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quarius - Aqua

어릴 때 본 TV시리즈 중에 '슬기돌이 비키'라는 만화영화가 기억이 난다. 바이킹추장의 귀여운 아들인 주인공 '비키'가 아버지와 함께 바다를 누비며 겪게되는 모험을 그린 씨로드무비(?)형식의 인상깊은 시리즈물이었다. 어릴 때 이런 만화영화 한편이 정서적으로나 세계관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큰 것이어서, 그 이후로 바이킹은 세계평화의 수호자인 줄로만 알고 살았다. 하지만, 조금 커서 '바이킹'이나 '롱 쉽' 같은 영화를 보고나서부터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결국 바이킹의 정체를 알고난 후의 그 배신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년전 지구의 반대편에서 바다를 누볐던 바이킹은
만화영화속의 신비로운 분위기와 함께 여전히 묘한 매력을 풍긴다. 바이킹의 주무대는 스칸디나비아를 포함한 북유럽지역으로서 오늘날 유럽에서도 가장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는 나라들이 이 지역에 속해있다. 울창한 숲과 빙하, 그리고 호수...그들은 선조들의 덕택으로 자원이 풍부하고 천예의 환경을 갖춘 곳에서 자리잡게된 것이다.

이러한 자연환경은 정서적으로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언젠가부터 대중음악시장에서 이 지역출신 아티스트들이 커다란 세력을 형성해왔다. 아바, 에이스 오브 베이스, 아-하, 잉베이 맘스틴, TNT, 시크릿 가든...

여러 쟝르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의 음악에는 일관된 공통점이 발견된다. 바로 빙산과도 같은 '청량감'이다. 이중에서 특히, 아바, 에이스 오브 베이스 의 음악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연스레 묶게 되는데, 단순한 팝댄스를 기반으로 해서 세계음악시장을 평정한 바 있다.

약속이나 한 듯이 꼭같은 장르, 그러나 보다 현대적인 사운드를 무기로 한 '아쿠아'라는 밴드가 이들의 대를 잇는 위업을 달성하고 있다.
98년 발매한 데뷔앨범 'Aquarium'은 전세계적으로 2500만장을 팔아치우면서 종전에 에이스 오브 베이스가 세운 기록을 상회했었다. 배타적인 미국시장에서도 'Barbie Girl'이 두번에 걸쳐 넘버원을 차지하는 특이한 기록을 남기며 한 앨범에서 무려 6곡의 싱글히트를 기록했다.

그로부터 2년 후, 그들의 두번째 앨범 'Aquarius'가 발매됐다. 발매 이전부터 화제의 대상이었던 작품이지만, 항상 이런 상황에서 조심스럽게 떠올리는 건 '서퍼머 징크스'- 데뷔앨범을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CD를 꺼내면서 눈에 확 들어오는 로고 'HDCD'... 오잉? 첫트랙부터 강한 흡입력으로 듣는 이의 귀를 잡아 끈다. 웃음이 절로 번진다.

이런... 이번에도 이토록 단순한 멜로디로 승부를 걸다니... 만화영화주제가로 쓰면 딱 좋을 멜로디이다. 다시금 '비키'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 사운드는 테크노를 기저로 하면서도 심포닉한 효과를 곳곳에
심어놓았다. 게다가 미국시장을 의식한 듯한 컨추리와 라틴까지...

이 앨범은 아쿠아의 멤버들이 작사, 작곡, 프로듀싱까지 맡고 있다. 아바, 에이스 오브 베이스가 그랬듯이 이점 역시 이 동네 뮤지션들의 공통점이다. 아바의 사운드를 유심히 들어보면 70년대의 녹음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상큼함이 있다. 예전에 그룹 E.L.P. 의 키스 에머슨이 아바의 음악을 '프로그레시브'라고 표현했을 만큼, 듀플리케이티드 레코딩이라는 그들의 녹음기술은 30년이 지나도록 그들의 음악을 싱싱하게 유지시키고 있다.
에이스 오브 베이스의 사운드 역시 여행중이던 MCA레코드 사장의 귀를 잡아끌어 그들의 성공을 이끌었으며, 아쿠아는 여기에다 밀레니엄 사운드라는 장식을 달았다. 앨범트랙들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한다.

첫트랙이자 첫싱글인 'Cartoon Heroes'는 뮤직비디오와 함께 보아야 한다. 이곡을 듣고 영상이 궁금해지면 MTV 나 채널V, 혹은 기타 뮤직채널을 틀면 쉽게 만날 수 있다. 쥴 베르느원작의 '해저 이만리'에서 영감을 얻은 이곡은 보컬리스트이자 홍일점인 르네 크로포드의 '뽀드득'거리는 보컬이 동화속으로 안내한다.

발라드넘버 'We Belong to the Sea'에 와서 곡의 성격에 맞게 음색이 바뀌는 르네를 보면서 다소 당황하게 된다. 단순한 멜로디인데 마치 공익광고에나 쓰이면 어울릴 듯한 분위기이다.
개인적으로는 데뷔앨범에 있던 명발라드 'Turn Back Time'과 같은 곡이 하나쯤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트랙들을 뒤져본 결과... 역시 있었다. 앨범과 동명타이틀의 'Aquarius'는 방송차트에서의 인기가 예상되는 곡이다. 멜로디라인은 물론이고 관현악을 도입시킨 시도가 조금도 작위적이지 않고 곡의 분위기를 아름답게 엮어가고 있다.
'오페라의 유령'을 연상케하는 'Halloween'과 최근의 추세를 담은 라틴리듬의 'Cuba Libre'같은 곡들은 즐거움을 가득 실어다 준다.

역사를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했던가?
아쿠아와 모차르트... 이런 조화와 보편화는 어떨까 싶다. 밀레니엄 벽두를 장식하고 있는 아쿠아의 음악을 듣다보면 그들의 명랑한 음악속에는 과거와의 대화가 있음이 느껴진다. 앨범의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신디사이저와 관현악, 바닷물소리와 각종 효과음들 은 HDCD 녹음에 실려서 듣는이를 시종 동화와 모험의 세계속으로 몰아간다.

상업성과 작품성이라는 음악의 양면성은 각각의 시각에서 볼 때, 언제나 적대적이고상호 비판적일 수 밖에 없어왔지만 이념과 시공을 초월한 동화와 같은 이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헤비메탈과 프로그레시브만이 진정한 음악이라고 편애했던 시절의 기억에 웃음이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