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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슨에 관한 궁금증 몇 개

대체 하이엔드 오디오라는 용어는 언제부터 생겼을까? 정확한 연대는 추정하지 못해도, 70년대 중반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마크 레빈슨, 크렐, 제프 롤랜드 등 신흥 브랜드가 출현하면서 본격화한 것은 분명하다. 이후 다양한 스피커 메이커들의 등장도 눈길을 끄는 바, 윌슨 오디오, 아발론, 틸, 마틴 로건 등을 꼽을 수 있다.

확실히 이전 제품들과 차이를 보이는 퀄리티에 폭넓은 사운드 스테이지, 깊은 트랜스페어런트, 놀라운 하이 스피드 등 지금도 통용되는 개념들을 들고 나왔다는 점에서 100년 남짓한 오디오사에 큰 획을 그은 것이 사실이다.

이제 짐 틸이 사망하고, 초기 하이엔드의 거장들이 회사를 매각하거나 은퇴 시점에 다다른 지금, 아직도 정력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데이빗 윌슨의 존재는 그러므로 각별할 수밖에 없다. 신제품 런칭 관계로 한국을 방문했으므로, 간단히 인터뷰를 정리해본다.

인터뷰어 하이파이클럽
인터뷰이 데이빗 윌슨

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벌써 4년의 세월이 흘렀군요.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지난 번 인터뷰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이번에 방한한 김에 인터뷰를 한다고 해서 내심 기대를 했습니다.

우선 윌슨 오디오를 둘러싼 루머부터 해명해주시죠. 일설에는 이제 현역에서 은퇴하고, 회사는 다른 분에게 넘겼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미소지으며)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얼마 전, 가족들과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상의한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건강하고 또 충분히 여행도 다닐 수 있는 만큼, 은퇴할 시기는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현재 회사에 몇 분이 근무하고 있습니까?

약 50명 정도 됩니다. 그 중 R&D 파트에 3명이 있습니다. 저는 인력을 선발할 때 무엇보다 이 일을 사랑하고 열정이 있어야 하며, 적어도 나보다 나은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윌슨 씨보다 나은 인물을 뽑는다니, 정말 상상이 가지 않는군요. 그럼 신제품을 개발할 때엔 R&D 팀과 같이 시작합니까?

최초의 착상이나 디자인 등은 제 손에서 먼저 이뤄집니다. 스케치를 하거나 진흙으로 형태를 만들어본 다음,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된 시점에서 R&D 팀과 일을 시작합니다. 현재 이 팀은 제 아들 대럴이 매니저로 총괄하는 가운데, 메커니컬 엔지니어와 전기 전자 엔지니어 한 명씩 모두 세 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두 명의 엔지니어는 상당한 기술력을 갖고 있으리라 짐작되는군요.

맞습니다. 메커니컬 쪽을 보면 각종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CNC 머신 등을 다룰 수 있고, 다른 한명은 전자 계통에서 모르는 게 없을 정도죠. 이들과 일하면 언제나 자극을 받고, 또 즐겁습니다.

이제 R&D 팀과 합의가 되면, 그 후에는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요?

이 부분에서 꼭 언급할 것이 드라이버입니다. 우리는 항상 드라이버를 개발하고 있어서, 신제품 생산과는 관계없이 늘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 제품을 만들기로 하면, 일단 드라이버부터 선별합니다. 그 후, 역시 계속 연구중인 인클로저 소재의 선택에 들어가죠. 그 다음,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프로토 타입을 만듭니다. 이때 소리를 들어보면 모든 계측에서는 완벽함에도 불구하고 늘 실망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역시 사람의 감성이나 느낌이 담겨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다시 수정하고 또 테스팅을 반복해서, 음악적인 감동을 전달할 수 있는 기기로 완성시키는 것이죠. 제가 25년 이상 이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은, 계측은 계측일 뿐이다 라는 점입니다. 계측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스피커 제작에 있어서 전부는 아니다, 라는 것이죠.  

그 말씀,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한데, 윌슨의 제품은 대부분 하나의 모델이 만들어지면, 이후 계속 개량해서 그 컨셉을 발전시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또 신제품을 들어보면, 어떤 형태로든 발전된 부분이 발견되어서 탄복하게 되죠. 그 이유가 뭔지 궁금합니다.

자기 일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아닐까요? 예를 들어 당신의 경우 재즈 애호가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평소에는 여행이다 집필이다 바쁘고 또 피곤할 것입니다. 하지만 재즈 클럽에 가서 연주를 듣는다고 하면 바로 힘이 나고 또 즐겁지 않겠어요? 바로 그런 것이죠. 어떤 발상이나 아이디어를 갖고 계속 달려들다 보면, 어느 순간 전환점이 옵니다. 그때 뭔가 짜릿한 느낌이 오죠. 그런 순간을 좋아합니다.

그런 기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또 저는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좋습니다. 테이블을 둘러싸고 직원들과 둘러 앉아 회의도 하고 또 잡담도 나누는 일이 즐겁고, 해외 디스트리뷰터나 딜러들을 만나는 일도 재미있습니다. 바로 열정이 있기 때문이죠. 저희 회사엔 출퇴근할 때 왕복으로 무려 100마일 이상을 달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매일같이 100마일 이상을 길에서 보내는 것이죠. 그게 바로 열정 아닙니까? 이런 사람들과 일하는 만큼, 제 자신이 참 좋은 환경에서 근무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새롭게 내놓은 사샤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이전의 와트 퍼피 시리즈와 무엇이 크게 달라졌나요?

우선 중고역 챔버에 들어 있던 크로스오버를 끄집어 내, 아래 우퍼부 상단에 넣었습니다. 그럴 경우, 특히 미드레인지 쪽에 공간이 넉넉해져서 충분히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있게 했죠. 참고로 우퍼 쪽 크로스오버는 하단에 위치시켰는데, 아무래도 인덕터의 부피가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가서, 그렇게 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드라이버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중고역 드라이버는 맥스 3에 쓰인 것을 도입했고, 우퍼의 경우 자기 회로가 두 배나 더 강력해진 것을 사용했습니다.

사샤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일 만한 내용이군요. 그렇다면 인클로저 재질도 다르겠군요.

알다시피 우리는 새로운 소재를 사용해서 인클로저를 만듭니다. 대표적인 것이 X 메터리얼이인데, 이것은 MDF보다 12배나 비싸죠. 이보다 덜 딱딱해서 미드레인지용 프런트 배플에 적합한 M 매터리얼의 경우, 버전 4까지 진화한 상태입니다. 이후 버전 5는 따로 S 매터리얼이라 명명해서 새롭게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그만큼 좋은 성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고, 실제로 X 매터리얼보다 2배나 비쌉니다. 이를 미드레인지 쪽 프런트 배플에 부착했습니다.

사샤라는 모델과는 별도로 앞으로도 와트 퍼피 시리즈는 생산이 됩니까?

아닙니다. 훨씬 개량된 사샤가 나왔으므로 공식적으로 와트 퍼피의 새로운 버전은 없습니다.

드라이버에 대해 좀 더 여쭙겠습니다. 맥스 3와 사샤에 쓰인 제품들은 이전 모델과 다른 것 같은데, 특히 미드레인지를 개량했다고 들었습니다. 이 부분을 설명해주시죠.

우리는 오랫동안 포컬제 유닛을 애용해왔습니다. 처음 저희가 이 드라이버를 사용했을 때, 미국 스피커 회사로는 최초였습니다. 그만큼 그 가능성을 간파하고 있었고, 그 후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최근 모델 역시 트위터와 우퍼는 포컬제를 사용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미드레인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이런 욕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보다 광대역하고, 다이내믹하며, 질감이 풍부한 것이 없을까? 예를 들어 기존의 제품은 대개 밑으로 400Hz 정도에서 멈춥니다. 저는 100~150Hz까지 커버하는 드라이버를 쓰고 싶었습니다. 예를 들어 WAMM의 경우, 4.5인치 미드를 썼는데, 400Hz 이하로는 더 내려가지 않더군요. 나중에 6.5인치를 써보니 밑으로 원하는 만큼 내려가기는 하는데, 반면 위로는 1KHz 근처에서 머무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트위터가 갖는 부담이 상당해집니다. 더 큰 보이스코일과 자석을 갖춰야 하니 이래저래 어려움이 생기는 것이죠. 그러나 다이내믹하면서 파워 핸들링이 높은 스피커를 만들고 싶은 욕망이 강했으므로,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튼 구할 수 있는 유닛을 다 구해서 들어보고는 이것은 아니다 싶어서 모 회사와 만나 계속 쭉 개발했습니다. 그 결과 이번 제품들에 채용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미드레인지는 스캔스픽제가 아닌 모양이군요. 그 모회사라는 곳을 알 수 있을까요?

아직까진 비밀입니다.(웃음)

마지막으로 최근에 자료를 찾다 보니, 윌슨 씨께서 스피커를 디자인할 때 G.A. 브릭스라는 분의 텍스트를 많이 참고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서적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1945년에 나온 것으로, 스피커 제작의 기본을 설명한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이 책을 보고 많은 도움을 받았죠. 사실 최첨단 기술이 빠르게 도입되는 이쪽 분야지만, 옛날 서적을 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1937년에 해리 올슨이라는 사람이 쓴 책을 보면 오늘날 발견할 수 있는 최첨단 인클로저 디자인이 나옵니다. 또 1950년에 스킬링이 쓴 책에는 케이블에 대한 언급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스피커 케이블이 길이가 길어질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요지의 글입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앞으로도 정력적인 활동 기대하며, 이번 인터뷰에 응해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P.S 인터뷰 후, 윌슨 씨의 주재로 K-1 시청실에 설치된 맥스 3를 들었다. 프리, 파워, CDP 모두 볼더를 물린 조합인데, 여기서 깜짝 놀란 것은 탄탄한 중역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자연스럽고 음악적인 표정이었다. 과연 신기(神器)라 불러도 좋을 만한 미드레인지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음성 신호 내에 전혀 이음새를 찾을 수 없었고, 안으로 깊이 정위하는 무대 묘사 능력은 발군이라 하겠다. 이전 모델과는 확실히 차원이 다르면서 고도로 진화했다고 평할 만한 내용이어서, 이번 인터뷰는 여러모로 윌슨 오디오의 현재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