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리아 바이러스만큼이나 강력한 열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브루크네리아라고 합니다. 저는 이 바이러스가 한동안 잠복기를 거치다가 2차질환을 일으키는 바람에 요즘 아주 심한 열병을 앓고 있습니다. 직접적인 계기는 카라얀이 비엔나 필을 지휘하여 88년 11월에 녹음한 연주를 구입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연주는 카라얀의 말러 9번 실황과 함께 카라얀의 교향곡 실황의 정점에 서 있는 음반이자, 브루크너 8번 디스코그라피 중에서도 많은 평론가들에 의해 첫손꼽히는 명반이죠.
다만 도통 국내음반점에서 구할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모처에서 빌려 표지는 칼라복사,알맹이는 CD-R로 구워서 듣고 있던 차에 오리지널CD를 구입하게 된 것입니다. (명동 부루의 뜨락, 강남TPA등에 풀렸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한동안 안듣던 브루크너를 이 음반 덕에 귀가 아프도록 - 회사에서 헤드폰끼고 들었더니 정말 귀가 아파지더군요. 가만히 있어도 왼쪽귀가 쿡쿡 쑤실때가 있습니다.^^; - 들었는데, 이 열병을 더욱 깊게 만들 새 음반이 또 나왔지 뭡니까.
그것은 바로, 불멸의 브루크네리안 오이겐 요훔(Eugen Jochum)이 밤버거 심포니 (Bamberger Symphoniker)를 이끌고 연주한 실황음반입니다. 요훔-밤버거 심포니가 82년 9월15일 NHK홀에서 가진 연주회 Live가 일본 Altus에서 출반된 것이죠. 2for1이지만 일본직수입 음반인 관계로 1만7천원~2만1천원 정도로 팔립니다.
Altus는 지난해인가 1차수입 당시에도 화제가 됐었죠. 므라빈스키의 쇼스타코비치 5번 실황이 그 열기와 비교적 우수한 녹음(그의 다른 음반들에 비해서)으로 새로이 명반대열에 등극했고, 요훔의 브루크너7번은 그의 생애최후 라이브 음반이라는 역사적 가치를 넘어서는 궁극의 명연주로 각광을 받은 바 있습니다.
또한가지 저를 설레게 했던 브루크너 신보는 엘리아후 인발(Eliahu Inbal)지휘의 브루크너 8,9번(2CD Budget)입니다. 악단은 프랑크푸르트 라디오심포니 오케스트라, 82년8월 녹음입니다.
인발의 브루크너는 지난번 조슈아 리프킨의 바흐 음반처럼, 텔덱의 염가시리즈인 'Ultima'의 라인업 가운데 하나로 발매되었습니다. 전집발매되었지만 낱장판매하기때문에 저는 우선 8,9번이 들어있는 것 하나를 사온 것입니다. 인발의 브루크너 음반은 거듭된 개정때문에 판본이 많기로 유명한 브루크너의 악보들 가운데서도 초판본만을 모아서 만든 것이라는 역사적 가치가 제일 중요합니다.
* 노장이 인도하는 거대한 감동의 항해
그럼, 우선 요훔의 8번부터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요훔의 브루크너 연주 스타일은 스케일이 대단히 큽니다. 템포도 넉넉한 편입니다. 첼리비다케나 줄리니처럼 느리게 잡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빠르게 잡지도 않고, 다만 작품의 장대함을 충실히 표현하기에 적합한 정도로 늘려 잡는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브루크너의 교향곡은 낚시로 큰 물고기 잡을 때 줄을 당겼다 풀었다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고기를 수면위로 채어올리는 듯한 흐름을 띠죠.
한 프레이즈를 풀어놓고 조금 정서를 고양시키다가 이내 쉼표로 마무리하고, 경과구를 조용히 깔다가 새로운 프레이즈 보따리를 풀어놓고 또 약간의 고양감을 맛보게 해주고 다시 목소리를 낮추고.. 이런 과정을 여러번 반복하면서 점차 클라이막스에 도달하도록 유도한 뒤 결정적인 순간에 극치감을 맛보도록 한꺼번에 터뜨려 버리지요.
요훔의 장기라면 바로 이런 흐름의 처리에 능하다는 것이 아닐런지요. 하긴 이것은 브루크너로 유명한 지휘자들이라면 누구나 갖추어야 하는 덕목이긴 하지만, 요훔의 브루크너를 듣고 있으면 특히나 이런 점이 두드러지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카라얀 빈필 88년 연주와 조금 비교를 하자면, 전체적인 스케일감이나 구조감, 클라이맥스 처리 등에서는 정말 두 거장이 막상막하입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밤버거 심포니의 선전입니다.
밤버거 심포니는 유럽의 전통있는 오케스트라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빈필과 같은 반열의 교향곡 연주능력을 갖추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 요훔의 지휘봉 아래서는 이름을 잊게 만드는 뛰어난 연주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부묘사를 들어보면 극한의 세공을 장기로 삼는 카라얀(그리고 세계최강의 연주력을 갖춘 빈필)의 연주보다는 아무래도 덜하지만 그래도 놀라운 수준의 세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체적인 느낌이, 귄터 반트 스타일과 카라얀 스타일의 중간쯤 되는 것 같습니다.
교향곡사상 가장 장대한 3악장이라는 8번 3악장에서 카라얀은 현악파트 주자들에게 매우 강렬한 '표정연기'를 요구합니다. 일본을 통해서 입수한 카라얀의 브루크너 8번 실황 DVD (79년 성 플로리안성당 라이브/빈필)을 보면 이런 대목에서 카라얀은 주먹을 불끈 쥐고 팔을 부들부들 떨기까지 합니다.
3악장 20분대 클라이막스의 투티는 둘 다 비할 데 없이 강력합니다. 요훔은 좀 더 개방적,직선적으로 쾅- 터뜨리는 느낌입니다. 카라얀은 뭐랄까..무협지적으로 표현하자면 내가중수법의 고수가 태극권같은 동작으로 공력을 모아 모아서 일시에 발출하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4악장으로 가면 지휘자들의 기량싸움은 끝까지 백중세이나 밤버거 심포니의 악단원들이 조금 일찍 지치기 시작합니다. 4악장 후반부에 이르면 (여전히 훌륭한 연주기는 하지만) 트럼펫과 호른 주자들이 빈필쪽보다 힘이 딸린다는 느낌이 듭니다.
밤버거심포니의 트럼펫군은 빈필쪽보다 소리가 조금 더 얇고 금속성이 강합니다. 빈필쪽은 좀 더 도톰하고 오케스트라의 다른 파트와 조금 더 잘 융화됩니다. 그래서 밤버거 심포니의 연주를 워크맨 헤드폰을 끼고 들으면 귀가 아픕니다. 방의 오디오에 걸어보면 매우 또렷하게 치고 나오는 트럼펫 소리를 즐길 수 있습니다.
요훔의 8번(Altus)는 별5개로 강력추천합니다. (★★★★★) 24/96 리마스터링되어 사운드도 상당히 좋습니다. 브루크너 애호가라면 카라얀 연주와 함께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음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약자나 임산부, 기타 심장질환이 있으신 분은 그 감동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 브루크너의 초안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인발의 8,9번은 아마도 두 곡을 한꺼번에 살 수 있는 가장 싼 음반일 것입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으나 핫트랙스에서 1만2천원쯤인가에 산 것 같습니다. 8번1장,9번1장으로 되어 있다는 점도 매력입니다.
싸기는 하지만 인발의 8번은 이 곡을 처음 접하시는 분께 권해드리기는 좀 뭣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8번은 판본 개정이 가장 심하게 이뤄졌던 곡이기 때문에 요즘 주로 연주되는 하스(Haas)판과는 너무나 많은 차이를 보이거든요.
하스판에서 듣던 선율과 비교할 때 어느 파트가 아예 안나오거나, 선율 자체가 다른 구석도 많고 2악장에 가면 하스판의 중간부분이 아예 나중에 새로 작곡되어 삽입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브루크너는 자신감이 상당히 부족한 작곡가였답니다. 그래서 자기 고집대로 작품을 쓰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늘 구하고, 거기에 맞춰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7번을 대성공시킨 브루크너는 의욕적으로 자신이 생각했던 모든 것을 악보에 쏟아내 8번을 완성한 뒤 자신의 예술적 동지였던 지휘자 헤르만 레비에게 보여주었는데, 레비는 이에대해 '연주불가하니 다시 쓰지 그러시죠?' 이런 반응을 보여 브루크너를 충격에 빠뜨립니다.
오늘날 연주되는 판본은 브루크너가 그래서 대규모 수정작업 끝에 다시 내놓은 버전이고, 인발의 연주는 처음 브루크너가 레비한테 보여줬던 그 원고에 따른 것입니다.)
연주 스타일은 쾌속형입니다. 템포도 빠른 편이고, 프레이즈들을 짧게짧게 끊어가면서 연주해 나갑니다. 음향은 다소 건조한 편입니다. 8번3악장에 가서는 악장의 성격에 맞게 충분한 템포를 확보하고 현악군의 비브라토도 강하게 줍니다만, 전체적인 인상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2악장이 가장 매력적입니다.
같이 커플링된 인발의 9번은 브루크너가 남긴 미완성 4악장이 연주되어 수록됐습니다. 브루크너9번의 4악장에 대해서는 예전에 본란에 실렸던 호렌슈타인 연주에 관한 글에 자세히 나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4악장은 오늘날 일반적으로는 연주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8번3악장과 마찬가지로 비극적이고 아름다운 아다지오 3악장이 종결부 구실을 하고 있지요.
9번이 8번과 다른 점이라면 '절제'가 아닐까 하는게 제 생각입니다. 소설 '상도'에 보면 추사 김정희의 그림이 '세한도'를 지나 '상업지도'로 가면서 일체의 군더더기를 빼고 고도로 추상화되어가는 과정이 나오는데, 8번과 9번을 비교해보면 9번이 브루크너의 '상업지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9번의 4악장은 아직 작곡절차가 종결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다소 어수선한 편입니다.
어느 평론가에 따르면 말러는 피날레가 본령인 작곡가요, 브루크너는 아다지오가 본령인 작곡가라는데, 그말이 맞다고 실감하게 됩니다. 8번에서도 3악장을 듣고 나면 이 뒤에 또 뭐가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9번도 4악장을 듣고 보니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9번 4악장에서 브루크너는 모든 것을 다 끌어모아 장대하고 복잡하기 이를데 없는 피날레를 구상했던 것 같습니다만.
어쨌든 이것은 제가 말로 하는 이야기이니, 브루크너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도대체 어떤 곡이기에 그러냐, 내가 듣기는 다를 수도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별로 비싸지도 않은 음반이니 자료차원에서라도 꼭 구입해 들어보시라고 권해드립니다. 연주수준과 구매가치를 포함해,별은 4개반입니다.(★★★★☆)
이현식 hyunsik@sbs.co.kr
 요훔 브루크너 8.jpg)
그것은 바로, 불멸의 브루크네리안 오이겐 요훔(Eugen Jochum)이 밤버거 심포니 (Bamberger Symphoniker)를 이끌고 연주한 실황음반입니다. 요훔-밤버거 심포니가 82년 9월15일 NHK홀에서 가진 연주회 Live가 일본 Altus에서 출반된 것이죠. 2for1이지만 일본직수입 음반인 관계로 1만7천원~2만1천원 정도로 팔립니다.
Altus는 지난해인가 1차수입 당시에도 화제가 됐었죠. 므라빈스키의 쇼스타코비치 5번 실황이 그 열기와 비교적 우수한 녹음(그의 다른 음반들에 비해서)으로 새로이 명반대열에 등극했고, 요훔의 브루크너7번은 그의 생애최후 라이브 음반이라는 역사적 가치를 넘어서는 궁극의 명연주로 각광을 받은 바 있습니다.
 요훔7번.jpg)
또한가지 저를 설레게 했던 브루크너 신보는 엘리아후 인발(Eliahu Inbal)지휘의 브루크너 8,9번(2CD Budget)입니다. 악단은 프랑크푸르트 라디오심포니 오케스트라, 82년8월 녹음입니다.
인발의 브루크너는 지난번 조슈아 리프킨의 바흐 음반처럼, 텔덱의 염가시리즈인 'Ultima'의 라인업 가운데 하나로 발매되었습니다. 전집발매되었지만 낱장판매하기때문에 저는 우선 8,9번이 들어있는 것 하나를 사온 것입니다. 인발의 브루크너 음반은 거듭된 개정때문에 판본이 많기로 유명한 브루크너의 악보들 가운데서도 초판본만을 모아서 만든 것이라는 역사적 가치가 제일 중요합니다.
 브루크너8번-카라얀 빈필.jpg)
교향곡사상 가장 장대한 3악장이라는 8번 3악장에서 카라얀은 현악파트 주자들에게 매우 강렬한 '표정연기'를 요구합니다. 일본을 통해서 입수한 카라얀의 브루크너 8번 실황 DVD (79년 성 플로리안성당 라이브/빈필)을 보면 이런 대목에서 카라얀은 주먹을 불끈 쥐고 팔을 부들부들 떨기까지 합니다.
 카라얀 실황디브이디.jpg)
3악장 20분대 클라이막스의 투티는 둘 다 비할 데 없이 강력합니다. 요훔은 좀 더 개방적,직선적으로 쾅- 터뜨리는 느낌입니다. 카라얀은 뭐랄까..무협지적으로 표현하자면 내가중수법의 고수가 태극권같은 동작으로 공력을 모아 모아서 일시에 발출하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4악장으로 가면 지휘자들의 기량싸움은 끝까지 백중세이나 밤버거 심포니의 악단원들이 조금 일찍 지치기 시작합니다. 4악장 후반부에 이르면 (여전히 훌륭한 연주기는 하지만) 트럼펫과 호른 주자들이 빈필쪽보다 힘이 딸린다는 느낌이 듭니다.
밤버거심포니의 트럼펫군은 빈필쪽보다 소리가 조금 더 얇고 금속성이 강합니다. 빈필쪽은 좀 더 도톰하고 오케스트라의 다른 파트와 조금 더 잘 융화됩니다. 그래서 밤버거 심포니의 연주를 워크맨 헤드폰을 끼고 들으면 귀가 아픕니다. 방의 오디오에 걸어보면 매우 또렷하게 치고 나오는 트럼펫 소리를 즐길 수 있습니다.
요훔의 8번(Altus)는 별5개로 강력추천합니다. (★★★★★) 24/96 리마스터링되어 사운드도 상당히 좋습니다. 브루크너 애호가라면 카라얀 연주와 함께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음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약자나 임산부, 기타 심장질환이 있으신 분은 그 감동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브루크너 8 9-인발.jpg)
싸기는 하지만 인발의 8번은 이 곡을 처음 접하시는 분께 권해드리기는 좀 뭣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8번은 판본 개정이 가장 심하게 이뤄졌던 곡이기 때문에 요즘 주로 연주되는 하스(Haas)판과는 너무나 많은 차이를 보이거든요.
하스판에서 듣던 선율과 비교할 때 어느 파트가 아예 안나오거나, 선율 자체가 다른 구석도 많고 2악장에 가면 하스판의 중간부분이 아예 나중에 새로 작곡되어 삽입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브루크너는 자신감이 상당히 부족한 작곡가였답니다. 그래서 자기 고집대로 작품을 쓰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늘 구하고, 거기에 맞춰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7번을 대성공시킨 브루크너는 의욕적으로 자신이 생각했던 모든 것을 악보에 쏟아내 8번을 완성한 뒤 자신의 예술적 동지였던 지휘자 헤르만 레비에게 보여주었는데, 레비는 이에대해 '연주불가하니 다시 쓰지 그러시죠?' 이런 반응을 보여 브루크너를 충격에 빠뜨립니다.
오늘날 연주되는 판본은 브루크너가 그래서 대규모 수정작업 끝에 다시 내놓은 버전이고, 인발의 연주는 처음 브루크너가 레비한테 보여줬던 그 원고에 따른 것입니다.)
연주 스타일은 쾌속형입니다. 템포도 빠른 편이고, 프레이즈들을 짧게짧게 끊어가면서 연주해 나갑니다. 음향은 다소 건조한 편입니다. 8번3악장에 가서는 악장의 성격에 맞게 충분한 템포를 확보하고 현악군의 비브라토도 강하게 줍니다만, 전체적인 인상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2악장이 가장 매력적입니다.
같이 커플링된 인발의 9번은 브루크너가 남긴 미완성 4악장이 연주되어 수록됐습니다. 브루크너9번의 4악장에 대해서는 예전에 본란에 실렸던 호렌슈타인 연주에 관한 글에 자세히 나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4악장은 오늘날 일반적으로는 연주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8번3악장과 마찬가지로 비극적이고 아름다운 아다지오 3악장이 종결부 구실을 하고 있지요.
9번이 8번과 다른 점이라면 '절제'가 아닐까 하는게 제 생각입니다. 소설 '상도'에 보면 추사 김정희의 그림이 '세한도'를 지나 '상업지도'로 가면서 일체의 군더더기를 빼고 고도로 추상화되어가는 과정이 나오는데, 8번과 9번을 비교해보면 9번이 브루크너의 '상업지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9번의 4악장은 아직 작곡절차가 종결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다소 어수선한 편입니다.
어느 평론가에 따르면 말러는 피날레가 본령인 작곡가요, 브루크너는 아다지오가 본령인 작곡가라는데, 그말이 맞다고 실감하게 됩니다. 8번에서도 3악장을 듣고 나면 이 뒤에 또 뭐가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9번도 4악장을 듣고 보니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9번 4악장에서 브루크너는 모든 것을 다 끌어모아 장대하고 복잡하기 이를데 없는 피날레를 구상했던 것 같습니다만.
어쨌든 이것은 제가 말로 하는 이야기이니, 브루크너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도대체 어떤 곡이기에 그러냐, 내가 듣기는 다를 수도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별로 비싸지도 않은 음반이니 자료차원에서라도 꼭 구입해 들어보시라고 권해드립니다. 연주수준과 구매가치를 포함해,별은 4개반입니다.(★★★★☆)
이현식 hyunsik@sb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