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해묵은 논쟁을 다시 테이블에 올려놓아 보자. 과연 프리앰프라는 존재가 필요한 것일까 ? 소스의 메인이 CD가 되면서 불륨단을 갖춘 CDP내지는 DAC가 등장, 이런 논쟁이 시작된 것이 10여 년 전쯤의 일이다. 신호의 선도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CDP와 파워 앰프의 직결이 갖는 이점은 분명히 있다. 특히, 양질의 볼륨단을 채용하고 있다면, 경비 절감이라는 또 다른 변수도 개재해 굳이 프리앰프를 시스템에 도입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물론 아날로그를 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그러나 이런 논쟁은 역으로 프리앰프의 발전을 촉진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생존의 위협에 처한 마당에, 내놓으라는 앰프 메이커들이 손가락이나 빨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특히, 프리앰프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이 볼륨단인데, 이 부분에 대한 개선이 신속하게 이뤄지면서 거의 신호를 손실하지 않으며 프리앰프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술력이 대두된 것이다. 예를 들어 다질의 경우, 일체의 스위치나 저항, 콘덴서 등을 거치지 않는 신호 체계를 구축, 볼륨단에서 한 획을 긋는 업적을 이룩한 바 있다. 또 DD 컨버터 상에서 볼륨 조작이 이뤄지는 디지털 프리앰프의 등장도, 어쩔 수 없이 전체 시스템에서 프리앰프가 차지하는 비중을 인정한 경우라 하겠다.

필자는 디지털 프리앰프가 단순히 볼륨 컨트롤이나 담당하는 기기인 줄 알았다. 디지털 도메인 상에서 프리의 기능이라는 것이 거의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그러나 정작 이 프리를 거친 음과 거치지 않은 음을 비교해보니, 과연 수긍이 갔다. 역시 전체 시스템의 음이 안정이 되고, 음장이 확장되면서, 듣기 좋은 음색으로 마무리되는 점에서 프리앰프의 존재를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신선하고 질이 좋은 고기를 구웠다고 해도 소스를 찍어야 제 맛이 나듯, 프리앰프의 역할은 이런 미묘한 부분에서 전체 시스템의 퀄리티를 좌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추천할 만한 저가의 프리는 드물다. 이런 프리를 구해서 들어보면, 차라리 직결이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허망한 경우가 많다. 우선 소스에서 나오는 음성 신호의 상당 부분을 잡아먹거나 왜곡하고, 과장한다. 컬러링이 심한 경우, 바이올린이 첼로로 들리거나, 여가수의 음성이 중년 남성으로 둔갑하는 수도 있다. 어떤 프리는 시스템 전체에 장막을 드리운 듯 어두컴컴해서 해상력으로 말하면 악단의 반쯤은 자리를 비운 듯한 이색 체험(?)도 제공한다. 누군들 프리의 미덕을 모르겠는가마는, 이런 현실은 암담하다 못해 참혹하기까지 하다.

이런 상황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스와니 양스의 모델 120이라는 프리앰프는, 가뭄의 단비와 같은 존재다. 필자가 이 제품을 평할 때, “0” 하나 정도를 가격표에 붙여도 좋은 제품이라 쓴 기억이 있다. 과장이지만, 납득이 갈 만한 퀄리티라는 점은 분명하다.

본 기의 핵심 설계 컨셉은 “DC 앰프 타입”이라는 점이다. 이는 기존 프리앰프들이 사용하는 커플링 콘덴서를 배제한 설계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의미다. 사실 이 커플링 콘덴서는 일종의 필요악으로, 잘 쓰면 약이 되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된다. 무엇보다 각각의 콘덴서가 갖고 있는 특유의 컬러레이션이 있으므로, 음색면에서 잘만 튜닝하면 성공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만일 이런 커플링 콘덴서를 사용하지 않고 DC 앰프 설계를 채택할 경우, 숙명적으로 일정한 보호 회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숙제가 따른다. 외부에서 DC 전압이 유입될 경우 시스템에 상상하기도 싫은 악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보호 회로를 채택해도 음질상의 열화나 왜곡을 피하기가 쉽지 않다. 1천만 원 이상 가는 유명한 프리앰프들이 DC 앰프 타입이 갖고 있는 장점을 채택하면서 바로 이 부분에 대한 고안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스와니 양스 역시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반 년 이상을 소비했다고 하니, 그 고충이 얼핏 이해는 간다. 그런데 음질적으로 보면, DC 앰프 타입이 잘만 설계할 경우, 커플링 콘덴서를 사용한 제품보다 우위에 놓일 수가 있다. 우선 왜곡이 적고, 컬러레이션이 없으며,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본 기가 가격대비 성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런 DC 앰프 타입이 갖는 장점을 잘 수용했기 때문이다.

본 기의 전면 샤시는 매우 슬림하다. 손으로 들어서 올려봐도 그리 무겁지는 않다. 그러나 내부가 텅 비었나 하면 그렇지는 않다. 우선 중요한 볼륨단부터 보자. 프리앰프에서 볼륨단이 차지하는 비중은 50% 이상이다. 전체 시스템을 두고 봐도, 이 볼륨단이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작지 않다.

최근 필자가 다질의 프리나 골드문트의 디지털 프리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이런 볼륨이 치명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임피던스 값을 적절하게 극복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볼륨의 조작에 따라 임피던스가 커지거나 작아지게 되고, 그게 음질 열화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이들 제품들은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본 기는 여러 제약 속에서 이 부분을 적절하게 커버했다고 평가할 만하다.

본 기에 투입된 볼륨단은 일본 알프스사의 오디오 전용 전동 볼륨으로, RK25 시리즈다. 가격대비 성능이 매우 뛰어난 볼륨으로 알려져 있다. 하긴 알프스사는 볼륨만을 전용으로 생산하는 메이커이니, 어느 정도 퀄리티는 갖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가격적인 면이 허락하는 한, 최상의 선택이 아닐까 한다. 한편 셀렉터단의 설계도 충실한데, 전면에 4개의 입력 버튼이 있고, 이게 시그널용 은도금 릴레이로 구성되어 후면의 RCA 입력단에 바로 연결되어 있다. 신호 경로도 짧고, 릴레이의 동작도 정교하다.

여기에 30W급의 전원용 고급 토로이달 트랜스를 투입한 점이나, 4,700uF급 전해 콘덴서 8개를 병렬 접속하는 등, 전원부 설계에 큰 배려를 했음을 알 수 있다. 주파수 대역도 상당해서 5Hz~300KHz를 커버한다. LP나 SACD의 넓은 다이내믹 레인지에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는 스펙이다. 참고로 본 기에 제공되는 리모콘은, 후에 개발될 CDP나 DAC를 염두에 뒀으므로, 그 운용의 폭이 상당히 넓다 하겠다.

시청을 위해 준비한 시스템 중 우선 스피커는 필자가 자주 사용해서 익숙한 하이페리온의 HPS-968을 동원한 가운데, 파워는 오디오 리서치의 V110, CDP는 심오디오의 문 CDP다. 원래 968은 많은 출력을 내는 파워 앰프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에는 분위기도 바꿀 겸해서 과감히 V110을 동원했다. 이 파워는 6550을 채널당 4개씩 동원해서 무려 100W를 내는 괴물이다. 당연히 저역 핸들링이 좋아, 스피커로서는 차고 넘칠 만큼 어마어마한 출력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CDP를 문으로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본 기가 가격대비 말도 안되게 CDP의 성능을 가리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좀 가격이 싼 것을 붙였다가 영 소리가 나오지 않아 이런 저런 CDP를 물리다 결국 문으로 왔다. 그러자 해상력이 높아지고, 자연스러우면서 품위가 있는 음이 나왔다. 본 기가 싸다고 아무 기기나 연결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셈이다.

첫 곡은 롤링 스톤즈의 이다. 71년도 스톤즈의 작품으로, 믹 테일러의 기타 솔로가 일품인 명곡이다. 과연 대역이 넓고, 해상력이 출중하다. 특히, 바닥을 치는 킥 드럼의 어택은 한번도 968에서 들어보지 못한 소리고, 강렬한 발성의 보컬이 주는 거친 맛이나 이펙트를 머금은 기타의 톤 등에서 특유의 야성이 풀풀 묻어난다. 이어서 FIM의 수퍼 사운드 3집에 수록된 을 보자. 인트로 부분에서 확산감 넘치게 전개되는 오케스트라의 음향이 인상적이고, 브라스군의 기세는 하늘을 뚫을 듯하며, 중간에 등장하는 팀파니의 울림은 시청실 공간 가득 울려 퍼진다. 한 마디로, 소스의 정보 모두를 일체의 누락 없이 펼치면서 자연스런 톤으로 승화시킨다. 악단이 기세 좋게 춤을 추며 공간 전체에 엄청난 음을 쏟아내지만, 결코 쏘거나 혼탁하지 않다. 양질의 시스템 조합이 낼 수 있는 멋진 하모니라 하겠다.

마지막으로 에바 케시디의 를 듣는다. 다소 물기를 머금은 촉촉한 그녀의 음성이 선명하게 손가락으로 튕기는 어쿠스틱 기타의 반주를 받으며 곱게 흘러나온다. 호소력이 강하고, 임팩트가 있지만, 전체적인 음향이 자연스럽다. 문득 눈을 감으면 그녀가 녹음하고 있는 당시의 공간으로 가는 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다. 과연 처녀작으로 이 수준의 프리앰프를 만들었다면, 앞으로 적절한 부품 투입과 개량으로 어디까지 올라갈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업 그레이드 버전을 벌써부터 기대하는 것은, 추리소설의 결말부터 읽는 성급함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현재 설계자는 젊지만 그 노련한 음 조성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물론 이보다 뛰어난 프리를 열거하자면 당장 열 개 이상은 나올 것이다. 그러나 가격대비로 말한다면 그간 모아둔 오디오 잡지 모두를 뒤져도 딱히 찾을 수 없다. 그 정도로, 이 프리가 가진 미덕은 폭발적이라 하겠다. 그래서 필자는 이 제품을 “타이니 매직 박스”(Tiny Magic Box)라고 부른다. 쓰면 쓸수록, 정감이 가고, 만족도가 높아진다. 요즘처럼 불황일 때, 분리형으로 가고는 싶지만 적당한 프리가 없어서 답답한 분들이 있다면 주저 없이 호주머니를 열어도 좋을 제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