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앨범]길샤함과 악마주의
클래식 바이얼린계는 소위 비르투오소들의 각축장이라 할 수 있는데, 정경화와 무터로부터 장영주 그리고 린다 브라바에 이르기까지 메이저레이블은 여성들에 의해서 장악되다시피했다. 한편으로, 음악본연의 자세로부터 비주얼한 부문으로까지 대중적 평가의 항목이 확대되어가고 있는 클래식음악의 대중음악적인 타협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까지 일고있어서 일부 여성아티스트들의 자질에 대한 의심마저 일고 있다.이러한 바이얼린계에서 길 샤함의 존재는 가히 독보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성악가들과 같은 미남은 아니지만, 테크닉에 있어서는 물론이고 폭넓은 레파토리와 귀엽게 생긴(?) 외모로 인해 여성팬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바이얼리니스트이다.
길 샤함의 이번 앨범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13곡 모두 음울하고 어두우며, 다소 악마적이기까지 분위기로 모아놓은 일종의 컨셉앨범이다. 타이틀에서 일감으로 떠오르는 곡이 '악마의 트릴' - 역시 대표적인 간판트랙으로 자리잡고 있다. 파가니니의 카프리스나 사라사테의 곡 역시 빠질 수 없는 작품들이다. 이외에도 죤 윌리암스가 특별히 편곡한 곡이 타이틀곡으로 서두를 열고 있다.
앨범의 타이틀에서 짐작하셨겠지만, 이 앨범은 여름을 겨냥한 납량물의 차원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쟈켓만 보아도 대단히 서늘함이 느껴진다. 베를린필과 스콜피온스의 협연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느낀 점이지만, 클래식음악 역시 변화의 시대에 동참하기 위한 자구책을 부단히 마련하고 있음을 보는 순간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하지만, 음악의 역사 역시 시대적 요구일 뿐이며, 누군가에 의해서 방향이 좌지우지될 수 있는 성격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되뇌어볼 수 있는 앨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