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니우스 9200SE 인티엠프
‘반지의 제왕'의 배경으로 익숙해졌을지는 몰라도, 하이파이 매니아들에게 있어서 뉴질랜드는 오디오에 있어서 제 3 세계에 속한다. 그런데 이렇게 변방에서 만들어진 제품들은 서럽다. 비단 국내의 상황만은 아니겠지만 매니아들은 똑같이 처음 보는 브랜드라도 미국이나 유럽의 몇 나라와 같은 오디오 강국에서 만든 제품들과 제 3 세계에서 건너 온 제품들을 차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정받는 경우는 드물다.
브랜드의 지명도가 낮은 제품이 가진 우수한 면들은 애호가들이 주의 깊게 보지 않아 묻혀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 반면, 어쩌다가 발견된 작은 결점은 제품 이미지에 치명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플리니우스는 성공했다. 오디오 강국들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서도, 그리고 특히 보수적인 국내에서도 확고한 브랜드 인지도를 이루어 낸 것이다. 주위에 오디오를 좀 안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플리니우스를 알고 있다. 물론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타제품과 차별화되는 성능에 매력을 갖춘 알찬 제품, 그리고 지속적인 홍보가 있었음은 당연하다.
이번에 리뷰하는 제품은 인티 앰프 9200SE. 이전에 소개되었던 9200과는 동일한 외관을 가졌으며 단지 밸런스 입력이 추가되고 스피커 단자가 변경된 제품이라고 한다. 채널당 200W라는 적당한 출력. 헤어라인 가공된 알루미늄으로 만든 새시는 어느 곳을 보아도 흠잡을 곳 없이 깔끔하고 단정한 인상이다. 두터운 통알루미늄을 구부려서 만든 독특한 외형은, 일반 사각 패널 여섯 장을 육면체 형태로 만든 일반적인 새시보다 강성이 큰 좋은 구조.
물량 투입을 극대화하여 성능을 향상시키는 대부분의 하이엔드 메이커와는 달리, 물량투입은 비슷하더라도 구조에 변화를 주어 강도를 향상시킨 것이다. 아무래도 가격이나 투입 물량에서 제한이 주어지게 마련인 중간 가격대의 인티 앰프에서 이런 참신한 아이디어는 분명히 타제품들보다 돋보인다. 한편 뒷면과 아랫면, 그리고 내부는 모두 푸른색 칠이 입혀져 있는데, 디자인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떨림을 잡기 위해 트랜스를 니스 통에 담가 두었다가 사용하는 것이나 새시 내부에 고무 같은 재질을 클래딩하는 것과 동일한 이유, 즉 높은 주파수의 진동에 대비하기 위한 배려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 역시 두터운 패널과 무거운 새시로 진동에 대처하는 다른 메이커들과는 차별화되는 플리니우스의 참신한 아이디어. 이런 것들을 보면서 아마도 플리니우스가 골드문트와 같이 기기의 진동에 진지하게 연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곡면으로 가공된 앰프 앞 패널은 볼륨과 로터리 셀렉터 두 개만 장착된 지극히 심플한 디자인이다. 특히 소스를 선택하는 셀렉터와 녹음용 출력 셀렉터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인데, 설명하자면 턴테이블이나 튜너를 들으면서 동시에 CD의 음을 테이프에 녹음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이 기능은 오래된 앰프에서나 볼 수 있는 것으로 최근 앰프에서는 찾기 어렵다. 요즘 앰프들을 보면 아예 녹음용 출력 단자를 갖지 않는 앰프들이 대부분. 리어 패널을 보니, 역시 테이프 입출력이 두 조씩이나 구비되어 있어서 녹음을 즐기는 애호가들에게는 반가운 제품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특히 이 앰프에는 상당히 공을 들여 만든 충실한 포노단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역시 요즘 앰프에서는 찾기 어려운 것으로, 이런 기능으로 보자면 마치 십 수 년 전에 생산되었던 앰프를 보는 것 같다.
톤 컨트롤이나 베이스 컨트롤이 장착되지 않은 것만 다른데, 이는 물론 음질적인 측면에서 배제되었을 것이다. 라인 입력단은 모두 세 조가 마련되어 있다. SE 버전에서 새로 추가된 밸런스 입력 한 조와 언밸런스 라인 입력 두 조. 또한 9200SE를 프리앰프로 사용할 수 있도록 언밸런스 프리 출력 단자를 장비했다. 이외에도 프로세서 연결 단자가 보이는데, 이퀄라이저처럼 프리와 파워 앰프 사이에 연결하는 다양한 기기들을 인티에서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볼륨과 뮤트만을 지원하는 리모컨은 속칭 ‘흉기 수준'. 길고 무거워서 포졸의 방망이를 잡는 기분이다. 하지만 알루미늄 압출재로 만들어져 매우 고급스러운 인상. 이 앰프의 외관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오래 전부터 앰프에 있어야 기능들을 빼놓지 않고 단순하고 우직한 새시에 모두 담은 정석적/전통적 디자인으로 소박하고 단정해서 오래 보아도 싫증날 것 같지 않다. 튀는 부분을 찾기 어려운 무난한 디자인으로 대부분의 애호가들에게도 호평을 받을 것 같다.
CDP에는 노스스타 192 CDT와 익스트리모 DAC, 스피커에는 마르텐 듀크를 연결하고 소리를 들어 보았다. 가장 처음 들은 음반은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 각 한 대씩, 하지만 단출한 악기 구성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하기 어려운 화려한 소리가 훌륭한 음질로 녹음된 필자의 애청반 페피노 디아고스티노와 스테프 번스의
리키 리 존스의
에지 오/미네소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스트라빈스키의 <불새/봄의 제전>에서는 적극적으로 대쉬하는 듯한 강력한 투티가 통렬하다. 저역이 단단해서 조금 더 느긋하게 여운이 퍼졌으면, 한편으로는 시청 스피커가 북셀프임을 잊고 초저역이 더 깊이 내려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금관은 세밀한 질감보다는 에너지를 어필하는 쪽으로 화끈하며, 원색의 색채감을 느끼게 한다. 소리가 부드럽고 넉넉한 소스기기나 스피커와의 매칭이 좋을 것이라고 판단되며, 기본기를 충실히 갖추고 있는 만큼 케이블이나 액세서리를 적절히 활용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구동력은 충분하다는 인상으로 울리기 어렵다는 스피커라고 하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 올린 음반은 브라질 출신 에그베르투 지스몬티가 아마존 정글에서 생활하며 얻은 영감으로 만든 명작
중저가의 하이파이 제품들이 AV 시장에 잠식되고 음반사마저 경영난을 겪고 있는 요즘, 처음 오디오를 시작하는 애호가들이나 중간 가격대의 제품들을 원하는 애호가들이 믿고 선택할 만한 제품들은 점점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플리니우스는 귀하고 고마운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제품군에는 지독하게 값비싼 물건보다는 보통 애호가들에게 적당한 가격을 가진 중간 단계의 제품들이 많다. 플리니우스가 단시간 내에 브랜드 지명도를 크게 높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러한 틈새시장을 노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의 제품이 일정 수준 이상의 성능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면 아무리 경쟁자가 없는 틈새라고 하더라도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