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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품정보

- 제작사 : 스타맥스
- 화면 : 1.33:1
- 음향 : 한국어 DD 모노
- 자막 : 한국어, 영어
- 디스크 : 단면 더블레이어
- 제작년도 : 2000년
- DVD발행년도 : 2002년
- 상영시간 : 98분
- 등급 : 18세 이상
- 지역코드 : 3번
- 감독 : 류승완
- 배우 : 류승완, 박성빈, 김수현, 류승범, 임원희 등

2. 영상 및 음향

본 작품의 영상은 대단히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원본 필름 자체의 화질이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이런저런 잡티들이 별다른 쑥스러움 없이 화면에 출몰하고 화질도 선명하기를 처음부터 포기했습니다. 이러니 암부의 표현이니 해상도니 하는 표현은 애초에 사용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이 영화는 감독의 생각을 영화로 찍어낸다는 집념 이외의 모든 것은 사치일 정도로 가난하게 촬영된 영화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 작품의 열악한 화질은 영화 촬영 당시의 배고팠던 스텝들의 상황을 고려하건대 충분히 배려 받아야 할 요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를 하자면 5점 만점에 2점만을 주고 싶습니다.

영상이 이러하니 음향 역시 만족스럽기는 어렵습니다. 모노 음향이 메인 스피커를 통해 울려나오고 여타의 음장감은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본 작품의 음향 역시 매우 열악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조금 불만인 것은 영화 촬영 당시의 측면은 전부 인정한다고 하더라고 다소 배우들의 대사가 명확하게 들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주의의 배경 음향이나 효과음, 음악 등에 비해 소리가 파묻혀 대사 이해도가 다소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자막을 켜 놓고 보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이것도 어쩔 수 없는 요소일지도 모르죠, 평가를 하자면 5점 만점에 2점을 주고 싶습니다.

3. 영화적 완성도

성빈은 순간적으로 살인자가 된다.

<패싸움> 감독은 영화의 첫머리를 고삐리 양아치들의 당구장 결투로 시작합니다. 갖가지 비속어가 난무하는 가운데 관객들은 공고생과 예고생사이의 긴장감을 느낍니다. 게다가 당구장 주인의 내레이션은 이 두무리간의 싸움과 소란을 예고하고 그 결과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음을 암시합니다.

<악몽> 성빈(박성빈)은 살인죄로 7년을 복역하고 출소합니다만 가족은 이미 사랑이 메마른지 오래고 경찰이 된 친구 석환(유승완)도 자신을 멀리합니다. 게다가 그는 전과자라는 딱지가 붙어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을 보호감찰하는 형사(임원희)는 그를 노골적으로 불신합니다. 성빈은 자신이 죽인 예고생 현수(김수현)의 악몽에 사로잡히는데 이는 그의 인생이 이 우연한 살인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착하게 살고 싶었던 성빈은 자신이 구해 준 조직폭력배의 중간 보스 태훈(배중식)의 말에 따라 "전과자로 살아가기가 조금은 어려운" 사회를 버리고 "사회를 자신에 맞추어" 살아가고자 합니다.

<현대인> 태훈은 경찰의 집중 감시를 받고 있고 석환은 태훈을 감시하는 초짜 형사입니다. 둘은 지하 주차장에서 결투를 벌이고 감독은 결투의 사이사이에 두 인물의 인터뷰를 삽입합니다. 형사와 폭력배의 싸움 속에서 우리는 몸을 맞대고 쓰러지기 전까지 싸우는 둘의 모습을 통해 누가 형사이고 누가 폭력배인지 분간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둘의 인터뷰에서 폭력배와 형사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지만 그 둘이 세상과 자신의 직업에 대해 생각하는 바 역시 크게 틀리지는 않는 듯합니다.

성빈을 짓누르는 현수의 환영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적어도 석환 보다 일곱 살은 어린 동생 상환(류승범)은 야간고등학교에 다니는 생날라리입니다. 머리도 나쁘고 가진 것도 없는 그는 폭력의 세계야말로 진정한 남자의 갈 길이라는 생각과 사상을 지니고 있는데 어느 날 우연한 패싸움 과정에서 성빈을 알게 됩니다. 성빈은 석환의 동생을 자신의 조직에 받아들이고 상환은 진정한 남자로의 성장을 꿈꿉니다. 하지만 성빈은 자신의 인생이 이처럼 된 데에는 석환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복수로 상환을 폭력배간의 전쟁에서 칼받이로 보냅니다. 처음 장면에서 나왔던 당구장에서의 성빈과 석환의 해후와 둘간의 싸움은 폭력배간의 전쟁에서 처참히 쓰러져 가는 상환의 모습과 교차 편집됩니다.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위에서 언급한 네편의 단편영화가 모여서 이루어지는 중편영화입니다. 영화가 이렇게 네부분의 짧은 에피소드로 나뉘어져 있음으로 해서 감독은 네편을 합쳐도 90여분에 지나지 않는 비교적 짧은 영화에서 더 빠른 이야기의 흐름과 전개를 가능케 합니다. 더군다나 한편의 영화를 편집함에 있어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의 서사적 구조를 고려할 필요 없이 <현대인>과 같은 다른 흐름의 에피소드를 과감히 삽입할 수 있는 자유를 얻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더 큰 강점은 이러한 에피소드간의 단절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관객을 영화에 집중시키는 흡입력이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은 성빈의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그는 공고의 알아주는 주먹이었지만 이제 스무 살이나 먹어 가는 나이를 생각하니 더 이상 이전의 생활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일이 될려니 평소에 가지 않던 예고생의 아지트 당구장에서 우연히 예고의 짱인 현수를 만나고 그들간에는 패싸움이 벌어집니다. 사실 석환의 시비만 없었다면 참고 지나갔을 수도 있을 말다툼에서 싸움으로 비화된 이 패싸움에서 성빈은 본의 아닌 살인을 저지릅니다. 따라서 성빈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처지가 억울하기도 할 듯한데 석환은 오히려 그런 성빈을 "네 인생 네가 선택한 것이라며" 출소 후의 그를 외면합니다. 따라서 성빈과 석환 사이에는 하나의 갈등이 존재합니다.

극중 건달 배중식의 연기가 압권이다.

영화에서 전라도 출신의 건달로 등장하는 태훈은 한마디로 타고난 양아칩니다. 공부도 못하고 가진 것도 없는 놈이 지랄같이 주먹은 좀 써서, 할거라곤 복싱 아니면 건달밖에 없었던 이 남자는 성빈과 석환을 다시 이어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는 인물입니다. 자신을 구해준 성빈을 사회로부터 격리해 자신에게 들어오게 한 태훈은 석환과의 결투과정에서 구속되고 한동안 잊고 지냈던 성빈과 석훈은 운명적으로 다시 만납니다.

그런 의미에서 상환은 이 세 인물의 관계를 청산시키는 존재입니다. 형의 피를 이어받은 고삐리 양아치로 건달세계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이 친구는 세상을 단순한 눈으로 봅니다. 그는 어릴 적 태훈의 생각과 같은 사고방식을 소유하고 있으며 성빈의 삶을 신성시합니다. 하지만 그의 형과 성빈의 갈등을 알지 못하는 그이기에 그는 성빈의 복수대상으로 선택되고 사시미칼의 희생양으로 전락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은 성경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이들의 삶이 이들에 의해 선택된 것이 아니며 이들 역시 이 세상의 피해자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꽃같은 인생 꽃같은 세상을 날려 버리라는 영화의 태그라인은 감독이 얘기하고자 하는 직설적인 화법의 우회로로 비쳐집니다. 그들의 인생은 꽃 같지도 않고 그들이 사는 세상도 꽃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성빈이 태훈을 구해 주고 여관에서 한 말 "(잠에서 깨어나며) 어떻게 된 겁니까?"에 대한 태훈의 답이야말로 감독이 하고자 했던 말은 아니었을까요 ?

감독은 이 영화를 "하드보일드 액션 릴레이" 영화라고 명명했습니다. 조금은 유치해 보이는 이 말은 하지만 영화를 보게 되면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거려질 정도로 기존 제도권 영화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리얼한 액션과 현실에서 진짜로 사용되는 단어들이 여과 없이 보여지고 두 번째 에피소드 <악몽>은 공포영화와 같은 효과를 순간적으로 가하기도 합니다. 마지막 에피소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의 흑백 격투씬은 보는 이의 시선을 고정시키는 효과를 발휘할 정도로 압축적이고 현실적입니다.

어찌 보면 젋은 감독 류승완의 이 생기발랄한 데뷔영화는 감독이 담고 싶었던 말과 행동과 모습들을 자기자신의 의도대로 찍어냄으로써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스타일을 만들어 냈다는 최대의 성과를 거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 영화야말로 2000년 한국영화가 배출한 최대의 성과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영화의 첫 번째 에피소드인 <패싸움>은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 촬영 후 남은 자투리 필름으로 찍은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소망이라면 장선우 감독은 차라리 자신의 영화를 포기하고 류감독에게 필름을 모두 내주었으면 어떠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상훈과 그의 친구 패거리들

하지만 이 영화도 몇 가지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는 직설적이고 빠른 흐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이야기의 중심축인 성빈과 석환의 갈등구조가 부각되지 못함에 따라 성빈이 상환을 칼받이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당구장에서의 마지막 처절한 싸움이 다소 갑작스런 사건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오히려 너무 갑작스럽고 리얼해서 사건의 정당성은 생각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충분한 양의 필름이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배우들의 연기력은 다소 수준이하라고 하겠습니다. 대부분의 주연배우들이 연기 초년병들인지라 극중 인물의 심리상태를 충분히 표현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며 일부 대사는 책을 읽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다소 안쓰러운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이장호 감독의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소중한 선물이지만 그의 연기는 그다지 칭찬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든 단점들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참신함과 생명력에 의해 충분히 상쇄되고도 남으리라 판단됩니다.

평가를 하자면 5점 만점에 3.5점을 주고 싶습니다.

4. 부록

• Commentary : 류승완 감독의 육성해설입니다. 특이한 것은 특별부록의 메뉴항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셋업메뉴에서 선택하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 Production Note(Story Board) : 영화제작의 구상단계에서 작성된 스토리보드입니다.
  
• Guest Interview : 영화와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조종국(씨네21 기자), 봉준호(감독), 김지운(감독), 임필성(감독), 신하균(영화배우)의 짤막한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Staff Interview : 영화가 네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각 영화의 스텝들이 다소 상이합니다. 각 에피소드별 스텝들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Music Video : 이 영화에 사용된 음악 중 두편이 영화장면을 배경으로한 뮤직비디오 형태로 제공됩니다. 그리고 음악감독인 김동규씨의 짧은 인터뷰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 Cast Bios : 류승완, 류승범, 김수현, 배중식, 박성빈, 임원희의 영화인생이 짤막하게 제공됩니다. 일부는 인터뷰형식이고 일부는 텍스트형식입니다.
  
• Still Gallery : 자동으로 넘어가는 스틸 갤러리입니다. 일정한 처리를 가한 듯 스틸사진의 화질은 아주 좋습니다.
  
• Deleted Scene : 김지운 감독이 영화에서 삭제된 세장면에 대해 짤막한 설명을 한 후 실제 삭제장면을 보여줍니다.
  
• Bonus Film : 김지운 감독이 총천연색 완전후시녹음으로 제작한 화제의 인터넷 개봉영화 『다찌마와 리』가 부록타이틀로 제공된다는 것은 정말 뜻밖의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본편 영화보다는 이 부록에 더 관심이 갔었다는 말을 드릴 수밖에 없군요. 하지만 인터넷의 작은 화면에서 보던 생경함과 특이함은 이제 다소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게다가 화면이 커지면서 화질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5. 나가며

상훈은 칼받이로 세상을 떠나는데...

1편의 단편영화와 1편의 중편영화, 그리고 1편의 인터넷 영화로 '떠버린' 이 젊은 감독은 최근에 35mm 장편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의 활영을 마치고 개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감독이 모 영화잡지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뭔가 새로운 영화기법을 창출하여 장인의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기존의 영화를 뒤엎는 재기 발랄함으로 신선한 충격을 줄 것인가를 놓고 고민한 끝에 장인의 길을 멀고멀어 자신의 능력으로 다가가기 어려우니, 하늘아래 새로울 것이 없는 영화판에서 뭔가 기존의 영화 법칙을 조금씩 뒤엎는 방식으로의 영화제작을 꿈꾸게 되었다는 말을 한 바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피도 눈물도 없이』는 기존의 느와르 영화들이 표방하는 남자들의 세계를 교묘하게 비틀어 여자들을 전면에 내세운 액션영화를 찍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빠른 호흡과 감독의 주장만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는 단편영화와 인물간의 관계, 이야기의 흐름, 호흡의 조절 등 많은 부분에서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하는 장편영화는 분명한 차이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재능 있는 젊은 감독이 새롭게 내놓을 본격적인 장편 상업영화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가지면서 한국의 쿠엔틴 타란티노가 새롭게 탄생되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