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비교시청회를 동호인들끼리 열면 늘 비슷한 곡들을 비교해가며 듣게 마련입니다. 요즘은 저도 오프모임을 잘 따라다니지 못해서 무슨 곡들이 최고인기인지 잘 모르겠으나 97~99년경을 생각해보면 레베카 피죤의 노래와 함께 가디너가 지휘한 바흐의 B단조 미사 중 CD1의 끝곡 'Cum sancto spritu'를 늘 돌렸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은 조금 색다른 B단조 미사 한장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아마 지휘자가 '색다른'이라는 말을 들으면 꽤 싫어할 것입니다. 왜 그런지는 차차 설명드리기로 하고요.) 성악과 기악부 모두 한 파트에 한명씩만 연주한 버전입니다. 대편성의 곡을 실내악버전으로 편곡하여 연주한 사례는 여럿이 있지요.
이를테면 일전에 양재형님이 동호회 음반란에 소개해주신 '말러 대지의 노래 헤레베헤 지휘'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알반베르크 쿼텟과 알프레드 브렌델이 모짜르트 피아노협주곡을 실내악버전으로 연주한 것도 있고, 독일에서는 최근 브루크너 7번교향곡의 현악4중주 편곡판도 발매되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조슈아 리프킨(Joshua Rifkin)의 바흐 음반은 그러나 편곡판은 아닙니다.
편곡이 아니라면 왜 남들이 안하는 방법으로 연주를 했단 말인가? 하고 궁금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 먼저 조슈아 리프킨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1944년 4월22일 뉴욕에서 태어난 미국인입니다.(생일이 얼마 안남았군요.)
줄리어드를 나온 피아니스트,합시코드 연주자,음악학자 겸 지휘자인데, 중세음악부터 현대,심지어 스코트 조플린같은 래그타임(ragtime)음악에까지 손을 댔지만 그를 세계적인 음악인으로 만든 것은 1978년부터 이끌고 있는 '바흐 앙상블(the Bach Ensemble)'활동입니다.
원래부터 기존 학계의 믿음을 뒤집는 연구성과를 자주 내놓는 학자였던 그는 1981년'바흐는 원래 한 성부에 한명씩만을 기용했다'는,이른바 '리프킨 이론'을 내놓아 음악계를 뒤집어놓았습니다.
리프킨은, 바흐의 합창곡 악보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등 파트별로 한 개의 성부만을 부르게 되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문헌학적으로 보면 악보들도 가수 개개인이 혼자서 보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근거들을 종합해볼때, 바흐는 그의 시대에 파트별로 한명씩만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 리프킨 이론의 요지입니다.
구스타프 레온하르트나 톤 쿠프만 등 반대진영에서는 1730년 바흐가 라이프찌히 시 당국에 보낸 편지 "완성도 높은 교회음악을 연주하기 위한 몇가지 조건"을 들어 이를 반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흐는 '성부당 둘 혹은 세명씩의 성악 및 기악연주자'가 필요하다고 썼다는 것입니다.
리프킨은 이에 대해 야구의 비유를 들며 재반박했습니다. 바흐가 '성부당 두세명'을 언급한 것은 매 게임의 스타팅멤버를 말한 게 아니라 '풀 시즌을 뛰기 위한 로스터'를 언급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파트당 여러명'을 기용하는 지휘자들을 편의상 전통파라 하자면, 전통파가 바흐의 합창곡을 연주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일단 성부별로 한명의 연주자는 모든 소절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노래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어명은 보조로서 필요할때만 같이 노래를 불러 합창의 효과를 냅니다.
리프킨은 바흐의 코랄이나 칸타타의 합창들이 '합창의 속성과 독창의 속성을 다같이 갖고 있다'는데는 동의하면서, "그런데, 보조가수들은 언제 부르고 언제 입을 다무나? 악보에서 그런 표시 본적 있냐?"고 반문합니다. 다른 악상기호들은 악보에 빠짐없이 적어놓은 바흐가 그것만 유독 '시간이 없거나, 리허설때 말로 설명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안적었을리는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 과정에서 리프킨과 레온하르트가 벌인 논쟁은 당시의 연주법을 철저히 고증해내는 게 중요하냐 작곡가의 진정한 의도를 들려주는게 중요하냐 하는 문제를 다루어 원전연주의 커다란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세기가 바뀐 지금, 리프킨의 이론은 대세를 확보하는데는 실패한 듯이 보이지만 앤드류 패롯(Andrew Parrott)이나 존 벗(John Butt)같은 음악가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또 그 스스로 자신의 악단인 바흐 앙상블을 이끌고 훌륭한 칸타타 녹음들을 남겨 그의 주장이 예술적으로도 설득력있는 것임을 입증한 바 있습니다. (사진은 르와조리르(L`OISEAU-LYRE)에서 녹음되어 Decca염가반으로 나온 리프킨의 바흐 칸타타 2for1입니다.)
워너클래식스(Warner Classics)와 계약되어 있는 조슈아 리프킨은 워너의 산하 레이블인 논서치(Nonesuch)에서 1982년에 자신의 이론에 따른 B단조 미사를 내놓은 바 있습니다. 이 음반은 수집벽이 있으신 분이 아니라면 가급적 구입하지 마시기를 권해드립니다(사실,구하기도 어렵습니다만...) 왜냐?
최근에 염가판으로 재발매되었기 때문입니다.
워너가 올봄들어 내놓은 Ultima시리즈의 카탈로그가 나왔을 때 제가 가장 반겼던 것이 바로 Rifkin이 지휘한 Mass in b minor였습니다. 참여한 독창진은, 소프라노1 쥬디트 넬슨(Judith Nelson), 소프라노2 쥴리언 베어드(Julianne Baird), 카운터테너 제프리 둘리(Jeffrey Dooley), 테너 프랑크 호프마이스터(Hoffmeister) 등으로, 유명세로 보면 기존의 명반들에 비교하기 어려우나, 차분하고 안정감있는 가창을 들려줍니다.
리프킨의 B단조 미사 연주는 모든 파트에 한명씩이다 보니 나타나는 가장 큰 장점이, 라틴어 가사는 물론 선율들의 구조가 귀에 명료하게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음악평론에 많이 쓰이는 '텍스쳐가 투명하게 드러난다'는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대신 드라마틱하지는 않은데, 종교적인 염원을 담거나 청취자의 정서를 고양시키기 위한 어떤 노력은 의도적으로 배제된 느낌입니다. 그런 뜻에서 아카데믹한 연주라고표현할 수 있을 듯 합니다. CD2에 들어있는 (참, 이 음반은 2for1입니다.) 상투스의 경우도 성큼성큼 빠른 템포로 지나가는데, 대개 다른 지휘자들은 충분히 늘려잡은 템포로 장엄함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지않나 싶습니다.
b단조 미사의 파이프오르간처럼 중첩,연장되는 음향을 부담스러워했던 분들께는 특히 좋은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사실은 제가 좀 그런 성향이어서 b단조미사 전곡감상을 잘 하지 않았는데, 트랙1의 키리에나 트랙6의 그라티아스 아지무스 티비 같은 경우 그런 부담스런 느낌이 말끔히 걷혀 좋았습니다.
2번트랙 크리스테 엘레이손은 이런 소규모앙상블의 아름다움이 특히 잘 드러난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론 쿰 상토 스피리투에서는 충분한 다이내믹을 살려 '혹시나..'하는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습니다.
바흐 음악순례의 여정에서 꼭 들어볼 음반으로 구입추천코자 합니다.(★★★★☆). 단점이라면 음반점에 재고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그의 칸타타 녹음들마저도 늘 재고부족이고 찔끔찔끔 풀릴 뿐입니다. 이렇게 늘상 수요초과인 음반이라면 아예 수입물량을 왕창 늘릴만도 하건만, 유니버살 본사와 한국지사간의 업무가 그렇게 맘처럼 되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이현식.hyunsi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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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일전에 양재형님이 동호회 음반란에 소개해주신 '말러 대지의 노래 헤레베헤 지휘'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알반베르크 쿼텟과 알프레드 브렌델이 모짜르트 피아노협주곡을 실내악버전으로 연주한 것도 있고, 독일에서는 최근 브루크너 7번교향곡의 현악4중주 편곡판도 발매되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조슈아 리프킨(Joshua Rifkin)의 바흐 음반은 그러나 편곡판은 아닙니다.
편곡이 아니라면 왜 남들이 안하는 방법으로 연주를 했단 말인가? 하고 궁금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 먼저 조슈아 리프킨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1944년 4월22일 뉴욕에서 태어난 미국인입니다.(생일이 얼마 안남았군요.)
줄리어드를 나온 피아니스트,합시코드 연주자,음악학자 겸 지휘자인데, 중세음악부터 현대,심지어 스코트 조플린같은 래그타임(ragtime)음악에까지 손을 댔지만 그를 세계적인 음악인으로 만든 것은 1978년부터 이끌고 있는 '바흐 앙상블(the Bach Ensemble)'활동입니다.
원래부터 기존 학계의 믿음을 뒤집는 연구성과를 자주 내놓는 학자였던 그는 1981년'바흐는 원래 한 성부에 한명씩만을 기용했다'는,이른바 '리프킨 이론'을 내놓아 음악계를 뒤집어놓았습니다.
리프킨은, 바흐의 합창곡 악보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등 파트별로 한 개의 성부만을 부르게 되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문헌학적으로 보면 악보들도 가수 개개인이 혼자서 보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근거들을 종합해볼때, 바흐는 그의 시대에 파트별로 한명씩만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 리프킨 이론의 요지입니다.
구스타프 레온하르트나 톤 쿠프만 등 반대진영에서는 1730년 바흐가 라이프찌히 시 당국에 보낸 편지 "완성도 높은 교회음악을 연주하기 위한 몇가지 조건"을 들어 이를 반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흐는 '성부당 둘 혹은 세명씩의 성악 및 기악연주자'가 필요하다고 썼다는 것입니다.
리프킨은 이에 대해 야구의 비유를 들며 재반박했습니다. 바흐가 '성부당 두세명'을 언급한 것은 매 게임의 스타팅멤버를 말한 게 아니라 '풀 시즌을 뛰기 위한 로스터'를 언급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파트당 여러명'을 기용하는 지휘자들을 편의상 전통파라 하자면, 전통파가 바흐의 합창곡을 연주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일단 성부별로 한명의 연주자는 모든 소절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노래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어명은 보조로서 필요할때만 같이 노래를 불러 합창의 효과를 냅니다.
리프킨은 바흐의 코랄이나 칸타타의 합창들이 '합창의 속성과 독창의 속성을 다같이 갖고 있다'는데는 동의하면서, "그런데, 보조가수들은 언제 부르고 언제 입을 다무나? 악보에서 그런 표시 본적 있냐?"고 반문합니다. 다른 악상기호들은 악보에 빠짐없이 적어놓은 바흐가 그것만 유독 '시간이 없거나, 리허설때 말로 설명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안적었을리는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 과정에서 리프킨과 레온하르트가 벌인 논쟁은 당시의 연주법을 철저히 고증해내는 게 중요하냐 작곡가의 진정한 의도를 들려주는게 중요하냐 하는 문제를 다루어 원전연주의 커다란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세기가 바뀐 지금, 리프킨의 이론은 대세를 확보하는데는 실패한 듯이 보이지만 앤드류 패롯(Andrew Parrott)이나 존 벗(John Butt)같은 음악가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또 그 스스로 자신의 악단인 바흐 앙상블을 이끌고 훌륭한 칸타타 녹음들을 남겨 그의 주장이 예술적으로도 설득력있는 것임을 입증한 바 있습니다. (사진은 르와조리르(L`OISEAU-LYRE)에서 녹음되어 Decca염가반으로 나온 리프킨의 바흐 칸타타 2for1입니다.)
워너클래식스(Warner Classics)와 계약되어 있는 조슈아 리프킨은 워너의 산하 레이블인 논서치(Nonesuch)에서 1982년에 자신의 이론에 따른 B단조 미사를 내놓은 바 있습니다. 이 음반은 수집벽이 있으신 분이 아니라면 가급적 구입하지 마시기를 권해드립니다(사실,구하기도 어렵습니다만...) 왜냐?
최근에 염가판으로 재발매되었기 때문입니다.
워너가 올봄들어 내놓은 Ultima시리즈의 카탈로그가 나왔을 때 제가 가장 반겼던 것이 바로 Rifkin이 지휘한 Mass in b minor였습니다. 참여한 독창진은, 소프라노1 쥬디트 넬슨(Judith Nelson), 소프라노2 쥴리언 베어드(Julianne Baird), 카운터테너 제프리 둘리(Jeffrey Dooley), 테너 프랑크 호프마이스터(Hoffmeister) 등으로, 유명세로 보면 기존의 명반들에 비교하기 어려우나, 차분하고 안정감있는 가창을 들려줍니다.
리프킨의 B단조 미사 연주는 모든 파트에 한명씩이다 보니 나타나는 가장 큰 장점이, 라틴어 가사는 물론 선율들의 구조가 귀에 명료하게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음악평론에 많이 쓰이는 '텍스쳐가 투명하게 드러난다'는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대신 드라마틱하지는 않은데, 종교적인 염원을 담거나 청취자의 정서를 고양시키기 위한 어떤 노력은 의도적으로 배제된 느낌입니다. 그런 뜻에서 아카데믹한 연주라고표현할 수 있을 듯 합니다. CD2에 들어있는 (참, 이 음반은 2for1입니다.) 상투스의 경우도 성큼성큼 빠른 템포로 지나가는데, 대개 다른 지휘자들은 충분히 늘려잡은 템포로 장엄함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지않나 싶습니다.
b단조 미사의 파이프오르간처럼 중첩,연장되는 음향을 부담스러워했던 분들께는 특히 좋은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사실은 제가 좀 그런 성향이어서 b단조미사 전곡감상을 잘 하지 않았는데, 트랙1의 키리에나 트랙6의 그라티아스 아지무스 티비 같은 경우 그런 부담스런 느낌이 말끔히 걷혀 좋았습니다.
2번트랙 크리스테 엘레이손은 이런 소규모앙상블의 아름다움이 특히 잘 드러난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론 쿰 상토 스피리투에서는 충분한 다이내믹을 살려 '혹시나..'하는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습니다.
바흐 음악순례의 여정에서 꼭 들어볼 음반으로 구입추천코자 합니다.(★★★★☆). 단점이라면 음반점에 재고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그의 칸타타 녹음들마저도 늘 재고부족이고 찔끔찔끔 풀릴 뿐입니다. 이렇게 늘상 수요초과인 음반이라면 아예 수입물량을 왕창 늘릴만도 하건만, 유니버살 본사와 한국지사간의 업무가 그렇게 맘처럼 되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이현식.hyunsik@sb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