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쓰리테너의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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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테너 공연은 테러였다? 며칠 전 한 음악잡지를 뒤적이다가 이런 글을 보게 됐습니다. "한국의 음악시장이 지난 6월 내한했던 쓰리 테너의 잠실 운동장 공연으로 인해 붕괴된 지금, 한국 음악계는 그 후유증으로 무진장 고생을 하고 있다....... 중소 음악기업과 매니지먼트들은 그것을 마치 테러리스트가 미국의 세계무역센터 건물을 향해 비행기를 몰고 자폭해서 무너뜨린 것과 같은 류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쓰리 테너를 데려온 당사자는 빈 라덴이란 말인가?" 인용이 좀 길어졌지만, 이렇게 다소 과격한 비유를 이 글의 필자가 들이댄 이유는 이렇습니다. 쓰리 테너가 1박 2일 동안 한국의 음악계가 1년 동안 써야 할 돈을 거의 싹쓸이해 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대기업들이나 공기업들의, 우리나라 공연예술에 대한 지원금이나 광고비 예산 수십억 원이 이미 쓰리 테너 한 공연에 거의 다 들어가 버린 지금, 더 이상 바랄 것이 뭐가 있느냐는 것이죠. 일리가 있는 지적입니다. 쓰리 테너 공연은 성황을 이뤘지만, 이후 공연계는 침체를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의 필자는 음악계 회생의 실마리를 장영주의 내한 공연에서 찾고 있습니다. 10월 24일과 25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개최될 이 공연은 거장 쿠르트 마주어가 지휘를 맡고,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협연합니다. 세계 음악계를 사로잡은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와 런던 필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이 공연은 한국 음악계의 부흥을 위한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이 필자는 큰 기대감을 내비쳤습니다. ◆ 공연은 계속되어야 한다! 실제로 이 공연은 이미 거의 매진됐습니다. 몇 달 전부터 R석과 S석은 동났고, 남은 좌석도 얼마 없다는 소식입니다. 하지만 주최측인 예술의 전당은 그래도 이 공연이 2억 원 적자라고 귀띔했습니다. 기업의 협찬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쓰리 테너 공연보다 훨씬 좋은, 훨씬 중요하게 여겨지는(그렇다고 해서 쓰리 테너 공연이 '나쁜' 공연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만, 그 공연 하나에 쓴 수십억 원의 가치가 충분한 공연은 아니었다는 게 솔직한 제 생각입니다) 이 공연에 기업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니, 이상할 정도입니다. 역시 이 공연도 쓰리 테너의 '싹쓸이' 영향을 받는가 봅니다.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불경기라는 점도 한몫 했겠지요. 이런 대형 공연들은 입장 수입만으로는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가 없어 협찬사의 광고 유치 등으로 보전하는 게 상례입니다. 물론 예술의 전당이 이 공연으로 돈을 벌어야만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예술의 전당은 공공성을 갖고 있는 기관인 만큼, 어느 정도 적자를 감수하면서라도 좋은 공연을 관객들에게 보여줄 '의무'도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다만 저는 그만큼 우리 음악계가 침체돼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이런 침체는 음악계에만 한정된 얘기가 아니라는 점도 새삼 말씀드릴 필요 없겠습니다. 그래도 예술가들과 공연 기획자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공연들을 무대에 올립니다. 최근 바이올리니스트 이유라 독주회에서 만났던 한 공연 기획자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앞으로 뭐 먹고 살아야 되죠? 도대체 뭘 해야 할까요?" 이렇게 말했지만, 그도 지금 다음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유명한 말이 생각나네요. "The show must go on(공연은 계속되어야 한다)!" ◆ 추억창고의 문을 연다-발레'웨어하우스' 그래서 계속되는 공연들 중에 오늘은 발레 '웨어하우스(창고)'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김인희 단장이 이끄는 서울 발레시어터의 공연입니다. 김 단장의 남편인 안무가 제임스 전이 안무했습니다.

영화 '친구', 소설 '마이너리그'가 발레로 옮겨왔다는 홍보 문구처럼, 복고풍이 물씬 느껴지는 발레입니다. 386 세대를 위한 발레라고 할 수 있을까요. 1970년대, 80년대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자화상 같은 발레입니다. 교복 입은 학생들의 빵집 미팅, 영화 상영 전 애국가가 나오던 시절, 선생님 눈을 피해 몰래 찾아갔던 극장, 그러다 선도부와 선생님에게 들켜 혼쭐나면서도 즐겁기만 했던 그 시절이 무대 위에 펼쳐집니다. 독재에 항거한 시위대들의 데모 장면도 나옵니다. 물론 가슴 시린 첫사랑 이야기도 빠지지 않습니다. 제임스 전은 이런 얘기들을 퀸에서 스트라빈스키를 오가는 파격적인 음악과 안무로, 추억창고에서 하나씩 하나씩 풀어냅니다. 제임스 전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임스 전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서양 것만 한다는 얘기가 듣기 싫었습니다. 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물론 발레는 서양의 것이지만, 한국적인 발레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 작품은 몇 년 전부터 구상해 왔는데, 제 나이 40이 넘어가면서 옛날 생각도 많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시도를 해보게 됐습니다." 그는 또 이 작품에 '목숨을 걸었다' '도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웨어하우스'는 발레로서는 드물게 한달 동안 장기 공연됩니다. 본격적으로 발레의 흥행 가능성을 시험받겠다는 것입니다. 제작비도 10억 원 가까이 들었습니다. 목숨을 걸었다는 비장한 표현이 나올 법합니다. 발레단 측은 '발레와 함께 하는 추억의 동창회' 등 갖가지 아이디어를 내걸고 손님 끌기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만들었어요. 어려운 발레 보러 간다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재미있는 볼거리 보러 간다고 편하게 생각하고 오시면 좋을 것 같아요." 김인희 단장은 작품은 자신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김 단장도 공연 전 예매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아 걱정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공연장인 '한전 아츠풀 센터'는 강남구 서초동에 새로 지어진 한전 사옥에 붙어있는 공연장인데, 시설은 훌륭하지만, 아직은 인지도가 낮다는 게 약점입니다. 하지만 발레 공연에 기꺼이 한달간 장기대관 해주는 곳이 여기밖에 없었답니다. 저는 부분 리허설만 봤기 때문에 꼭 다시 보러 갈 생각입니다. 아까 제가 '386 세대를 위한 발레'라고 썼지만, 사실은 누구라도 즐겁게 볼 수 있는 색다른 발레가 될 것 같습니다. (공연은 11월 4일까지, 한전아츠풀 센터입니다. 문의전화는 발레단(02)582-9498, 티켓링크 1588-7890입니다.) ◆ 역시, 공연은 계속되어야 한다-벤게로프

바이올리니스트 벤게로프와 비르투오지의 내한공연도 '예정대로' 열립니다. 막심 벤게로프는 그동안 여러 차례 내한공연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청년 거장'입니다. '비르투오지'는 러시아 출신의 유태계 바이올리니스트 10명으로 구성된 현악 앙상블입니다. 막심 벤게로프도 역시 유태계인데, 요즘 복잡한 국제 정세(더욱 미묘해진 미국과 아랍권, 이스라엘의 관계)를 고려해 공연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돌았었습니다. 하지만 벤게로프는 '정치는 정치고 음악은 음악이다'라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예정대로 공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는군요. 역시 이 대목에서도 '공연은 계속되어야 한다'입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바이올린 11대와 피아노의 색다른 화음, 벤게로프의 화려한 기교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공연은 16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입니다. 문의는 서울598-8277번으로 하시면 됩니다. ------------------------------------------------------------------ * 이 글은 SBS뉴스넷의 허가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김수현 기자의 다른 글은 http://news.sbs.co.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