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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폰(Gryphon)을 주재하는 플레밍 E. 라스무센(Flemming E. Rasmussen 이하 FR)씨의 방한을 계기로, 인터뷰도 하고, 신제품 런칭 쇼도 함께 했다. 약 이틀간에 걸친 강행군이었는데, 지독한 감기 몸살에도 불구하고 큰 탈이 없이 끝나서 다행이었다. 특히 라스무센 본인이 그리폰을 좋아하는 단 한 명의 애호가라도 더 만나고 싶어 해서 어쩔 수 없이 1, 2부의 쇼 모두를 소화해야 했다. 아마 주변에서 조마조마했을 것이다. 어쨌든 행사는 무사히 끝냈고,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던 나는 이참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이번 인터뷰는 여러모로 의미가 깊었다.

문득 코엑스에서 벌어진 행사에서 누가 내게 다가와서 물어본 질문이 뇌리에 떠나지 않는다. 혹시, 라스무센씨가 메탈리카(Metallica)하고 특별한 관계는 없죠? 이게 무슨 말인가? 집에 와서 구글을 뒤져보니, 하드 록과 메탈을 좋아하는 저 분의 질문이 난데 없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초창기 메탈리카의 녹음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이뤄졌다. 이 시기에 "Ride the Lightning" "Master of Puppets" "... And the Justice for All" 등의 걸작 앨범이 녹음된 바, 이를 프로듀스한 인물이 바로 플레밍 라스무센이다. 정확히는 중간에 E.라는 이니셜만 빼면 스펠링이 모두 똑같다. 아, 그럴 만도 하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리폰과 메탈리카는 아무 관계도 없다. 정식으로 이 회사가 오픈한 것은 1985년이고, 이때 처음 발매한 해드 앰프가 이듬해 시카고에서 열린 CES에서 주목을 받으며, 일약 하이엔드 오디오계의 신데렐라로 등장한 것이다. 실제로 메탈리카 역시 이 시기에 걸작 앨범들을 줄줄이 발표하며 메탈뿐 아니라 록, 팝 뮤직 씬 전체를 후끈 달아오르게 하는데, 그런 면만 놓고 보면 공통점이 있을 수 있지만, 절대로 특별한 관계는 없다. 만일 다음에 라스무센씨를 만나 이 이야기를 하며 너털웃음을 터트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몇 년 전에 방한한 것을 계기로 안면을 튼 필자는 이후 뮌헨 하이엔드 오디오 쇼에서 자주 만난 덕분에 상당한 친분이 생겼다. 하지만 개근상을 받아도 좋을 만큼 이 쇼에 단골로 출전했던 그가 딱 한 번, 그러니까 2010년 쇼에는 불참했다. 당시 나는 그리폰 부스에 가서 이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우선 이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 이렇게 한국에서 또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당시 부스에 갔더니 약간 뒤숭숭하더군요. 어딘가 아프다는 말을 들었는데, 잠깐 설명해주시죠.

FR : 당시 쇼 참가를 위해 뮌헨 행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에 갔습니다. 그리고 탑승을 기다리는 사이 가벼운 심장 발작이 일어난 것입니다. 덕분에 응급실에 실려 가서 침대 신세를 져야했죠.

FR : 네. 하지만 이번 방문 땐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한국에 오려면 코펜하겐에서 프랑크푸르트로 일단 와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합니다. 하지만 이곳 공항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큽니다. 비행 시간을 맞추기 위해 가방을 들고, 어깨에 메고 해서 허겁지겁 달리다 보니 겨우 자리를 잡았을 때엔 완전히 땀투성이더군요. 거기다 왜 이리 실내 온도가 낮던지 ... 덕분에 완전히 감기 몸살에 걸려버렸습니다.

 

- 사실 라스무센씨처럼 거구에다 강인한 인상을 가진 분이 기침을 하고, 몸살이 났다고 하는 것 자체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아무튼 최악의 컨디션임에도 직접 행사를 진행하고, 많은 애호가들을 응대하는 모습에서 작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이번에 런칭된 신제품 이야기를 해보죠. 일단 메피스토 파워 앰프와 판도라 프리앰프에 대해 소개해주시죠.

FR : 원래 이 제품은 2010년, 그리폰 창립 25주년 기념작으로 발매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픈 바람에 좀 연기가 되었습니다. 작년 뮌헨 쇼에서 프로토타입을 발표한 후 세부 수정을 거쳐서 이제야 정식으로 런칭된 것입니다.

FR : 맞습니다. 사실 이 두 제품은 이전과는 레벨 자체가 다릅니다. 매우 유니크하면서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듀얼 모노, 노 피드백, 광대역 특성 등 그간 그리폰이 내세운 기술적인 부분을 담고 있으면서도 세부적인 개량을 거듭해서 종합적으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퀄리티를 갖고 있는 것이죠.

FR : 놀라지 마세요. 무려 180Kg에 이른답니다.

 

- 참 엄청나군요. 그러고 보니 스테레오 및 모노 블록 구성인데, 모노 블록에 초점을 맞춰서 여쭙겠습니다. 일단 외관이 이전 제품들과 차별화되더군요. 특히 가운데 놓인 앞뒤로 긴 통로같은 것이 인상적인데, 무슨 역할을 하는 거죠?

FR : 기본적으로 메피스토는 듀얼 모노 구성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의 섀시에 두 개의 파워 앰프가 배치되어 있는 것이죠. 이것은 모노 블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럴 경우, 각각의 파트는 양쪽으로 열을 발산하게 됩니다. 물론 메피스토에는 양쪽으로 방열핀이 있어서 냉각을 시키지만, 가운데쪽도 이런 구조를 통해 냉각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 기본 원리는 굴뚝을 생각하면 됩니다. 밑에서 공기가 올라오면, 가운데 나 있는 통로를 거치면서 위로 발열하게 만드는 것이죠. 사실 정상적인 상태의 인간이라면 늘 체온이 일정합니다. 클래스 A 앰프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야 제 성능을 발휘하는 것이죠.

FR : 맞습니다. 클래스 AB는 효율면에서 뛰어나지만, 기본적으로 온도가 올라가고 내려가는 일이 반복됩니다. 그것은 당연히 왜곡을 불러옵니다. 클래스 A처럼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그런 면에서 더 유리합니다. 메피스토는 그 구성을 보면 교과서와 같은 클래스 A 설계를 했습니다. 결코 일체의 타협을 하지 않았습니다. 클래스 A는 기본적으로 무겁습니다. 당연히 히트 싱크가 커야 하고, 트랜스도 커야 합니다. 이런 제조 방식은 비쌀 수밖에 없죠.

 

- 그렇다면 이런 방식의 앰프가 갖는 최대 강점은 무엇일까요?

FR : 바로 저능률 스피커를 충분히 구동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피크가 나는 지점까지도 아무런 무리 없이 구동합니다. 메피스토의 경우, 스피커가 0.5오옴까지 떨어져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것은 반대로 강력한 파워 서플라이가 뒷받침이 되어야 가능하죠. 따라서 어떤 스피커든 연결해서 쓸 수 있습니다.

FR : 통상의 앰프를 보면, 음성 신호가 입력된 다음 볼륨단이 반응합니다. 이것은 그만큼 시간차가 발생합니다. 저희는 입력단이 곧 볼륨단에 연결되도록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볼륨단은 전통적인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바이어스를 조정하는 어테뉴에이터 역할을 합니다. 여기에 일체의 저항이나 캐패시터가 관여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프리의 서킷과 무관한 최단 경로의 신호 전송 프로세스를 확보하는 것이죠.

 

- 그렇다면 이 부분은 이번에 새롭게 개발된 그린 바이어스 기능과도 관계되겠군요.

FR : 맞습니다. 판도라와 메피스토를 연결할 경우, 이 기능이 작동합니다. 기본적으로 클래스 A 설계는 늘 일정한 전력을 소모하게 됩니다. 음성 신호가 유입되지 않아도 늘 전원을 소모합니다. 그러나 판도라의 새로운 볼륨단과 만나게 되면, 바이어스 조정으로 이 부분을 효과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낮은 소리로 음악을 들을 경우, 그만큼 전력 소모량이 줄어든다는 것이죠. 사실 이 개념은 15년 전에 처음 착상했는데,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이제야 제품으로 실현되었답니다.

FR : 원래 홀름그렌은 스웨덴에서 사운드 엔지니어로 일했던 분입니다. 트랜스에서 코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 부분에서 탁월한 기술력을 갖고 있어서, 이번에 채택했습니다.

FR : 아닙니다. TR 앰프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최초의 제품은 이미 70년대에 일렉트로컴파니에트에서 나온 바 있습니다. 하먼 카든에서도 이를 응용한 모델이 있고요. 그러나 제대로 구사하기란 쉽지 않죠. 거기에 메피스토는 광대역 재생이라는 숙제를 아울러 갖고 있습니다. 즉, 일체의 피드백을 걸지 않으면서 광대역을 실현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앰프 설계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겁니다. 예를 들어 큰 창이 있다고 칩시다. 우리는 이를 통해 바깥 세상을 구경하지만, 역으로 바깥에서도 우리를 살펴볼 수 있죠. 마찬가지로 이런 제로 피드백을 구성할 경우, 역으로 프리앰프에 큰 데미지를 줄 수도 있습니다. 이 서킷을 보호하는 것도 큰 관건입니다.

 

- 당연히 이런 앰프엔 파워 서플라이의 비중도 큽니다. 어떤 구성을 했는지 궁금하군요.

FR : 사실 파워 서플라이는 더 이상 폼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 역시 전류의 흐름과 관계하고, 음질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당연히 큰 캐패시터가 필요합니다. 메피스토엔 스웨덴제 리파(Rifa) 제품이 쓰였는데, 상당한 고가입니다. 또 일부 부품은 일본에서 만드는데, 작년에 쓰나미의 영향으로 부품 공급이 늦어져 제작에 큰 차질을 빚기도 했습니다.

FR : 이것은 작은 부품들을 촘촘히 PCB에 부착하는 방식인데, 주로 핸드폰과 같은 제품을 만들 때 사용합니다. 약 100만 개 이상의 부품을 작은 PCB에 담을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납이 가득 찬 용기에 담지 않고, 확 부는 방식으로 접착시킵니다. 이 방식의 강점은 역시 신호 경로를 짧게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기본적으로 대량 생산품에 쓰이지만, 이번에 저희 제품에 채용하게 되었습니다.

FR : 이것은 작동 시 다른 부품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 장점이 있습니다. 단, 크게 만들 수 없기 때문에, 파워 앰프에 쓰기는 힘들고, 프리에 주로 쓰고 있습니다.

- 판도라는 프리앰프임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파워 서플라이가 있더군요. 이렇게 거대한 파워단이 따로 나 있을 필요가 있을까요?

FR : 이렇게 엄청난 캐패시터를 동원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이것이 뱃터리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양질의 전원이 유입되죠. 기본 원리는 이렇습니다. 프리앰프의 동작부에 나 있는 파워 서플라이에서 전원을 가져다 쓰되, 별도의 전원부에서 이쪽으로 계속 공급하는 방식입니다. 한쪽에선 쓰고, 또 한쪽에선 보충하는 식이죠. 여기에 얼마나 물량 투입을 했냐면, 파워 서플라이 한쪽 채널분만 갖고도 통상 100W급의 파워 앰프를 만들 수 있답니다.

FR : 맞습니다. 예전 모델을 기반으로 개량한 것이죠. 당초 레가토를 만들 때의 목표는 광대역의 재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카트리지에서 나오는 적은 전류의 음성 신호를 증폭해서 광대역을 구성해야 함으로, 이 부분에서 에로 사항이 많았습니다. 특히, 노이즈가 문제였죠. 이를 밸런스 방식으로 구성해서 극복했는데, 당시 그런 아이디어로 접근한 제품은 하나도 없었죠.

 

- 이번에 나온 것은 상당히 호화 사양이더군요.

FR : 아무래도 그 사이 엄청난 턴테이블도 많이 나왔고, LP 리바이벌 붐도 있고 해서, 그에 걸맞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저희 제품은 레모(LEMO) 잭을 제공하는데, 기본적으로 밸런스 설계라 연결 시 주의가 필요합니다. 즉, 저희가 제공하는 어댑터를 써서 꼭 밸런스 케이블을 쓰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애초에 저희가 목표로 삼은 음을 들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판도라 앰프를 산 분들은 본 기에서 별도의 파워 서플라이를 구매하지 않고, 판도라의 전원부를 공유하면 됩니다.

FR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