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소타 나이스의 미덕이 듬뿍 담긴 메이커 오디오 리서치
50개의 주로 이뤄진 미국은 땅덩어리가 넓은 만큼, 지역에 따라 문화, 예의범절, 대인관계, 규범 등 여러 면에서 차이가 많다. 우리는 흔히 남부나 뉴요커 혹은 캘리포니아 등에 관한 특별한 이미지는 갖고 있지만, 그 밖의 지역에 대해선 잘 모르고 있다. 그 중 이번에 꼭 소개할 지역이 바로 미네소타 주로, 흔히 그 특징을 “미네소타 나이스” (Minnesota Nice)라고 표현한다. 대체 이게 무슨 뜻인가?
실은 위키페디아에 정식으로 등재될 만큼, 이 용어는 미국인들에게 친숙한 편이다. 미네소타 주는 시카고가 멀지 않은 중북부 지역에 속한 곳으로, 우리에겐 미네아폴리스-세인트 폴 등 두 개의 도시가 잘 알려져 있다. 워낙 두 도시의 생김새나 특성이 비슷해 흔히 “쌍둥이 도시”로 불리고, 실제로 이 지역을 연고로 한 프로야구 팀의 명칭도 미네소타 트윈스다.
아무튼 이 지역 사람들의 특징은 미네소타 나이스로 대변되는 바, 간단히 표현하면 자기 감정을 곧바로 드러내지 않고, 상대를 늘 배려하며, 간혹 의견이 다르더라도 꼿꼿이 응대하지 않고 일단 돌려서 피하는 식의 태도를 말한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흔히 아는 뉴요커와 정반대라 보면 된다. 교통 관련에서도 이 용어가 쓰이는 바, 운전 중 누가 자기 차선으로 끼어들면 군말 없이 자리를 내준다는 의미을 갖고 있다. 그러고 보면 참 미네소타 사람들은 참을성이 많고, 다분히 보수적이며,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왜 이렇게 장황하게 이 용어를 설명하는가 하면, 이번에 내한한 브랜든 라우어 (Brandon Lauer) 국제 마케팅 담당을 통해, 오디오 리서치 (이하 AR)와 이 용어가 절묘하게 매칭된다는 내용을 들어서다. 흥미로운 것은 브랜든 역시 이곳 미네소타 출신으로, 그중에서도 미네아폴리스에서 태어났다. 물론 여기서 평생을 산 것은 아니고, 출생 후 한 20년을 살다가 대학 진학을 위해 노스 캐롤라이나로 간다. 여기서 학업을 마친 후 사회 생활도 한동안 했으므로 도합 19년을 보냈다. 그 후 작년에 AR과 관계되어 컴백했으므로, 다시 미네소타 나이스가 된 셈이다.
이런 브랜든에 따르면 AR의 음향 철학이랄까 성격이 바로 이 용어와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진공관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일일이 장인의 손길에 의해 만들어지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하고, 그 음에 있어서 지나치게 공격적이지 않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지만 오히려 스피커의 장점과 가능성을 극대하고, 그러면서 신기술의 채용을 적극적으로 행해서 디지털 뿐 아니라 최근의 하이브리드 설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접목하는 부분이 바로 미네소타 나이스와 같다는 것이다.
사실 곰곰이 AR의 음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미소가 떠오를 만큼 이 용어를 생각나게 하는 부분이 많다. 그러므로 이번 인터뷰는 이런 배려 속에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고,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AR의 여러 부분을 조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본다.
인터뷰어: 이종학(Johnny Lee)
인터뷰이: 브랜든 라우어(Brandon Lauer)
-우선 한국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첫 번째 방한이라면서요?
BL : 네. 그렇습니다. 이번에 싱가포르, 도쿄, 방콕, 상해 등을 방문하는 일정의 일환으로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오랜 비행 시간 끝에 와서 좀 피곤하기는 하지만, 처음 접하는 아시아의 도시라 상당히 긴장도 되고, 흥분도 됩니다.
-일단 간단하게 자기 소개부터 해주실까요?
BL : 저는 미네소타 주에서 출생해서 고교 때까지 쭉 살았습니다. 이때 음악을 하기로 결심하고 첼로를 정식으로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대학도 이쪽으로 전공을 했죠. 그러나 졸업 무렵이 되자 아무래도 연주인으로 살아갈 전망이 그리 밝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즈음 신문의 구인란에서 하이파이 숍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응모해서 합격한 다음 지금에 이르기까지 쭉 오디오 업계에 종사하게 된 것이죠.
-그렇다면 어릴 적부터 오디오에 관심이 있었단 이야기군요.
BL : 그렇죠. 사실 보유한 시스템이 그리 대단하지 않았지만, 늘 <스테레오파일> 잡지를 읽으면서 1만불짜리 턴테이블이나 5만불짜리 스피커에서 어떤 소리가 날지 궁금했습니다. 그런 호기심이 결국 이쪽 업계의 일을 하게 만든 셈이죠. 약 15년 정도를 오디오 숍에서 근무하면서 AR의 제품을 많이 취급했습니다. 그게 인연이 되어 작년에 정식으로 국제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라우어씨만의 어떤 장점을 인정해서 AR에서 채용한 것이 아닐까요?
BL : 맞습니다. 우선 제가 AR의 제품에 익숙하다는 점도 있고, 또 독어를 비롯, 이태리어, 스페인어 등을 조금씩 한다는 점도 좋은 인상을 심어줬죠. 한때 폴란드에 몇 년 지낸 적이 있는데, 이때 언어를 익혀서 지금은 폴리쉬어를 꽤 합니다. 게다가 전 미네소타 출신 아닙니까?
-그렇군요. 당연히 미네소타에 본거지를 둔 AR과는 뗄래야 뗄 수 없겠군요. 이 기회를 빌어 잠깐 미네소타 자랑 좀 해주실까요?
BL : 저희 지방은 꽤 보수적인 지역으로 알려져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이테크나 메디컬 기반의 산업도 상당히 발달했고, 문화적인 수준도 대단합니다. 예를 들어 미네아폴리스 오케스트라의 경우 머큐리의 리빙 스테레오나 BIS, 레퍼런스 레코딩 등에서 녹음할 정도로 실력이 출중합니다. 세인트 폴 챔버 오케스타라만 해도 1년 내내 실내악만 연주하고 있는데, 이런 단체는 미국을 통틀어 유일합니다.
-참 대단하군요. 그럼 이 대목에서 아무래도 AR의 창업주인 윌리엄 존슨(일명 빌 존슨) 씨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군요. 대체 이 분이 AR을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지는지 궁금합니다.
BL : 원래 빌은 1960년대에 미네아폴리스에서 오디오 숍을 경영했습니다. 주로 DIY 관련 제품을 많이 다뤘죠. 그러다 페플로(Peploe)라는 회사를 만들어 각종 키트나 서킷 보드를 전자 회사에 납품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윽고 자신이 생각하는 음에 대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1970년, 오디오 리서치를 설립한 것입니다.
-당시엔 진공관의 붐이 끝나고, 더구나 인식도 좋지 못한 상황이었으므로 이래저래 애로 사항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BL : 그렇죠. 일단 큰 메이커들이 진공관 생산을 중단했습니다. 하지만 빌은 음에 관한 한 진공관이 TR보다 낫다는 믿음을 갖고 계속 만들었습니다. 다행히 군수품이나 TV, 라디오 등에서 진공관을 필요로 했으므로 원하는 것들을 꾸준히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1974년에 발표한 SP3가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서서히 회사의 존재를 오디오파일들에게 각인시킨 것이죠.
-그렇다면 AR에서는 특별히 진공관을 특주하거나 새로 개량하지는 않는가요?
BL : 좀 전에 SP3 이야기를 했는데, 이 제품은 지금도 저희 공장에 와서 업그레이드가 가능합니다. 실은 모든 제품이 다 AS 서비스가 됩니다. 이를 위해 저희 공장에는 무려 6천여가지의 부품들이 항상 준비되어 있습니다. 즉, 진공관도 일반적인 제품을 사용해야 향후 얼마든지 교체가 가능합니다. 만일 특주품을 냈다가 이를 만드는 회사가 없어지면 어떻게 합니까?
-아, 그렇군요. 40년이 넘는 기업은 확실히 생각하는 스케일이 다릅니다.
BL : 지금도 저희는 모든 제품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생산합니다. 보드에 작은 부품들을 삽입하는 것부터 납땜, 조립, 테스팅 등 모든 과정을 일일이 사람 손으로 해결합니다. 또 모든 제품은 나중에 면밀하게 듣고 나서야 출하되죠.
-그러려면 상당한 인원이 필요하겠군요.
BL : 맞습니다. 총 50여 명의 인원이 일을 합니다. 그 중에 엔지니어 쪽에 3명, 마케팅 쪽에 3명이 있으니, 실제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은 40여 명이라 하겠죠.
-3년 전에 빌이 은퇴하면서 회사를 파인 사운드에 매각했습니다. 그 후 여러 변화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BL : 기본적인 변화는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지금 엔지니어링을 총괄하는 워드 피비거 (Ward Fiebiger)씨만 해도 20년이 넘게 AR에서 일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빌의 모든 것을 전수받았죠. 게다가 디지털쪽을 전담하는 데니스나 “우리의 귀”(Our Ears)로 불리는 워렌 등 아직도 쟁쟁한 분들이 현역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귀? 특이한 별명이군요.
BL : 워렌은 정말로 대단한 귀를 가진 분입니다. 특히, 한번 들은 음은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 대단한 기억력을 갖고 있죠. 그래서 제품 개발 단계에서 리스닝은 물론 부품 하나하나를 교체한 후의 음까지 모두 듣고 판단합니다.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제품 역시 워렌의 까다로운 귀를 통과해야 출시됩니다.
-그럼 신제품 개발은 전적으로 워드의 몫입니까?
BL :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 마케팅 쪽에서도 의견을 내고, 다른 엔지니어도 아이디어를 개진하기도 합니다. 서로 긴밀하게 의견을 교환해서 새 제품을 만드는 식입니다.
-최근에 하이브리드 서킷을 채용한 제품들이 많이 나왔는데, 이 부분이 궁금하군요.
BL : 기본적으로 저희는 입력단에 하이브리드 서킷을 채용합니다. J-FET와 진공관의 결합으로 양자의 장점을 흡수하려고 제작했죠. 전자의 탄탄한 하모닉 구조에다 후자의 뛰어난 토널 퀄리티를 합치자는 것이죠. 그런데 왜 바이폴라가 아닌 J-FET을 썼는가 하면, 이쪽이 음색면에서 더 진공관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웃풋쪽은 진공관으로 해결합니다.
-그럼 DS 시리즈에도 하이브리드 서킷이 들어갑니까?
BL : 당연하죠. 그러나 이 시리즈의 경우 이른바 스위칭 전원을 채용해서 전통적인 진공관 방식과는 다른 음을 내고 있습니다. 대개 스위칭 전원이라고 하면 유명 메이커의 칩을 사다가 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엔 좀 문제가 있습니다. 앰플리케이션 부분과 디지털 파워부가 하나의 모듈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자체 개발을 통해 이를 분리했습니다.
특히 아날로그 파워 서플라이를 강화해서 대단히 큰 용량의 전원 트랜스를 삽입했죠. 그리고 출력단에 스위칭 전원을 썼고요. 그 결과 주파수 대역폭이 상당히 넓어지고, 빠른 반응을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대개 스위칭 전원을 쓴 앰프들이 어딘지 모르게 디지털 냄새가 나고, 차가우며, 날카로운 윤곽을 보여주는데, 저희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없이 아날로그적이며 따뜻하고, 밸런스가 좋죠. 게다가 전기를 많이 잡아먹지 않아 사용상 별로 부담이 없고요.
-전기를 덜 먹는다는 것이 상당히 마음에 듭니다.
BL : 맞습니다. 앞으로 환경 보호에 대한 규제가 엄격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죠. 그런 면에서 이번에 발표한 DS 시리즈는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앞으로 여기에 프리앰프 및 여러 종의 파워를 더 개발해서 라인 업을 확장할 생각입니다.
-AR의 생산 공장을 다룬 자료를 보니 부품 관리가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부분에 관해 좀 설명해주시죠.
BL : 진공관의 경우 페어 매칭을 기준으로 합니다. 그러므로 정밀한 테스트를 통해 특성이 비슷한 것들끼리 모아놓고 제작에 들어갑니다. 비단 진공관뿐이 아닙니다. 캐패시터의 경우에도 그 특성을 7가지로 나눠서 이 역시 짝을 맞춥니다. 이렇게 부품 단계부터 꼼꼼히 체크하지 않으면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없죠.
-지금까지 장시간 인터뷰에 감사드리며, 언제 기회가 되면 꼭 공장 투어를 해보고 싶군요.
BL :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