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 말레나 (Mal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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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해 준『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1988)의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Giuseppe Tornatore)는 자신의 조국 이탈리아의 40년대에 집착하는 인물입니다. 이탈리아인에게 총통이 다스리던 1940년대의 이탈리아가 주는 느낌이 어떠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것은 마치 우리가 겪었던 한국전쟁 후의 배고팠던 시절 또는 보릿고개로 연명하던 어려웠던 시절, 그로 인해 어른들이 자식들 앞에서 항상 읊조리던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감정을 선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즉 그다지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고난 했던 시절이지만 이상하리 만치 추억에 잠기게 만드는 아련한 시절들 말입니다.

이 감독이 지난해에 또다시 그 시절 이탈리아 해변도시 시칠리아의 풍광을 배경으로,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에 대한 영화 『말레나(Malena)』를 선보였습니다. 오늘은 국내 DVD 제조업체 스펙트럼에서 최근에 출시한 본 작품을 간단히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제품정보

- 제작사 : 스펙트럼
- 화면 : 2.35:1 아나몰픽
- 음향 : 이탈리아어 DTS, 이탈리아어 DD 5.1, 불어 DD 스테레오
- 자막 : 한국어, 스페인어, 영어
- 디스크 : 단면 더블레이어
- 제작년도 : 2000년
- DVD발행년도 : 2001년
- 상영시간 : 92분
- 등급 : 18세
- 지역코드 : 3번
- 감독 : Giuseppe Tornatore
- 배우 : Monica Belluci, Giuseppe Sulfaro, Pietro Notarianni 등

2. 영상 및 음향

본 작품의 영상은 일단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잡티가 없는 깔끔한 영상이 인상적이고 라요스 콜타이가 잡아내는 항구도시의 풍광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색상의 대비가 뚜렷하지 못하고 황색 톤이 지배적인 화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영화가 한시간 남짓 다가설 무렵에는 갑자기 몇 장면에서 잡티가 나타나는 것은 옥의 티라고 하겠습니다. 평가를 하자면 5점 만점에 4점을 주고 싶습니다.

음향 면에서는 본 DVD의 제작사가 미국 타이틀에도 수록되지 않은 DTS 트랙을 별도로 수록하는 성의를 보여주고 있는 등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영상의 아름다움에는 다소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도 국내 DVD 소비층의 유별난 DTS 선호의식을 감안한 것이라고 생각되는군요.) 그도 그럴 것이 영화는 그다지 음향효과를 만끽할 만한 요소가 없습니다. 후반부에 폭격장면이 있긴 하지만 그다지 음장감을 느낄 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영화음악은 아름답고 대사의 전달성도 비교적 뚜렷한 점은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평가를 하자면 5점 만점에 3.5점을 주고 싶습니다.

3. 영화적 완성도

레나토와 말레나의 첫 대면...

『말레나』는 여러모로 장길수 감독의 『은마는 오지 않는다』(1991)와 닮은꼴의 영화입니다. 한 여인의 고난한 삶과 자발적 또는 불가피한 선택으로서의 육체적 타락, 그리고 마을사람들에 의한 육체적, 심리적 탄압 등이 주요 내용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니까요. 사실 이러한 내용의 영화는 찾아본다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을 겁니다.

그런데 『말레나』는 영화의 화자라는 측면에서 특이한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즉 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시점이 말레나 본인이 아닌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레나토(쥬세페 술파로)라는 제3자라는 점입니다. 한참 사춘기에 접어든 어린아이의 시점으로 영화가 진행되다 보니 영화는 마치 성장영화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게 됩니다. 누구나 한번쯤 경험하게 되는 이웃집 여인에 대한 환상, 엿보기의 충동, 아련한 사랑의 감정 등이 어린 레나토에게도 나타납니다. 게다가 말레나(모니카 벨루치)라는 여인의 육체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 레나토를 비롯해서 마을의 남자들은 모두 말레나에 대해 호기심반, 욕망반의 충동을 지니고 있고 여자들은 그런 말레나를 시기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중반 이후 정작 주된 흐름은 말레나라는 여인의 이야기로 구성됩니다. 말레나의 남편은 전쟁터에 나가 있고, 어느 날 전사소식이 들려 옵니다. 말레나는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지만 정작 마을 남자들은 혼자된 말레나에 대해 욕망의 충동을 더해 갈 뿐입니다. 그리고 생계가 망막해진 말레나는 결국 자신의 몸을 버리고 식량을 선택합니다.

생계를 위한 말레나의 변신

이러다 보니 영화는 중심 축을 잃어버리고 주변 인물들의 행동이 과장된 코미디성 영화로 흘러갑니다. 영화를 풀어 나가는 레나토는 영화의 중반이후 역할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말레나를 바라보기만 하는 타자로 변해 버립니다. 영화의 초반부에 엿보기의 대상이던 말레나는 오히려 영화의 중반부 이후 중심인물로 부상하지만 정작 영화의 시청자는 말레나라는 여자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영화의 중심 축은 변화하는데 영화를 이끌어 가는 시점은 여전히 레나토에게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죠.

영화가 보여주는 에피소드의 현실성은 그런 대로 타당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청소년으로 접어드는 그 나이 또래의 남자아이가 갖는 호기심이나, 전쟁상황에서 여성의 몸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여성의 마지막 선택도 상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죠.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고의적으로 과장되어 있지만(말레나를 보는 광장의 남자들이나 여자의 극단적 반응은 감독의 고의적인 과장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겠죠) 영화가 이미 진지한 흐름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크게 나무랄 요소는 아닙니다. 하지만 영화는 사춘기 소년의 성장과 전쟁중 여인의 삶이라는 두 가지 상황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어정쩡한 자세를 취함으로써 균형감각을 상실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열정적인 변호사는 무엇을 노리고 있을까요 ?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점은 아무래도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여성관인 것 같습니다. 감독은 이 영화에서 말레나라는 여성을 미인으로 설정했습니다. 그녀가 미인은 것은 영화의 흐름상 당연한 노릇이겠지만 그로 인해 관객인 우리들은 레나토와 마찬가지로 엿보기의 충동을 공공연하게 느끼게 되며, 감독 역시 그다지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그러한 욕구를 만족시켜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80년대 『감자』, 『물레방아』, 『뽕』과 같은 초창기 현대소설들을 영화화하면서, 소설의 영화화보다는 여배우의 노출연기에 의도적인 강조점을 두었듯이 이 영화 역시 그러한 혐의를 벗어나기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녀가 남편을 잃음으로써 버리게 되는 정숙한 여인이라는 하나의 허울이 남편이 버젓이 살아 돌아옴으로써 다시 회복된다는 설정은 매우 낡은 보수적 설정이라고 밖에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남편과의 귀향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

연합군이 승리하고 독일군이 물러가자 마을의 여자들을 말레나에게 테러에 가까운 폭행을 가합니다. 쫓기듯이 마을을 떠난 말레나는 전쟁에서 한 팔을 잃고 살아 돌아온 남편 -죽은 줄 알았던 남편에 의해 다시 마을로 돌아옵니다. 저 같으면 다시는 그 마을에 오기 싫을 듯도 한데 말레나는 남편과 함께 마을의 광장을 담담하게 걸어갑니다. 그리고 폭행을 가했던 여성들은 말레나에게 영화가 진행된 후 처음으로 부인이라는 호칭으로 그녀를 부름으로써 그녀를 다시 정숙한 여인의 반열에 올려놓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

말레나가 아직 타락(?)하기도 전에 마을의 여자들은 그녀가 혼자라는 이유만으로 갖가지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그녀를 창녀라고 손가락질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실제로 타락한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한 마을 여자들은 남편과 함께 있는 그녀를 오히려 공손하게 맞아 줍니다.

감독은 한 여인의 비극과 그 주변인물들의 가식을 보여주려고 했을지도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다지 훌륭해 보이지도 않은 남편이라는 존재의 유무가 한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너무나 과대 포장함으로써 너무나 낡은 여성관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평가를 하자면 5점만점에 3점을 주고 싶습니다.

4. 부록

(The Making of Malena) : 영화에 관한 짧은 메이킹 필름입니다.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와 주연배우인 모니카 벨루치가 나와 여주인공과 극중 케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글자막이 제공되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Original Sound Track) :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삽입된 세곡의 사운드 클립이 제공됩니다.
(Cast & Crew) : 제작진 및 주연배우에 대한 소개입니다.
(Thearetical Trailer) : 극장 예고편입니다.
(TV Spot) : 텔레비젼 예고편입니다.

5. 나가며

『말레나』는 아카데미상의 두개 부문에 후보로 지명되었고, 흥행에서도 비교적 만족스러운 성공을 거둔 작품이지만 아무래도 『시네마 천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운 작품인 것 같습니다. 제작사인 스펙트럼사에서는 비교적 성의 있게 제작한 케이스에 미국판 겉표지와는 다른 다소 선정적인 사진을 장식함으로써 구매자의 욕구를 자극하는 전략까지 세운 듯 보입니다.

아름다운 음악과 이탈리아의 자연풍광이 어울리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걸작의 범주에 들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싶군요. 참고로 본토인 이탈리아에서는 3장의 디스크로 이루어진 한정판이 발매되었으며 런닝타임이 10여분 더 깁니다. (보지 않아 어떤 장면이 더 들어가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레나토는 말레나를 엿보기 시작하고

사족 : 1. 감독이 바라보는 이탈리아의 40년대는 정말 아름다운 추억의 한 페이지에 다름이 없는 듯 합니다. 그에게 전쟁이라는 것, 무솔리니의 통치라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영화 속에서도 전쟁이 일어나고, 비행기가 공습을 하며, 피난민들이 몰려들지만, 이는 단지 영화 속에서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피난민으로 분장한 배우들이 화면을 메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습니다. 전쟁이 진행중일 때나 연합군이 들어왔을 때나 마을 사람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은 어쩌면 그렇게 변함이 없을까요.

2. 극중 여주인공 말레나역을 맡은 모니카 벨루치는 원래 모델출신이었습니다. 그녀는 조국 이탈리아에서 영화배우로 데뷰했지만, 정작 현재는 프랑스에서 주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이탈리아의 영화판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탈리아 감독들에게 그녀의 몸은 너무나 보이고 싶은 욕망의 대상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녀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작품은 『드라큐라(Bram Stoker's Dracula)』(1992)이며, 본격적인 연기를 시작한 작품은 『라빠르망(L'appartement)』(1996)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녀는 『매트릭스 2(Matrix Reloaded)』(2003 예정)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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