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thos, 인생은 아름답고, 음악은 즐겁다!
인생은 아름답고, 음악은 즐겁다!
이 종학(Johnny Lee)
몇 년전에 롤링 스톤즈가 브라질 리오에서 프리 콘서트를 연 적이 있다. 이 행사는 20여 년전 퀸이 했던 행사를 모델로 삼은 바, 최대 화제는 과연 퀸이 끌어 모은 50만 관객의 수를 넘어설 것인가였다. 당시 퀸은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때라 50만 동원이 가능했지만, 스톤즈만 해도 거의 끝물이고 또 옛날 밴드라 그런 폭발력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공연 당일이 되자, 끝도 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리오 해안가에 설치된 무대를 보기 위해 모래사장뿐 아니라 건물에도 인파가 가득했고, 심지어 바닷가에도 요트가 발 디딜 틈이 없이 빼곡했다. 대략적인 통계가 약 100만. 퀸의 기록을 두 배 넘게 갈아치운 것이다.
당연히 공연장의 열기는 상상을 초월했고, 무대에 선 재거, 리차드를 비롯한 백전노장들도 한껏 상기되어 멋진 연주를 선보였다. 참 그 모습을 보면서 부러운 것이 하나 있었다. 이들은 오랜 기간 동고동락한 친구들이다. 이런 영광의 순간에 역시 그들이 함께 하고 있다. 그게 참 대단한 것이다. 혼자서 성공한 사람들은 부지기수지만, 이들은 친구들과 행복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모습을 오디오계에서 찾는다면 바로 파토스가 될 것이다. 부침이 심하고, 경쟁이 살벌한 이 업계에서 당연히 무수한 이합집산이 반복되는 가운데, 파토스를 이끄는 세 명의 친구들, 이른바 트라이엄비라트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이들이 아무 탈 없이 차근차근 기업을 성장시켜 자신들의 꿈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보기 좋다. 그러므로 파토스를 만나러 가는 길이 남달리 흥미진진했음은 물론이다.
여기서 잠시 세 명의 주인공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인폴 회로의 창시자이자 엔지니어인 지안니 보리나토(Gianni Borinato), 디자인 및 마켓팅을 담당하는 파올로 안드리올로(Paolo Andriolo) 그리고 공장 관리 및 스피커 설계자인 가에타노 자니니(Gaetano Zanini) 등이다.
파토스가 위치한 비첸차(Vicenza)라는 도시는, 베니스 인근에 있는 곳으로, 크게는 베네토주에 속한다. 흔히 이태리에서 제일 잘 사는 곳으로 밀라노가 속한 롬바르디아주를 생각하지만, 실제로 소득은 베네토주가 더 높다. 분리주의 운동이 제일 활발한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의 경제 상황을 보면, 미디엄 사이즈 정도의 기업이 많고, 그 분야는 식료품, 의류, 구두에서 전자제품, 화학, 금 세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베니스를 중심으로 한 해운, 조선업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대개 관광 산업이 발달한 곳으로 생각하지만, 의외로 이쪽 비중은 얼마 되지 않는 것이다.
참고로 비첸차는 이태리를 대표하는 스피커 메이커인 소너스 파베르도 둥지를 트고 있다. 인근에 또 오페라, 유니슨 리서치 등 여러 오디오 회사들이 집결한 것을 보면, 베네토주를 가히 이탤리언 사운드의 메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사실 나는 2년 전에 베니스를 방문하면서 인근의 파도바를 방문하는 김에 비첸차를 잠시 들린 적이 있다. 고작 11만이 좀 넘는 인구의 이 소도시를 간 것은 오로지 안드레아 팔라디오(Andrea Palladio : 1508~1580) 때문으로, 그가 설계한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올림피코 극장 등 여러 곳을 둘러볼 심산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운이 안 좋았는지, 방문 당일 바실리카는 공사중이어서 그 유명한 탑을 볼 수 없었다. 그 일이 두고두고 한이 되었는데, 이번에 극적으로 파토스 덕분에 비첸차를 가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방문 당일 약속 장소인 역 앞에 가니, 훤칠한 키의 중년 신사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악수하고, 명함을 교환하고 보니 바로 지안니였다. 인폴 회로 및 다양한 파토스 앰프의 설계를 담당한 분이 직접 마중나온 온 것이다. 원래 이런 일은 해외 마켓팅을 주관하는 파올로의 일이지만, 마침 그에게 사정이 생겨 지안니가 나온 것이다.
아무튼 그를 따라 일단 사무실에 갔다. 그곳은 이 도시의 중심지인 안드레아 팔라디오 거리 인근에 있으며, 따라서 차량 통행이 극단적으로 제한된다. 하지만 역에서 걷기에 부담이 없는 거리라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갔다. 이윽고 모던하고 또 센스 넘치게 꾸며진 사무실에서 간단히 직원들과 인사한 후 차 한 잔을 했다. 이윽고 파올로가 왔으므로, 합류해서 잠깐 시내 관광을 했다. 이 도시에 대한 자부심이 참 대단하다고 느낄 만큼, 그들의 안내는 세밀하고 또 자신감이 넘쳤다.
나중에 알고 보니 디자이너 출신인 파올로는 팔라디오의 전문가라고도 한다. 늘 느끼는 일이지만, 이런 회사의 제품은 제품 자체만 놓고 그 가치를 논할 수는 없다. 음질이나 퀄리티나 여러 스펙들을 살펴야겠지만, 이 물건이 만들어진 환경이나 제작자의 퍼스낼러티도 역시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오디오는 한낱 전자 제품에 불과하지 않은가.
다행히 바실리카에 가보니 공사가 마무리되어 그렇게 보고 싶었던 탑을 볼 수 있었다. 몇 장의 사진을 서둘러 찍었다.
“여기엔 500년전부터 매주 화, 목요일에 장이 섭니다. 지금도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죠.”
지안니의 설명을 들으니 문득 타임 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하다.
“이태리에선 16세기부터 음악과 건축의 관계를 연구했습니다. 예전에 피타고라스라는 수학자는 음악을 이루는 옥타브나 코드 등에 큰 관심을 가진 적이 있죠. 이런 숫자와 지오메트릭과 음악에는 뭔가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제가 팔라디오를 연구하면서 음악에 자연스럽게 빠져든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이번에는 파올로의 설명이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보다 새롭게 다가온다.
이윽고 올림피코 극장에도 갔다. 이 내부는 뭐 하나 틈이 없을 만큼 조각으로 가득 차 있을 뿐 아니라, 무대 뒤에는 도시의 뒷골목을 연상케 하는 조형물이 빼곡하다. 과연 이태리구나,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이이서 이른바 뮤제오 시빅이라고 하는, 역시 팔라디오가 설계한 미술관을 구경했고, 나중에 공장에 갈 때 역시 그가 만든 별장이며 저택을 구경했다. 한 예술가에 의해 이 작은 도시가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갖게 되는지 또 그 흔적이 사라지지 않고 여러 분야에 미쳐서 심지어 진공관 앰프에까지 남아 있다는 점은 참 대단한 일이다. 이 도시와 역사와 파토스가 좀 더 마음속 깊이 다가오는 순간이다.
현재 파토스는 앰프를 비롯, CDP, 스피커 등을 생산하는 전문 오디오 회사지만, 디자인 웍과 전자 기술을 응용한 여러 관련 제품의 OEM도 하고 있다. 전기 청소기나 여러 제품이 마침 사무실 구석에 놓여 있었는데, 역시 디자인의 수준이 다르다.
그런 센스는 최근에 준공 중인 도시 외곽에 있는 공장에도 충분히 반영되어, 공장이라기 보다는 세련된 미술관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내부는 일체의 오차 없이 정교하게 설계되어 제품 생산 과정이 무척이나 효율적이었다. 정확히 파토스의 앰프가 갖는 기능적인 완벽함과 빼어난 디자인을 상징하는 듯해서 저절로 미소가 나왔다.
공장 탐방은 지안니, 파올로뿐 아니라 이곳을 책임지고 있는 가에타노에다 여비서까지 가세해, 오히려 이쪽이 미안할 정도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이태리인들의 후덕한 마음씀씀이를 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그럼 차근차근 둘러보기로 하자.
사진에서 보면 알겠지만, 이곳은 아직 공사중이다. 앞으로 1년 정도 더 진행할 예정이라 하는데, 생산 공정이 이뤄지는 지역은 이미 완성이 되어 공장 가동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일단 사무실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간단히 일정을 체크한 후, 본격 탐방에 들어갔다.
처음 들어선 곳은 일종의 자재 창고다. 이곳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전원 트랜스포머로, 납품받은 물건을 케이스에 넣고, 레진을 부어서 밀봉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진공관 앰프가 얼마나 진동에 민감한지는 잘 알고 있으니까, 이런 꼼꼼한 작업이 왜 필요한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그밖에 여러 케이스나 완성품도 보관되어 있어서 흔히 지게차라고 부르는 장비가 놓여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이어서 간 곳은, 건물 중간에 나 있는 작은 방으로, 여기엔 선별된 부품들이 보관되어 있다. 특주한 것이나, 금박을 입히거나, 개량한 부품들로 가득하다. 오디오의 시작부터 이렇게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한껏 품질을 높인 부품에서 시작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곳에선 본격적인 조립과 테스팅이 이뤄지고 있다. 진공관 앰프의 제작은 참 사람 손이 많이 간다. 때문에 어셈블리 라인이 아닌 개인의 손을 빌리고 있었는데, 모두 손으로 부품을 선택해서 샤시에 넣고 또 납땜하는 공정이 이뤄지고 있다. 이중에는 멀티 채널 앰프처럼 5개의 출력단이 들어간다거나, 샤시에 일부러 구멍을 내어 냉각을 용이하게 한 파워 서플라이를 다룬다거나, 섬세한 작업이 필요한 프리앰프 등, 어느 정도의 센스와 손재주가 없으면 제작이 힘든 공정이 많다. 이 대목에서 저 위대한 건축물과 예술품을 내놓은 이태리 장인들의 손길을 기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여기서 프리앰프의 내부 배선재로 실딩 처리된 은선을 사용하는 점이 특이했다. 거기에 릴레이 타입으로 만들어진 볼륨단이 상상 외로 컸고, 마이크 프로세서를 달아서 정교한 조작을 가능하게 한 점도 돋보였다. 볼륨을 올리거나 내릴 때 일체 클릭이 발생하지 않게 만드는 점도 주목 포인트 중의 하나. 심지어 파워 서플라이는 세 개의 블록으로 구성된 바, 각각 왼쪽 및 오른쪽 채널 그리고 디지털부를 위한 것이라 한다.
한편 따로 구석에 있는 테스팅 파트는 제품의 완성도를 위한 필수 공정이다. 여기서는 대략 두 개의 테스팅이 행해지는 바, 하나는 고전압을 체크하는 것으로 무려 1500V나 걸고 있었고, 또 하나는 10암페어를 걸어 그라운드 커넥션을 살펴보고 있었다. 또 연결된 배선이 얼마나 튼튼한지도 최종 점검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기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는 바, 이를 바라보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즐거워진다. 사람 손으로 만들었다고 믿기 힘들 만큼 정밀도가 높아,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으면 각 부품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치된 모습이 흡사 잘 설계된 도시를 보는 것만 같다. 직접 샤시를 손으로 만져보고, 배선 상태를 확인도 해봤는데, 한 치의 오차 없이 정교하게 제작되어 과연 20년 가까운 이 회사의 구력을 충분히 느끼게 했다.
이 회사 제품에 신뢰를 줄 수 있는 요인 중의 하나는, 출고 전에 완벽하게 검사를 마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제품마다 일련 번호를 매겨 기록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체크 포인트에는 여러 세부 항목에 걸친 테스트 결과뿐 아니라, 패키지며 피니싱에 대한 부분까지도 포함된다. 심지어 뮤직 테스트라고 해서 직접 청취한 결과도 기록된다. 당연히 테스트를 주관한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책임 소재를 가릴 수 있게 했다. 참고로 뮤직 테스트는 최소 8시간 이상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곳은 완성된 제품을 박스에 담는 곳이다. 금발의 사내가 이 공정을 담당하고 있는 바, 아무래도 파손의 위험성이 높은 진공관 앰프가 주류인 바, 이 부분에 대한 노우 하우가 남다를 것이라 짐작이 된다. 출고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이뤄진다고 한다.
문득 직원이 많지 않으면서도 효율적으로 부품 관리와 생산 공정이 진행되고 있어서 인원을 물어봤다. 오피스에서 디자인과 R&D를 담당한 분이 총 9명이고, 공장에는 12명이 일하고 있다고 한다. 전세계 40여 개국을 상대하는 기업의 규모로 치면 작다고 할 수 있지만, 역으로 그만큼 빈틈없이 공정이 이뤄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다시 한번 직원들의 숙련된 손놀림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일행이 나를 데려간 곳은 공장의 다른 파트였다. 일단 밖으로 나와 한구석에 숨어있는 곳으로 갔는데,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잠시 궁금해졌다. 처음 만난 곳은 목재를 다루는 곳이다. 알다시피 파토스에선 스피커도 생산한다. 이를 위한 인클로저와 프런트 패널이 이곳에서 직접 사람 손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커다란 목재 절단기가 참 인상적이었다. 하긴 그러고 보면 앰프에도 리모콘이나 장식적인 요소를 위한 조각 등 여러 용도로 목재가 필요하지 않은가.
또 한 편에서는 알루미늄이나 쇠로 만들어진 부품도 다뤄지고 있었다. 외부에서 조달해온 것을 여기서 다시 한 번 가공하는 것으로, 앰프의 샤시나 CDP의 뚜껑 부분 등, 세심하게 연마해야할 부품이 많았다. 아무래도 쇳가루며 대패 가루가 날리는 곳이라 별도로 이런 룸을 만든 것이다.
이 방에서 행해지는 아주 중요한 공정이 또 하나 있다. 마무리 페인팅이다. 예를 들어 스피커에 도장을 하거나, 샤시에 특정 색을 입히는 등 대부분의 일이 여기서 행해지고 있다. 사실 이런 일은 손도 많이 가고, 위험도도 높아서 숙련된 직원을 지속적으로 데리고 있기 힘들다. 오디오쪽에서도 가장 3D에 속하는 업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초에 발상한 디자인을 구체화시키기 위해선 절대로 남의 손에 맡길 수 없는 부분이라, 이렇게 따로 전문가를 고용하고 있는 것이다.
방을 나오다 말고, 잠시 걸음을 멈췄다. 거대한 장비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바로 커팅 머신이다. 그렇다. 아까 여러 철제 및 알루미늄 부품에 대해 언급했는데, 여기서는 겉만 반지르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간단하게 절삭하거나 구멍을 뚫는 일도 직접 이뤄지고 있다. 바닥에 가득한 쇳가루를 보니, 제품을 만드는 일이 상당히 리얼하게 다가왔다. 지안니의 손에 들려진 파토스라는 장식이 실은 이런 엄청난 공정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니, 이 공장 탐방이 여러모로 파토스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공장의 맨 위층은 아직 한참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앞으로 여기에 바(Bar)도 설치하고 AV 룸도 만들고 또 악기도 가져올 것이라 한다. 그러고 보니 이 3인방, 모두 음악에 조예가 깊다. 참고로 지안니는 기타를 치고, 파올로는 올갠을 다룬다. 여기에 여러 뮤지션이 모여 그룹 활동도 간간히 한다고 한다. 이때 가에타노는 매니저 일을 담당한다. 참, 멋진 인생이다. 그러므로 이곳에 자신들을 위한 오락실을 만드는 것은 당연하다. 또 매년 디스트리뷰터를 초대해서 파티도 벌릴 예정이라니 그 모습 또한 궁금하다.
이 회사의 가치를 발견하고 처음 거래를 튼 S 수입상은, 파토스 입장에서 결코 잊지 못할 존재다. 최초로 계약한 해외 디스트리뷰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방문 역시 상당히 중요한 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대략 방문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리스닝 룸에서 음악을 들었다. 파토스의 스피커와 앰프, CDP 등을 총망라한 것으로, 그렇게 보니 원 브랜드로서의 통일성을 느낄 수 있었다. 클래식, 재즈, 팝, 록 등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었고, 특히 처음 보지만 꽤 실력이 대단한 뮤지션도 많아 듣는 중간중간 기록도 했다.
여기서 느낀 것은, 참 음악은 즐겁고, 이런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인생 또한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분석적으로 파고들어도 이 시스템의 음엔 별다른 하자나 파탄이 없다. 그리고 거기엔 마치 이태리 요리처럼 숙련된 요리사의 솜씨가 발휘된 특별한 맛을 느낄 수 있었고 또 팔라디오의 건축물처럼 정교한 구성과 조화도 숨어 있었다. 왜 음악을 즐기고 또 오디오를 구매하는지, 그 근본적인 질문에 파토스는 이렇게 멋진 답을 내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계속 음을 들으며 즐길 수만은 없다. 어느덧 저녁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지안니를 중심으로 간단한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중간에 다른 분들의 보조 설명이 있었지만, 인터뷰의 주체인 지안니 보리나토(GB)의 대사속에 넣기로 한다.
-우선 간단히 자기 소개부터 해주십시오.
GB : 저는 대학에서 기계 공학을 전공했습니다. 오디오는 어릴 적부터 좋아하여 마크 레빈슨과 같은 하이 엔드 제품을 쓰고 있었습니다. 제작에도 관심이 많아 이런저런 앰프를 설계하거나 만들어보곤 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앰프에 관한 참신한 아이디어가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인폴 회로와 관계된 것입니까?
GB : 그렇습니다. 알다시피 진공관은 전압 핸들링 능력은 뛰어나지만 전류에는 약합니다. 그래서 출력 트랜스포머가 필요합니다. 반대로 솔리드 스테이트는 전류 제어 능력이 대단하지만, 전압에는 약하죠. 이 둘의 장점을 조합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입니다. 즉, 트랜스포머를 솔리드 스테이트로 대체하는 대신, 앰플리케이션은 순수하게 진공관에 맡기자는 겁니다. 이 경우, 순 A 클래스 설계에 제로 피드백은 필수입니다. 그리고 진공관에서 나오는 신호가 나중에 솔리드 스테이트로 갈 때 정확히 1대1의 비율이 되도록 조정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솔리드 스테이트는 진공관에서 오는 신호를 그냥 그대로 카피하는 것이죠. 그럴 경우 아웃풋의 임피던스를 낮게 만들 수 있어서 스피커 구동 능력이 좋아집니다. 말하자면 스피커를 진공관이 직접 드라이브하는 효과를 노린 것입니다. 그 때가 바로 1990년입니다.
-지금부터 20년전의 일이군요. 그 다음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GB : 당시 저는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시간을 많이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93년에 와서야 샘플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만들 때엔 그냥 새로운 발상이니까 뭐가 어찌 될 지 자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소리를 듣고는 깜짝 놀랐답니다.
-하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설계로 만들었으니 그 전에는 누구도 들어볼 수가 없었겠죠.
GB : 당시 제겐 하이파이 잡지에 기고하는 저널리스트 친구가 있었습니다. 일단 그의 의견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에게 좋은 평을 듣자 또 다른 의견을 듣고 싶어서, 물어물어 무려 200Km나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는 전문가를 찾아가서 들려줬습니다. 그 역시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워 줬습니다. 아예 정식으로 제품화하라는 격려까지 들었죠. 이에 자극을 받아 이듬해인 1994년에 정식으로 오픈한 것입니다.
-1994년은 여러 모로 의미심장한 해 같은데요 ...
GB : 맞습니다. 이 해에 <톱 오디오 인 밀란>이라는 쇼에 참가해서 정식 데뷔를 했고요, 여기서 바로 K 수입상을 알게 되어 처음으로 외국에 수출하게 되었습니다. K사와는 지금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죠.
- 아무튼 K사의 날카로운 감식안에 탄복했습니다. 그럼 파토스의 앰프는 모두 인폴 회로를 씁니까?
GB : 엔트리 레벨에서는 쓰지 않습니다. 인폴 회로는 기본적으로 뜨겁고, 순 A 클래스로 만들어야 하고 또 무게가 많이 나갑니다. 그러므로 인풋 스테이지는 인폴을 사용하지만, 출력부는 푸시풀 방식을 사용합니다.
-CDP도 생산하고 있는데, 아웃풋 스테이지는 진공관을 쓰고 있군요. 진공관에 대한 특별한 믿음 같은 것이 있는 모양입니다.
GB : 진공관 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자연스럽고 스위트하며 또 소프트합니다. 저희 제품을 듣는 분들은 전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장시간 들어도 귀가 피곤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런 면에서 국적이나 인종을 불문하고 인간의 귀는 결국 같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지역마다 계층마다 좋아하는 음악은 다릅니다. 누구는 클래식을 듣고, 누구는 재즈를 듣고 또 누구는 전자음악을 듣지만, 귀가 같기 때문에 느끼는 감수성은 같은 것이죠.
-작년에 스피커를 발표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GB : 실은 가에타노가 스피커 전문가입니다. 약 30년 가까이 이쪽 분야에서 일했고, 프랑코 셀브린과 같은 인물과도 깊은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그간 이쪽 일을 하면서 경황이 없었지만, 이제 다시 손을 댈 만큼 여유를 찾은 것이죠.
-그럼 스피커에도 역시 파토스가 추구하는 음이 담겨 있겠군요.
GB : 당연하죠. 투명하고, 음장이 뛰어나고 또 음악성이 풍부한 음이 담겨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다른 스피커 회사들의 제품을 좋아하고 또 존중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음을 담기에는 약간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직접 손을 대게 된 것이죠.
-그러고 보니 이제 음의 입구부터 출구까지 하나도 빠짐이 없는 라인 업을 완성했군요.
GB : 전통적인 오디오파일은 앰프 따로, 스피커 따로 구해서 매칭하는 재미를 추구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CDP건 앰프건 최고의 퀄리티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한 브랜드로 통일해서 뛰어난 음을 즐기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스타일 오디오와 같은 느낌도 있지만,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음을 완벽하게 재현하려면 이렇게 저희 제품으로 통일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세 분 모두 고교 시절부터 잘 아는 사이라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무려 30년간 함께 동고동락하고 있군요. 정말로 부럽습니다.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GB : 감사합니다.
-llhtml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