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단조 미사, 마태수난곡, 성처녀의 저녁기도 등의 전곡반으로 우리 오디오파일들에게 크나큰 선물을 안겨주었던 존 엘리어트 가디너가 바흐 서거 250주년을 맞아 칸타타 순례를 벌이고 있습니다.
많은 명반에서 호연한 몬테베르디 합창단(The Monteverdi Choir), 잉글리쉬 바로크 솔로이스츠(English Baroque Soloists)와 함께입니다.
가디너는 올해, 바흐의 칸타타 전곡을 그 곡이 원래 연주되도록 의도된 주에 맞추어 유럽전역의 교회들을 돌며 연주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음반은 바로 이 여정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바흐는 성령강림절 칸타타를 전 생애에 걸쳐 여러곡 남겼습니다. 이 음반에는 BWV 34,59,74,172 등 네곡이 실려있습니다. BWV 172는 1714년, 59는 1723년, 74번은 1725년, 34번은 1746년-바흐의 만년에 작곡되었습니다. 작곡된 시기는 다 다르지만 모두 성령강림절의 첫날을 위한 칸타타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소재도 같아서, 요한복음 14장23절에서 31절까지를 근본으로 하여 다양한 작사가들이 남긴 가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BWV 172는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세대의 트럼펫과 팀파니가 장엄하게 기쁜 날을 맞이하는 서주를 펼치고, 이어 합창단이 " Erschallet, ihr Lieder. (Burst forth, ye songs).. 터져나오라 너 노래여, 울려라 현악기여 오 가장 축복받은 날!..."이라고 노래합니다.
특이한 것은 BWV 172의 제 5곡입니다. 이 부분은 칸타타라는 장르적 특성을 생각할때 이례적으로 센슈얼합니다. 믿는자의 영혼과 성령의 관계가 사랑을 갈구하는 여인과 남성의 관계로 설정되어, 믿는 자의 음성은 소프라노 (마르티나 얀코바)가, 성령의 음성은 카운터테너 (로빈 블레이즈)가 노래합니다. 마르티나 얀코바의 음성은 맑은편은 아니지만 표정이 풍부해서 가사의 애절함이 잘 살아나고 있습니다.
BWV 59와 74는 이란성 쌍둥이같은 곡입니다.
시작텍스트도 같고 시작멜로디도 같지요. Wer mich liebet, der wird mein Wort halten (=He who loves me will keep my word)라는 성경구절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바흐는 독창적인 '숫자 알파벳'을 이용해 곡의 얼개를 짭니다.
A는 1,Z는 24 하는 식으로 알파벳에 일련번호를 부여하면, wer=43, mich=32, liebet=51, der=26, wird=51, mein=39, word=71 halten=57 이런 식의 숫자가 되죠.
wer mich liebet라는 첫구절의 숫자 합은 126입니다. 바흐는 BWV 59번의 길이를 126마디로 맞춤으로써 성경말씀이 자신의 음악이라는 그릇속에 숨쉬도록 했습니다. 이런 방법은 74번 칸타타에서 다른 구절을 가지고 시도되기도 하는데, 아무튼 바흐라는 위대한 작곡가의 천재성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59와 74에서는 가수가 좀 바뀌어서 소프라노에는 막달레나 코제나, 베이스엔 피터 하비가 등장합니다. 코제나는 동구권 출신으로, 비교적 신예에 속하는 가수입니다. 98년쯤 바흐 칸타타 아리아를 모은 첫 독집이 나왔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단정하고 청아한 가창이 매력입니다.
전체적으로는 59보다 74가 좀 길고, 음악 내용적으로도 더욱 드라마틱합니다.
마지막에 수록된 BWV34 "O ewiges Feuer, o Ursprung der Liebe (O eternal Life,O source of love)"는 가장 스케일이 큰 제1곡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가장 유명한 알토 아리아도 갖고 있습니다.
Wohl euch, ihr auserwahlten Seelen (=Happy are you, you chosen souls)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제3곡은 음반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버나다 핑크(Bernarda Fink)라는 알토가 노래를 맡았는데, 울림이 풍성하고 그윽한 느낌을 주는 좋은 가창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34번은 끝마무리도 찬연하고 장대합니다. B단조 미사의 대규모 합창곡들에 비견되는 스케일과 감동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디너의 바흐 연주는 아르모니아 문디의 스타 지휘자인 헤레베헤와 자주 비교되는데, 담백하고 정확하고 스피드가 빠른 편이며 다이내믹하지요. 한편으로는 이런 이유때문에, 바흐의 곡을 가디너 연주로 들으면 바흐가 평생 지니고 있었을 깊은 종교적 신심이 우러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 역시 비슷한 이유로, 헤레베헤가 지휘한 칸타타들을 더 즐겨듣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 음반에 실린 4개의 칸타타는 모두 '성령강림'이라는 크리스트교의 큰 경사를 찬양하는 것들이므로 기본적으로 밝고 기쁜 톤을 갖고 있습니다. 가디너의 연주스타일 자체도 힘이 들어가있지 않고 연할땐 연하게 진하고 강할땐 강하게라는 다이내믹의 원칙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들어도 들어도 물리지 않는 좋은 연주입니다.
바흐의 서거 250주년을 맞아 기획된 이 시리즈로는 이미 아르히브 레이블에서 12장의 음반이 (이것을 포함하여) 나온 것으로 돼 있습니다.
바흐 칸타타 순례는 듀너드 펀드, 미스터 도날드 칸, 콘 재단, 알베르토 빌라 등의 기부금으로 수행된다고 적혀 있습니다. 재단 뿐 아니라 개인들이 이런 문화 프로젝트의 주요 기부자가 된다는 유럽의 현실이 새삼 부럽습니다.
제 점수는 별다섯개 만점에 4개반. 들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이현식.
가디너는 올해, 바흐의 칸타타 전곡을 그 곡이 원래 연주되도록 의도된 주에 맞추어 유럽전역의 교회들을 돌며 연주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음반은 바로 이 여정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바흐는 성령강림절 칸타타를 전 생애에 걸쳐 여러곡 남겼습니다. 이 음반에는 BWV 34,59,74,172 등 네곡이 실려있습니다. BWV 172는 1714년, 59는 1723년, 74번은 1725년, 34번은 1746년-바흐의 만년에 작곡되었습니다. 작곡된 시기는 다 다르지만 모두 성령강림절의 첫날을 위한 칸타타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소재도 같아서, 요한복음 14장23절에서 31절까지를 근본으로 하여 다양한 작사가들이 남긴 가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BWV 172는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세대의 트럼펫과 팀파니가 장엄하게 기쁜 날을 맞이하는 서주를 펼치고, 이어 합창단이 " Erschallet, ihr Lieder. (Burst forth, ye songs).. 터져나오라 너 노래여, 울려라 현악기여 오 가장 축복받은 날!..."이라고 노래합니다.
특이한 것은 BWV 172의 제 5곡입니다. 이 부분은 칸타타라는 장르적 특성을 생각할때 이례적으로 센슈얼합니다. 믿는자의 영혼과 성령의 관계가 사랑을 갈구하는 여인과 남성의 관계로 설정되어, 믿는 자의 음성은 소프라노 (마르티나 얀코바)가, 성령의 음성은 카운터테너 (로빈 블레이즈)가 노래합니다. 마르티나 얀코바의 음성은 맑은편은 아니지만 표정이 풍부해서 가사의 애절함이 잘 살아나고 있습니다.
BWV 59와 74는 이란성 쌍둥이같은 곡입니다.
시작텍스트도 같고 시작멜로디도 같지요. Wer mich liebet, der wird mein Wort halten (=He who loves me will keep my word)라는 성경구절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바흐는 독창적인 '숫자 알파벳'을 이용해 곡의 얼개를 짭니다.
A는 1,Z는 24 하는 식으로 알파벳에 일련번호를 부여하면, wer=43, mich=32, liebet=51, der=26, wird=51, mein=39, word=71 halten=57 이런 식의 숫자가 되죠.
wer mich liebet라는 첫구절의 숫자 합은 126입니다. 바흐는 BWV 59번의 길이를 126마디로 맞춤으로써 성경말씀이 자신의 음악이라는 그릇속에 숨쉬도록 했습니다. 이런 방법은 74번 칸타타에서 다른 구절을 가지고 시도되기도 하는데, 아무튼 바흐라는 위대한 작곡가의 천재성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59와 74에서는 가수가 좀 바뀌어서 소프라노에는 막달레나 코제나, 베이스엔 피터 하비가 등장합니다. 코제나는 동구권 출신으로, 비교적 신예에 속하는 가수입니다. 98년쯤 바흐 칸타타 아리아를 모은 첫 독집이 나왔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단정하고 청아한 가창이 매력입니다.
전체적으로는 59보다 74가 좀 길고, 음악 내용적으로도 더욱 드라마틱합니다.
마지막에 수록된 BWV34 "O ewiges Feuer, o Ursprung der Liebe (O eternal Life,O source of love)"는 가장 스케일이 큰 제1곡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가장 유명한 알토 아리아도 갖고 있습니다.
Wohl euch, ihr auserwahlten Seelen (=Happy are you, you chosen souls)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제3곡은 음반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버나다 핑크(Bernarda Fink)라는 알토가 노래를 맡았는데, 울림이 풍성하고 그윽한 느낌을 주는 좋은 가창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34번은 끝마무리도 찬연하고 장대합니다. B단조 미사의 대규모 합창곡들에 비견되는 스케일과 감동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디너의 바흐 연주는 아르모니아 문디의 스타 지휘자인 헤레베헤와 자주 비교되는데, 담백하고 정확하고 스피드가 빠른 편이며 다이내믹하지요. 한편으로는 이런 이유때문에, 바흐의 곡을 가디너 연주로 들으면 바흐가 평생 지니고 있었을 깊은 종교적 신심이 우러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 역시 비슷한 이유로, 헤레베헤가 지휘한 칸타타들을 더 즐겨듣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 음반에 실린 4개의 칸타타는 모두 '성령강림'이라는 크리스트교의 큰 경사를 찬양하는 것들이므로 기본적으로 밝고 기쁜 톤을 갖고 있습니다. 가디너의 연주스타일 자체도 힘이 들어가있지 않고 연할땐 연하게 진하고 강할땐 강하게라는 다이내믹의 원칙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들어도 들어도 물리지 않는 좋은 연주입니다.
바흐의 서거 250주년을 맞아 기획된 이 시리즈로는 이미 아르히브 레이블에서 12장의 음반이 (이것을 포함하여) 나온 것으로 돼 있습니다.
바흐 칸타타 순례는 듀너드 펀드, 미스터 도날드 칸, 콘 재단, 알베르토 빌라 등의 기부금으로 수행된다고 적혀 있습니다. 재단 뿐 아니라 개인들이 이런 문화 프로젝트의 주요 기부자가 된다는 유럽의 현실이 새삼 부럽습니다.
제 점수는 별다섯개 만점에 4개반. 들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이현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