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하나 비발디 음악에 대한 재즈적 해석으로 유명한 자크 루시에가 이번에는 그의 트리오 멤버들과 함께 골드베르그 변주곡에 도전한다는 이야기를 몇달전 신문에서 보고, 어떤 음악이 나올지 많이 궁금했습니다. 음반을 구입해서 들어본 소감은, 듣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호불호가 많이 갈릴 음반이라는 느낌입니다. 일반적인 이유와는 좀 다른 이유에서 그렇습니다.
우선 간단히 소개를 해 보도록 하죠.
먼저 1번 트랙의 아리아.
클래식을 전문으로 하는 대가들의 연주에 비해 아리아의 템포는 빠른 편입니다. 중간부분에 약간의 재즈 터치가 있지만 원곡에서도 그렇듯 곡의 출발이므로 자제(?)하는 분위기입니다.
2번 트랙 (1번 변주곡).
빠른 속도의 재즈 분위기 변주가 펼쳐집니다. 그런데 원곡의 멜로디 라인 골격을 별로 손대지 않았습니다.
3번 트랙으로 넘어가면 왼손반주가 약간 에릭 사티 풍의 분위기를 띱니다. 조성도 바꿔서, 오른손파트가 원곡과 유사한데도 느낌이 많이 다르게 들립니다.
4번 트랙 (3번 변주곡)으로 가면 원곡의 얼개를 떠맡은 피아노에서 재즈적인 해체가 일어납니다. 전곡으로 보아 초반이긴 하지만 여기까지 가운데서는 가장 재즈적입니다.
5번에서는 라틴춤곡풍이 되고 8번에서는 피아노가 재즈 분위기의 싱코페이션을 많이 사용하며 9번에서는 드럼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더욱 라틴적인 리듬으로 곡을 리드합니다.
11번 트랙에 이르러서는 베이스가 멜로디를 리드하는데, 그럼에도 앙상블의 멜로디 라인은 원곡을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런식의 소개를 30번 변주까지 계속할 필요는 없는 것이, 대개 이런 식입니다. 피아노는 원곡과 유사한 분위기로 연주 전체의 뼈대를 잡고 드럼과 베이스가 양념처럼 곁들여지는 것이죠.
피아노와 베이스 드럼 세 연주자는 자신들의 기량을 과시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기교를 보여줍니다. 베이스와 드럼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피아노를 받쳐만 주면서도 (드럼은 주로 심벌로만 참여를 할 뿐 '북'은 별로 두드리지도 않는 것처럼 들립니다) 복잡한 음률의 골격을 짜주어야 하니까 보통 일이 아니지요.
자크 루시에가 이전에 수행했던 프로젝트들, 이를테면 "자크 루시에 플레이스 바흐"등의 음반에서 들려주었던 여러 바흐 작품에 대한 재해석이나 비발디 사계의 재해석, 라벨이나 에릭사티에 대한 접근과 비교하면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 아마 이런 점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골드베르크에 있어서만은 베이스나 드럼 솔로 임프로비제이션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드럼의 경우, 30번트랙 시작부분에서 한동안 드럼 솔로가 나오는 정도인데, 이때 또한 드럼이 솔로로 곡을 시작 하다가 원곡의 분위기로 넘어가는 형식이지, 원곡에서 출발하여 임프로비제이션의 나래를 펴는 식은 아닙니다. 31번 트랙은 베이스에서 출발을 하는데 역시 마찬가집니다.
앞에서 몇몇 트랙을 예시하면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렇다고 피아노가 원곡의 멜로디를 손대는 일도 많지 않습니다. 선율과 화성을 재즈적으로 해체하고 전개하는게 아니라 재즈풍을 가미하는 정도에 그친다고 할까요.
이게 또다른 의미에서 당혹스러운 면입니다. 루시에의 음악에서 '신선한 충격'을 즐겨왔다면 이번에는 좀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원곡이 잘 살아있기때문에 오히려 즐거운 면도 있습니다. 안도할 수 있다, 부담이 적다..뭐 이런 것입니다. 만일 손을 잘못 대 놓았을 경우 얼마나 듣기에 괴로운 음악이 되었을까 생각하면 자크 루시에가 '무리'를 하지 않은 것은 다행일 수도 있습니다.
듣다보면 자크 루시에 트리오의 골드베르크는 조금 경음악적인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멜로디와 화성의 변용이 좀 그런 느낌을 주는데, 그러다보니 심각하게 음악을 듣지 않는 상황, 이를테면 업무나 학습의 BGM으로 틀어놓는데도 별 무리가 없고, 가족과 함께 듣기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습니다.
재즈는 아니지만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트리오 편곡한 예로는 오르페오에서 나온 드미트리 시트코베츠키의 현악3중주주가 생각나는데, 이것에 비해 한 악기(자크 루시에 트리오에서는 피아노)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트리오 편곡'의 의미가 약해진 것은 좀 아쉽습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위대한 작품인 이유는 우주 삼라만상이 하나의 주제와 30개의 변주 안에 다 표현돼 있기 때문입니다. 제 소견에 그렇다는 얘깁니다.
하나의 샘에서 솟은 물이 장강대하를 이루어 온천하를 때로는 어루만지고 때로는 갈아엎으며 도도하게 흐른 끝에 고요함의 바다에 이르는 모습, 그리고 때로는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때로는 비가 되어 대지를 적시는 천변만화를 통해 다시 하나의 샘으로 돌아가는 모습. 이런 것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에는 다 들어있지요. 한시간짜리 음악으로 듣는 심오한 우주론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 루시에의 해석에서는 이런 면이 적잖이 상실돼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게 이 음반에 대해 제가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별은 3개반만 주고자 합니다. 그렇더라도 사서 들어보기는 매우 재미있으며, 손이 많이 가는 음반이 될 것이라는 점은 덧붙이고 싶습니다.
이현식.
우선 간단히 소개를 해 보도록 하죠.
먼저 1번 트랙의 아리아.
클래식을 전문으로 하는 대가들의 연주에 비해 아리아의 템포는 빠른 편입니다. 중간부분에 약간의 재즈 터치가 있지만 원곡에서도 그렇듯 곡의 출발이므로 자제(?)하는 분위기입니다.
2번 트랙 (1번 변주곡).
빠른 속도의 재즈 분위기 변주가 펼쳐집니다. 그런데 원곡의 멜로디 라인 골격을 별로 손대지 않았습니다.
3번 트랙으로 넘어가면 왼손반주가 약간 에릭 사티 풍의 분위기를 띱니다. 조성도 바꿔서, 오른손파트가 원곡과 유사한데도 느낌이 많이 다르게 들립니다.
4번 트랙 (3번 변주곡)으로 가면 원곡의 얼개를 떠맡은 피아노에서 재즈적인 해체가 일어납니다. 전곡으로 보아 초반이긴 하지만 여기까지 가운데서는 가장 재즈적입니다.
5번에서는 라틴춤곡풍이 되고 8번에서는 피아노가 재즈 분위기의 싱코페이션을 많이 사용하며 9번에서는 드럼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더욱 라틴적인 리듬으로 곡을 리드합니다.
11번 트랙에 이르러서는 베이스가 멜로디를 리드하는데, 그럼에도 앙상블의 멜로디 라인은 원곡을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런식의 소개를 30번 변주까지 계속할 필요는 없는 것이, 대개 이런 식입니다. 피아노는 원곡과 유사한 분위기로 연주 전체의 뼈대를 잡고 드럼과 베이스가 양념처럼 곁들여지는 것이죠.
피아노와 베이스 드럼 세 연주자는 자신들의 기량을 과시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기교를 보여줍니다. 베이스와 드럼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피아노를 받쳐만 주면서도 (드럼은 주로 심벌로만 참여를 할 뿐 '북'은 별로 두드리지도 않는 것처럼 들립니다) 복잡한 음률의 골격을 짜주어야 하니까 보통 일이 아니지요.
자크 루시에가 이전에 수행했던 프로젝트들, 이를테면 "자크 루시에 플레이스 바흐"등의 음반에서 들려주었던 여러 바흐 작품에 대한 재해석이나 비발디 사계의 재해석, 라벨이나 에릭사티에 대한 접근과 비교하면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 아마 이런 점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골드베르크에 있어서만은 베이스나 드럼 솔로 임프로비제이션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드럼의 경우, 30번트랙 시작부분에서 한동안 드럼 솔로가 나오는 정도인데, 이때 또한 드럼이 솔로로 곡을 시작 하다가 원곡의 분위기로 넘어가는 형식이지, 원곡에서 출발하여 임프로비제이션의 나래를 펴는 식은 아닙니다. 31번 트랙은 베이스에서 출발을 하는데 역시 마찬가집니다.
앞에서 몇몇 트랙을 예시하면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렇다고 피아노가 원곡의 멜로디를 손대는 일도 많지 않습니다. 선율과 화성을 재즈적으로 해체하고 전개하는게 아니라 재즈풍을 가미하는 정도에 그친다고 할까요.
이게 또다른 의미에서 당혹스러운 면입니다. 루시에의 음악에서 '신선한 충격'을 즐겨왔다면 이번에는 좀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원곡이 잘 살아있기때문에 오히려 즐거운 면도 있습니다. 안도할 수 있다, 부담이 적다..뭐 이런 것입니다. 만일 손을 잘못 대 놓았을 경우 얼마나 듣기에 괴로운 음악이 되었을까 생각하면 자크 루시에가 '무리'를 하지 않은 것은 다행일 수도 있습니다.
듣다보면 자크 루시에 트리오의 골드베르크는 조금 경음악적인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멜로디와 화성의 변용이 좀 그런 느낌을 주는데, 그러다보니 심각하게 음악을 듣지 않는 상황, 이를테면 업무나 학습의 BGM으로 틀어놓는데도 별 무리가 없고, 가족과 함께 듣기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습니다.
재즈는 아니지만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트리오 편곡한 예로는 오르페오에서 나온 드미트리 시트코베츠키의 현악3중주주가 생각나는데, 이것에 비해 한 악기(자크 루시에 트리오에서는 피아노)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트리오 편곡'의 의미가 약해진 것은 좀 아쉽습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위대한 작품인 이유는 우주 삼라만상이 하나의 주제와 30개의 변주 안에 다 표현돼 있기 때문입니다. 제 소견에 그렇다는 얘깁니다.
하나의 샘에서 솟은 물이 장강대하를 이루어 온천하를 때로는 어루만지고 때로는 갈아엎으며 도도하게 흐른 끝에 고요함의 바다에 이르는 모습, 그리고 때로는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때로는 비가 되어 대지를 적시는 천변만화를 통해 다시 하나의 샘으로 돌아가는 모습. 이런 것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에는 다 들어있지요. 한시간짜리 음악으로 듣는 심오한 우주론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 루시에의 해석에서는 이런 면이 적잖이 상실돼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게 이 음반에 대해 제가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별은 3개반만 주고자 합니다. 그렇더라도 사서 들어보기는 매우 재미있으며, 손이 많이 가는 음반이 될 것이라는 점은 덧붙이고 싶습니다.
이현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