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카레라스와 숄의 우리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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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테너 호세 카레라스는 새 음반 'Around the World'를 냈는데, 여기 듀엣 해바라기가 불렀던 인기곡 '사랑으로'가 실려있습니다.
'사랑으로'는 백만인의 애창곡 아닙니까. 호세 카레라스는 아주 훌륭한 발음으로 이 노래를 소화해냈습니다.
* 세계적 성악가 한국노래 잇따라 취입
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 숄은 자신의 음반 '방랑하는 이방인'에서 '새야 새야' '아리랑'을 한국어로 불렀습니다. 카운터테너 특유의 신비로운 미성이 우리 민요의 리듬과 독특하게 어울립니다.
너무 부드럽게 불러서 민요에 서려있는 우리네 '한' 같은 정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신선한 느낌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영국의 남성 아카펠라 그룹 '킹스 싱어즈'의 음반 '마법의 성'도 빼놓을 수 없죠. 완벽한 화음으로 잘 알려진 킹스 싱어즈는 지난 1996년 한국어로 부른 '마법의 성'을 포함한 음반을 내놓았습니다.
경쾌한 아카펠라가 환상적인 분위기의 '마법의 성'에 잘 어울린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이 음반으로 킹스 싱어즈의 인기는 한국에서 급상승해서, 이후 내한 공연 때마다 매진 사례를 이뤘습니다.
소프라노 바바라 보니는 '바바라 보니의 초상'이라는 음반에서 '님이 오시는지' '진달래꽃' 등 5곡의 한국 가곡을 불렀습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바바라 보니의 모습이 음반 자켓 전면을 채우고 있습니다.
한국 가곡의 정서를 아주 우아하게 표현해냈고, 발음도 언뜻 들어서는 한국인이 부른 것처럼 느낄 정도로 훌륭합니다. 이밖에도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는 '마이 월드'라는 음반에서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드라마틱하게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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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금강산'은 한국에서도 애창곡이지만, 외국인 성악가들에게도 자주 불려지는 노랩니다. 소프라노 이네사 갈란테는 최근 내한 독창회에서 앙코르 곡으로 '그리운 금강산'을 불러, 열광적인 기립박수를 이끌어냈습니다. 저는 공연이 끝난 후에 이네사 갈란테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리운 금강산'이 어떤 노래인지 알고 불렀느냐는 제 질문에, '당연히 알고 불렀다. 노래가사를 번역해 달라고 해서 노래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고 불렀다'고 대답했습니다.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3 테너의 한 명인 플라시도 도밍고는 1995년 잠실 펜싱 경기장에서 열렸던 내한 공연에서 '깜짝쇼'를 연출했습니다. "You have to forgive my pronunciation"이라는 애교 섞인 말을 앞세워, '그리운 금강산'을 앙코르 곡으로 선사했던 거죠.
소프라노 홍혜경씨와 베이스 연광철씨도 함께 했는데, 플라시도 도밍고는 자신이 걱정한 것과는 달리, 발음도 훌륭했을 뿐더러, 원곡의 정서를 잘 표현해냈습니다. 이 공연 실황을 담은 CD는 큰 인기를 끌었고, 곧 DVD도 발매된다고 합니다.
* 한국 음악시장, 무시 못한다
외국 성악가들이 부른 한국 노래는 사실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외국어에서는 잘 없는 '의' '으' '어' 발음의 섬세한 구분이 잘 되지 않을뿐더러, 발음이 훌륭한 경우에도, 낯선 외국어를 사용하는 데서 오는 어색함은 묻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노래에 담긴 정서를 이들이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들의 노래에 호감을 갖습니다. 원래 노래를 워낙 잘하는 사람들인데다, 평소에 듣던 것과 다른 해석이 신선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런 곡들이 실리면 음반 판매량도 늘어난다는 게 정설입니다. 킹스 싱어즈는 '마법의 성'을 한국어로 발표한 이후, 국내에서 지명도가 부쩍 높아져, 이후 내한공연마다 매진을 기록하고 음반도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한국의 클래식 음악시장은 비록 위축됐다고는 하나, 세계적으로는 8위,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2위 규모입니다. 외국 성악가들에게도 매력적인 시장이죠. 외국 성악가들이 한국 노래를 부르는 것은 한국의 음악 시장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메이저 음반사들이 성악가들에게 한국 노래의 취입을 권유하거나, 또는 성악가들 자신이 자발적으로 한국 노래를 찾아 부르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유명 음반회사의 한국 법인 기획 담당자들은 성악가들이 내한공연을 할 때나, 음반을 낼 때, 한국어 애창곡을 골라달라는 선곡 요청을 자주 받습니다. 선곡의 기준은 이것, '한국인이면 누구나 아는 좋은 노래'면 됩니다. 카레라스 명함.jpg)
호세 카레라스는 이런 기준으로 선택된 '사랑으로'와 '아침이슬' 중에 '사랑으로'를 불렀다는 게, 담당자였던 워너 뮤직 코리아 클래식 마케팅팀 김태근씨의 귀띔입니다.
김씨는 호세 카레라스는 워낙 '거물급' 음악가라, 음반사에서도 한국어 노래를 부르라고 '강요'를 할 수는 없다며, 그가 한국어 노래를 부른 것은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성악가들은 아니지만, 역시 '마법의 성'을 연주한 피아니스트 앙드레 가뇽, 그리고 '청산에 살리라'와 '그리운 금강산'을 연주한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같은 음악가들도 있습니다. 미샤 마이스키도 역시 한복을 입고 첼로를 연주하는 모습을 담은 음반 자켓이 돋보입니다.
처음에는 내한 공연 때 팬 서비스 차원에서 앙코르 곡으로 부르기 시작했던 한국 노래들은 이제는 음반에 수록되면서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중요한 마케팅 전략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외국 성악가들이 부른 한국 노래는 한국에서 내는 이른바 '로컬' 음반에만 다른 외국 곡들과 함께 한두 곡씩 실립니다. 하지만 호세 카레라스의 '사랑으로'는 인터내셔널 판에도 실려있습니다. 여러 나라의 애창곡들을 수록한 컨셉의 음반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 가곡이나 민요, 가요가 세계인의 애창곡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여기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한국 노래에 정붙이기 시작하면, 이 노래들을 꼭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연주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랑으로'나 '아리랑', '그리운 금강산'을 외국인들과 함께 부를 날을 꿈꾼다면, 저만의 생각일까요.
김수현 기자 sh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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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SBS뉴스넷의 허가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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