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N] 오디오계의 철학자 아이버 티펜브룬을 만나다.
오디오를 하면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브랜드가 몇 있다. 그 중 린(Linn)하면, 아하 턴테이블부터 떠올리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디지털 파일 플레이어인 DS 시리즈를 꼽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또 각종 앰프며 스피커 등을 따지면 종합 오디오 메이커로서 린이 갖는 위상이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된다. 말하자면 오디오파일 사이에 린을 모르면 간첩으로 몰릴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아주 귀한 만남이 이뤄졌다. 바로 린을 창립한 아이버 티펜브룬씨가 내한한 것이다. 이번 방문이 특별한 것은, 특정 제품을 홍보하거나 마케팅 관련 행사를 열기 위함이 아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음악과 오디오에 관한 관념들을 널리 알려서 애호가들이 보다 깊게 감상에 몰두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타의 내한과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하겠다. 또 기사를 꼼꼼히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간 얼마나 아무 개념 없이 오디오를 바꾸고, 음악을 들어왔는지 좀 반성도 될 것이다.
일단 행사의 시작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우선 MP3 파일로 짤막하게 피아노와 보컬이 들어간 트랙을 잠시 틀었다. 그리고 다시 그 부분을 튼 후, 무엇이 다른가 물었다. 뭔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또 같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알쏭달쏭했다. 왜 이렇게 당혹스러울까?
티펜브룬의 대답은 이렇다. 분명 같은 MP3 파일이니 다를 것은 없다. 하지만 듣는 순간마다 우리가 포커스를 두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결국 다르게 들리는 것이다. 처음엔 MP3와 24비트 파일의 비교를 위한 시연이라 생각했다가 모두 한 방 먹고 말았다.
이윽고 그의 흥미로운 이야기 보따리가 펼쳐지는데, 그 내용을 아래와 같이 간략하게 정리해봤다. 특정 제품에 대한 정보보다는 우리가 음악을 즐기고, 오디오에 빠지게 되는 그 근본적인 부분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어서 상당히 유익하리라 본다.
자, 이제 같은 곡을 MP3와 24비트 파일로 비교해보겠습니다. 분명 뭔가 달라졌죠. 대체 뭐가 달라졌을까요? 대부분 좀 더 피아노 소리가 나오고, 좀 더 보텀 엔드가 나오고 하는 식의 설명이 나옵니다. 그럼 여기서 좀 더(More)에 관해 알아보죠. 이게 양을 뜻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두 명의 여인이 있다고 칩시다. 한 명은 날씬하고, 갸름한 얼굴이고 또 한 명은 뚱뚱합니다. 모어라는 관점에서 보면 후자가 더 낫죠. 그래서 여러분들은 후자가 더 미인이라고 생각합니까?
누가 아름답다고 하면 대개는 자기 모습을 기준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속으로는 자기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속성이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런 아름다움이 상대적인 기준으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죠.
예를 들어 저 벽을 봅시다. 무슨 색깔이죠? 아마 푸른색이나 녹색은 아닐 테고, 자세히 보면 브라운 계열이라 판단이 됩니다. 이런 판단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사실 색맹도 많고, 사람마다 색을 보는 기준이 조금씩 다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판단이 나올까요?
인간의 감각은 정말로 민감합니다. 혀로 뭘 하나 맛보면 거의 수 억개의 정보를 본능적으로 집어낸다고 합니다. 눈은 아주 희미한 빛 아래에서도 많은 사물을 보죠. 귀는 약간의 진동조차 감지해 냅니다. 거의 원소 단위로 잡아낼 만큼 섬세하답니다.
그런데 여러 감각 기관 중에 귀는 참 특이한 존재입니다. 다른 기관들이 다분히 주관적인데 반해, 귀는 객관적이기 때문이죠. 절대로 가짜를 만들어 듣지 않습니다. 만일 내 얘기를 듣는다고 칩시다. 여러분의 머릿속에선 계속 제가 떠든 내용을 반복해서 전달합니다. 집중하면 할수록 뇌파에 정확하게 전달됩니다. 이때 그 뇌파를 검사해보면, 제가 말하는 주파수 곡선과 같은 곡선을 그립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귀는 늘 열려있기 때문에 우리가 잠든 상황에도 작동합니다. 즉, 자고 있을 때에도 듣는 것이죠. 빛에도 청각이 반응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엔 눈보다 더 효율적이랍니다.
그럼 두 가지 종류의 음악을 듣는다고 가정해 보죠. 귀를 통해 신경 써서 듣다 보면 둘 중의 하나가 보다 쉽게 다가옵니다. 왜 그럴까요? 음악은 우리 종족(Species)의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음악은 이미 우리의 DNA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따라서 음악에 따라 인간의 원소들도 움직입니다. 이렇게 따져보면 우리 머릿속에는 어떤 음악적 모델(Musical Model)이 있다고 봐야겠죠. 그 모델은 모든 인간에게 존재합니다. 그것은 젊건 늙건, 교육을 받았건 받지 않았건, 한국인이건 독일인이건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이상적인 음악적 모델에 가까울수록 환희를 느끼게 됩니다. 그 이유를 좀 더 추궁해볼까요? 예를 들어 새나 돌고래, 원숭이 등을 봅시다. 원시적이지만 아무튼 자기들끼리 음을 갖고 소통합니다. 우리의 말이라는 것도 실은 이런 음에서 시작합니다. 다만 여러 형태로 발전했을 뿐이죠.
만일 시간을 1천 년 전으로 돌린다면, 유럽의 경우 독일, 덴마크, 영국,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서로 소통이 가능했습니다. 2천 년 전으로 돌아가 볼까요? 여기에 스페인과 같은 지역도 포함이 됩니다. 한데 언어가 계속 분화해서 발전했으므로, 지금은 서로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게 된 것이죠. 하지만 음악은 이런 것과 상관없는, 일종의 공통 언어입니다. 인간의 깊은 감정을 표현하고 있죠.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처음으로 척추 동물이 생긴 연대를 약 35만년전으로 봅니다. 이에 관한 작은 벌레 화석이 증거 자료입니다. 이 화석을 보면 눈이며 코, 귀 등이 전혀 없다는 데에 놀랄 겁니다. 오로지 있다면 입과 항문 정도입니다. 그러면 어떤 감관을 사용해서 활동했을까요? 바로 몸을 통해 느끼는 압력차를 이용해서 살았습니다. 이런 압력에 대한 감각(Pressure Sensitivity)을 통해 위로 갈지 아래로 갈지, 옆으로 갈지 그냥 서 있을지 판단했습니다. 또 이를 통해 먹이도 찾고, 자기 짝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원형의 모습이 모든 척추 동물에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안에도 있죠. 이런 압력에 대한 감각은 척추와 뇌가 만나는 부분에 위치합니다. 대략 뒷통수의 아랫 부분 정도가 될 겁니다. 그런데 이곳이 바로 음악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 위에 다른 감각에 대한 부분들이 얹혀지는 형태인 것이죠. 따라서 이렇게 압력을 감지하는 기관과 음악을 듣는 기관은 같은 것이고, 인간의 뿌리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고 보면 좋습니다.
자, 우리가 왜 여기에 있을까요? 우리를 탄생시킨 부모가 있기 때문이죠. 사랑의 결합을 통해 우리는 탄생이 되었고, 그 결과 14주가 경과하면 이미 듣기 시작합니다. 제일 먼저 듣는 것은 엄마의 심장 고동 소리입니다. 그 후 자기 심장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와 더불어 바깥의 소음이나 떠드는 소리, 웃음소리, 음악 등을 듣게 됩니다. 모든 인간은 이런 소리에 대한 경험을 갖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처음 갖게 되는 감관이 청각이고, 맨 나중에 잃게 되는 것도 청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관련된 개인적인 경험을 하나 소개하죠.
12년 전에 저는 모친을 잃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병원에서 심한 고통 속에 돌아가셨습니다. 죽기 며칠 전, 하는 수 없이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모르핀을 주사했습니다. 그 경우 의식을 완전히 잃게 됩니다.
당시에 저는 어머니를 위해 린의 클래식 시스템을 병실에 설치해놓고 있었습니다. 간간히 음악이라도 들으시라는 배려였죠. 실제로 모친께서는 클래식 싱어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혼수상태의 와중에 제가 음악을 켜니까 모친이 반응하더군요. 음악에 맞춰 가볍게 손을 흔드셨으니까요. 의사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 당연히 어머니의 표정은 평화로웠죠.
지금 저는 한국에 와 있습니다. 여기서 낯선 한국어를 들으면 일종의 소음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조금 한국어를 배우면, 통상은 2~300 개 정도의 단어를 외우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나중에는 어떤 단어의 시작 부분만 듣고도 뭔지 알게 됩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소음으로 다가오죠. 복잡한 오케스트라 음악을 듣는다고 치면 얼른 이해가 갈 겁니다. 그러다 몇 개의 음을 연결하고, 몇 개의 단위로 나누고 하면서 점차 이해하게 됩니다. 이 과정이 쉬워질수록, 음악과의 소통이 더 수월해지죠. 음악은 인간의 원초적 감정들, 그러니까 사랑, 증오, 분노, 고통 등의 감정을 모두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가볍게 터치만 해도 느낄 수 있는 상황과 유사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한다고 칩시다. 꼬마 아이가 와서 다리를 건드리면 과민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키우는 개가 와서 건드리면 얼른 발끈하고, 발로 걷어찰 수도 있습니다. 같은 터치인데도, 우리는 금세 우리의 종족인지 아닌지 그 차이를 알아냅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다시 처음에 했던 실험으로 돌아가죠. MP3와 24비트로 들을 때 왜 차이가 생길까요? 실은 진짜 원음에 가까울 수록, 우리는 따라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더 느린 속도로 세밀하게 판별할 수가 있죠.
여기서 한 가지 예를 들어보죠. 밤에 낯선 집에 들어섰다고 하죠. 거의 빛이 없는 상황으로, 계단을 통해 2층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처음에 발을 내딛어 대략 한 계단의 높이를 판별하고 나면 이후 수월하게 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각 계단의 높이가 불규칙하면 우리는 그냥 엎어지게 되죠. (그리고 그집 남편이 깨어나게 되고요)
마찬가지로 음악에도 계단처럼 구조가 있습니다. 그 구조를 알고, 각각의 타임을 알면 훨씬 쉽게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실황 공연에 가면 굳이 무대를 보지 않고 눈을 감고 들어도 우리는 그냥 따라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이파이는 그렇게 자연스럽지는 않습니다. 왜 쫓아가기 힘들까요? 음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죠. 또 터치와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똑같은 악보를 갖고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치는 것과 우리 손녀딸 아이가 치는 것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같은 음을 치는데도 말이죠. 뛰어난 피아니스트에게는 그의 필링과 감정 등이 피아노 터치 하나하나에 묻어납니다. 우리는 그 감촉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설픈 연주와 차이를 느끼는 것이죠. 누가 기타를 치면 기타줄을 치는 손가락의 감촉을 느끼고, 가수의 노래를 들을 땐 그의 손짓이나 움직임도 감지합니다. 이런 터치는 음악 감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사실 음악이 뭐냐 라고 물으면, 저는 또 다른 의미에서 터치라고 답하겠습니다. 음악은 공기를 터치하고, 그것을 우리가 듣기 때문이죠. 그것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행위입니다. 그래서 오래 전에 죽은 베토벤의 음악을 우리가 생생하게 느끼고 감동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터치는 정말로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독서라고 해도 직접 책을 읽는 것이 더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독서중에 우리는 종이결을 터치하니까요. 역시 최고의 감각은 직접적인 터치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음악에서 우리는 직접적인 터치를 할 기회는 별로 없습니다. 100년 전으로 가볼까요? 만일 브람스가 새 음악을 작곡하면 우선 프란츠 요셉 황제부터 들려줍니다. 2년 후엔 인도의 황제나 영국 여왕이 들을 수 있겠죠. 3년 후에는 베를린의 카이젤이 듣고요. 그리고 3~40년간 다시는 연주되지 않습니다.
반면 하이파이는 전세계 모든 음악을 다 접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음악이라는 보물 창고를 여는 열쇠인 것이죠. 그리고 그 터치를 느끼기 위해선 하이파이가 보다 정교하고, 정확해야 합니다. 거의 피코 세컨드에 이르는 순간의 타이밍을 잡아내야 하니까요. 다행히 저희 린에는 최고의 엔지니어들과 연구원들이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를 보죠. 저희는 모두 자체 제작합니다. 30년 전에 이미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썼지만 지금은 채용하지 않습니다. 노이즈가 많기 때문이죠. 대신 직접 보드를 제작해서 소프트웨어를 담습니다. DS 시리즈의 경우, 모든 파일에 다 대응하고, 필요할 때마다 업그레이드를 제공합니다. 또 엔트리 클래스부터 플래그쉽까지 가격대가 다양합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수준에 따라 선택하기만 하면 됩니다.
저는 한국에 자주 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회에 린을 홍보하기 보다는 여러분이 음악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또 자주 음악을 접하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위에서 한 강연이 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S) 참고로 브랜드명 린(Linn)이 무슨 뜻인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폭포에서 물이 떨어질 때 바로 물웅덩이가 생기는 부분이라고 했다. 실제로 린이 있는 공장 지역에 폭포가 있고, 지역 이름도 린이라고 한다.
또 하나, 이런 폭포 근방에는 물이 많아 여기서 마실 수도 있고, 또 씻을 수도 있다. 이 청량한 물을 갖고 맛있는 위스키도 만들 수 있다. 상당히 멋진 공간인 것이다. 린이 하이파이 시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위의 내용이 앞으로의 오디오 라이프에 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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