴 마그넷으로 된 독특한 헥사 다인 마그넷 시스템을 탑재했다. 페라이트 마그넷의 1/10 크기지만 성능면에서는 오히려 앞서, 콘 배면의 음압 반사를 격감시키는 효과를 얻고 있다.

마지막으로 트위터는 스캔스픽이 자랑하는 링 돔 트위터를 최상급 모델로 채용했는데, 1인치 구경의 링 소프트 돔 다이어프램을 구동하기 위해 대구경 1인치 보이스 코일을 동원했다. 이것을 두꺼운 알루미늄 페이스 플레이트에 마운트, 초고역 재생에 무리없이 대응하도록 했다. 특히, 기존의 버티컬 트윈 스타일에서 탈피, 두 발의 미드레인지를 근접 배치한 위에 트위터를 놓는, 정통적인 스타일로 변화한 것이 눈에 띤다.

한편 크로스오버는 우퍼/미드레인지/트위터 등에 하나씩 설치한 점도 특이하고, 두꺼운 4온스의 유리 에폭시 기판을 채용한 점도 흥미롭다. 물론 최고급 인덕터와 코일 등을 동원, 앰프 메이커로서의 명성에 걸맞는 회로를 완성하고 있다. 또한 믿음직스런 스파이크를 댐으로써 진동에 대응하도록 한 마무리는 기본 중의 기본. 그러고 보면, 이 5년 동안 크렐이 얼마나 공을 들여 다음 작품에 대비했는지 충분히 납득이 가는 개량과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다 하겠다.

문제는 소리인데, 여기엔 쓸 말이 좀 있다. 도쿄 오디오 쇼에 동원된 크렐의 에볼루션 600은, A 클래스 방식으로 8오옴에 무려 600W나 되는 출력을 자랑한다. 거대한 모노 블록 형태로 구동하지 못할 스피커는 없어 보일 정도. 전술했듯, 본 기의 임피던스는 3오옴. 그러므로 대략 1,200W 이상의 출력을 공급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번 시청에 동원된 앰프는 독일 ASR 앰프다. ASR은, 인티 앰프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프리와 파워부에 별도의 전원 장치를 장착, 본체를 포함 총 4개의 블록으로 만들어진 초호화 사양의 앰프다. 당연히 스피커 드라이빙 능력도 뛰어나고, 정보량이나 스피드 등에서 웬만한 초 하이 엔드 제품에 뒤지지 않는 실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과연 크렐 LAT-1000과의 매칭이 어떨지 기대를 하며 첫곡을 걸었다.

첫곡으로는 비틀즈의 "Love"라는 음반이 잡혔다. 최근 라스 베거스에서 인기몰이중인, 오리지널 비틀즈의 음원을 새롭게 편집한 뮤지컬 음반이다. 당연히 최신 리마스터링 기술이 총동원되어, 현저하게 예전의 음과 차이가 난다. 그 음부터 듣기로 했다.

이래서 고른 곡이 "Get Back". 우선 베이스와 킥 드럼의 표정이 다르다. 마치 서브 우퍼를 별도로 추가한 듯, 저역이 바닥 깊숙이 내려가며 스피디하게 펀치력을 과시한다. 이렇게 민첩하고 준민한 저역을 들어본 것이 과연 얼마만인가 ? 사실 모든 스피커 제작자들의 고민은 저역이다. 어느 선에서 멈춰야 할 지 늘 설계와 튜닝 과정에서 씨름을 한다. 저역이 1Hz씩 내려갈 때마다 지옥이 가까워진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이 스피커, 지극히 태연하게 초저역까지 훌륭히 소화해낸다. 이전의 시청이 무색할 정도로 자유분방하고, 낭랑하다. 드디어 이 LAT 1000이 노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두 번째로 선택한 곡은 팻 메스니의 "The Way up". 초반의 웅성거림이나 클랙션 소리 등이 나는 대목에서, 그 음장이나 스테이지가 다르다. 이어서 걸리버의 거인이 내리치는 듯 바닥을 퉁퉁 쳐대며 킥 드럼이 기세좋게 나타나는데,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이제 저역에 대한 의문은 사라졌다. 그럼 고역은 어떤가 ? 에어리하게 공간을 수놓으며 각종 악기들이 촘촘히 정렬한 채 연주에 임하고 있다. 손을 뻗으면 기타 줄이 만져질 만큼, 적절한 통울림을 동반한 스틸 기타줄의 차가운 금속성이 전해져 온다. 팻 메스니가 직접 공연하러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에어리 하이(airy high)란 용어은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일 것이다.

이어지는 조피 무터의 "카르멘 환상곡". 처음부터 쏟아지는 오케스트라의 양감이며 스테이징이 심상치 않다. 이어서 유유하고 에너제틱하게 몰아치는 바이올린의 보잉. 남성적인 근육질이 적절히 붙어있는 그녀 특유의 활기가 묻어나오는데, 그 기세가 대단하다. 특히, 고역으로 치솟을 때 절대 음이 가늘어지거나 가냘프지 않다. 일류 투수들의 공은 스피드에 상관없이 홈 플레이트에서 한번 꿈틀거린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일류 바이올린 주자들의 손 끝에는 나름대로의 꿈틀거림, 이른바 손맛이 있다. 그 대목이 여기서 포착된다. 대단한 광경이다.

이제 결론을 내자. 댄 다고스티노가 만일 이 글을 읽는다면, 이 조합을 한번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LAT 1000의 가능성이 충분히 발휘된 본 조합의 음은,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설계자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는 이 음에서 필자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앰프나 만들지 왜 스피커까지 넘보나 하고 의문을 표하는 분들이 있다면 성급한 판단을 자제하기 바란다. 댄은 결코 구색 맞추기 용으로 본 기를 제작한 것이 아니다. 그 역시 훌륭한 스피커 제작자인 것이다.

- 이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