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 인랑 S.E
최근에 국내에서도 개봉된 『공각기동대』의 감독 오시이 마모루는 에니메이션을 통해 인간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독특한 미래관을 담은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인랑』은 오시이 마모루가 제작자로 변신해 만들어낸 또 다른 셀에니메이션으로 감독이 분명 따로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내내 오시이 마모루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오늘은 세계적인 에니메이션 영화제에서 거푸 수상의 감격을 안은 바 있는 본 작품을 간단히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제품정보
-제작사
: 파이오니어, 반다이
-화면 : 1.85:1 아나몰픽
-음향 : 영어 DD5.1, 일본어 DD5.1, DTS
-자막 : 영어
-디스크 : 단면 더블레이어 (3디스크 세트)
-제작년도 : 1999년
-DVD발행년도 : 2002년
-상영시간 : 162분
-등급 : NR
-지역코드 : 1번
-감독 : 오기우라 히로유키
2. 영상 및 음향
본 작이 소개될 때마다 항상 나오는 이야기는 "실사 에니메이션"이라는 것입니다. 본인이 처음 이 용어를 접했을 때에는 마치 일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그려낸 만화영화라고 생각해서 이러한 작품을 보게 되면 이게 만화영화인지 실사영화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동을
일으키게 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위의 제 생각은 전혀 맞는 말이 아니죠. 너무나 만화영화라는 것이 티가 나서 차라리 디즈니 에니메이션이
제 원래 생각에는 더 부합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실사 에니메이션"이라는 것은 만화영화가 범하기 쉬운 과장, 왜곡이 없이 실제 우리들이
현실세계에서 볼 수 있는 사실적인 현상들을 그려냈다는 점이죠. 그런 의미에서 본 작품은 인물의 움직임, 그림자. 사물의 반응 등이 매우
정확하게 그려졌다는 점에서 "실사 에니메이션"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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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두건 아가와 나나미 |
하지만 영상은 평범한 수준입니다. 화면에 잡티는 없고 외곽의 윤곽선 역시 처리가 말끔하지만 해상도는 다소 떨어지는 수준입니다. 아마도
원화 자체가 선명한 색상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평가를 하자면 5점 만점에 3점을 주고 싶습니다.
음향은 일본어 DD, DTS 5.1채널 및 영어 DD5.1채널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사양자체는 훌륭하지만 그다지 뛰어난 음향효과를 맛볼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널분리도는 비교적 훌륭하고 센터체널의 대사전달도 명확한 편이므로 그다지 흠을 잡을 만한 요소는 없습니다.
평가를 하자면 5점 만점에 3.5점을 주고 싶습니다.
3. 영화에 대해서
오시이 마모루가 바라보는 미래는 결코 밝고 아름다운 세상은 아닙니다. 그의 전작인 『공각기동대』를 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네트가 모든
세상을 덮고 있는 근미래"에 반인간반사이보그인 주인공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합니다. 그의 개인적인 실존의 문제도 상당히 난해하지만
정작 우리는 이 근미래의 가상세계가 공안통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경찰국가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본 작의 영화적 배경은 패전 후 1960년대의 가상 일본 - 바로 대체역사를 말하는 것 - 이므로 영화상으로는 과거가 배경이지만 실질적으로
오시이가 생각하고 있는 영화속 세상은 미래의 이야기에 가까울 겁니다. 이곳에서도 사회는 혼란으로 점철되어 있고 국가는 이러한 대중적 혼란을
무마하기 위해 강력한 공권력을 이용합니다.
이러한 바탕 위에 제작자로 나선 오시이 마모루는 치안을 담당하는 권력의 핵심부를 둘러싼 알력과 그러한 암투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춥니다.
이 영화에는 감독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여전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오시이의 것이고 영화의 흐름은 오시이의 뜻에 따라 움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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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와의 계획된 조우 |
"우리의 개의 탈을 쓴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탈을 쓴 늑대일 뿐이다."
인랑(人狼)은 말 그대로 늑대 인간을 의미하며 이는 인간성이 상실된 현대인의 전형을 상징합니다. 영화 속에는 자폭한 아가와의 유품에서 나온
"빨간 두건"의 책자가 중요한 모티브로 제시됩니다. 할머니를 찾아 나선 빨간 두건은 이미 할머니를 먹어치우고 침대에 누워있는 늑대로부터
위협을 당합니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공안통치를 행하는 국가와 이에 항거하는 국민에 대한 제작자의 입장은 분명해 집니다. 즉 과거로 설정된 가상의 일본을
곧 미래국가의 전형으로 파악한 오시이는 국가권력이 개별적인 인간들에게 가하는 위협에 대한 경종을 제시함으로써 그가 생각하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야기의 구성은 다소 미흡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한 번 풀어보죠. 점점 불안해져가는 사회의 치안유지를 위해 수도경 산하에는 특기대라고 하는 시위진압 전문 조직이 구성됩니다. 반정부단체의
활동이 강화될 수록 특기대의 중요성은 점점 부각되어가고 이를 시기하는 정부내 조직들이 생겨납니다.
우리의 주인공 후세 카즈키는 바로 특기대의 대원입니다. 그는 뛰어난 실력을 지닌 대원이기는 하지만 너무나 감성적인 면을 지닌 존재로서 인간이기를
포기한 특기대원으로서는 치명적인 단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의 이런 모습은 영화의 초반 반정부단체 섹트의 하부조직인 빨간 두건의 대원인
아가와 나나미의 자폭장면에서 그녀를 쉽게 죽이지 못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녀의 위패 앞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그녀의 언니 케이에게 운명적으로 다가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케이는 그와 우연히 마주친
것이 아니라 특기대를 해체시키려고 하는 경시청과 공안부의 모략으로 포섭된 전직 테러리스트였을 뿐이죠.
따라서 영화는 국가 조직 차원에서의 음모와 이에 의해 희생되어질 운명에 빠진 한 남자에게 포커스를 맞춥니다. 게다가 주인공을 둘러싼 음모의
중심에는 바로 헨미라는 절친한 친구가 위치하고 있으니 주인공에게 동정심이 유발되기에는 충분합니다.
여기까지는 나름대로 괜찮은 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후세가 케이의 연락을 받고 그녀에게 달려간 후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 영화는 놀랄만한
반전을 지니고 있으니 이미 후세와 특기대는 경시청과 공안부의 음모를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이 반전은 그다지 중요한
작용을 하지는 못합니다. 아마도 관객들은 이 반전에서 별다른 놀라움을 느끼기 어려울 것인데 그것은 영화 자체가 이 반전을 중요한 전개상의
모티브로 삼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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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인 헨미는 야심을 위해 친구를 배신한다. |
문제는 후세의 변화입니다. 지금까지 흔들리는 마음의 소유자였던 후세는 갑자기 냉혈한 특기대원으로 변모하여 마치 심장이 없는 인간처럼 행동합니다.
그의 갑작스런 변화는 지금까지 그에게 가지고 있던 모든 동정심과 안타까움을 한 순간에 앗아가 버립니다.
즉 특기대를 모함에 빠뜨리고자 하는 기관의 모략에 속아넘어가는 것으로 관객이 생각하게 되는 시점까지의 주인공과 결국 기관들의 모략을 사전에
인지하고 반대로 기관들을 응징하게 되는 시점후의 주인공은 동일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사람의 탈을 쓴 늑대로서 교묘한 성격위장을 했던 것인지, 아니면 결국 조직의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는 냉혈한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인지 확실해 지지 않으며 어떤 경우라도 시청하는 관객에게는 지나친 성격적 단절로 비쳐집니다.
그리고 그것은 관객들에게는 너무나 큰 혼란으로 다가옵니다.
평가를 하자면 5점 만점에 2.5점을 주고 싶습니다.
4.부록은 ...
2번 디스크에 수록된 부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 Production Art Gallery: 영화제작과 관련된 스틸 사진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 Director/Creator Interviews: 감독, 제작자를 비롯한 음악 및 영상디렉터의 인터뷰와 함께 영화의
제작과 관련된 일화들을 들을 수 있는 방대한 영상자료입니다. 일본어로 대화가 진행되고 영어자막이 간단하게 핵심만을 파악할
수 있도록 쉬운 문장으로 제시되고 있어 이해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에 오시이가 직접 감독을 하려고 했으나
결국 현 감독인 오기우라에게 지휘봉을 넘겼다는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 Theatrical Trailers: 4편의 일본어 홍보영화와 1편의 영어용 홍보영화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3번 디스크는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 수록된 CD입니다.
- 이밖에 패키지의 일부로 12장의 부클릿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5.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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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랑으로 변신한 후세 |
사실 처음 일본 에니메이션에 대한 시장개방이 발표되던 당시에는 많은 문화계 관계자들이 일본 에니메이션의 경쟁력을 들어 엄청난 시장잠식
효과가 있을 것으로 우려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일련의 히트작들이나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들 역시 그다지 국내에서 좋은
흥행 성적을 올리지는 못했습니다.
국내에도 일본 에니메이션에 대한 열혈층들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런 점들이 백만 이상의 인파를 동원할 만한 시장성으로 직접 연결되지는 못하는
듯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가장 직접적인 요소로 일본 에니메이션들의 경우 성인취향의 난해한 작품이 많다는 점을
들고 싶습니다.
아직도 에니메이션의 최대 관객은 성인이 아닌 아이들이며 이들의 눈 높이에는 역시 디즈니를 비롯한 할리우드의 작품들이 제격이니까요....
그나마 체면을 지킨 작품이 『포켓 몬스터』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본 작품은 국내에서도 출시될 예정으로 있습니다. 소중한 외화를 아끼기 위해서도 잠시 기다려 보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