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답니다. 바그너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저로 말하자면 바그너를 무척이나 싫어했으나 이제는 참 좋아하는 사람이 된 경우입니다. 이건 커밍아웃보다 무섭네요.
바그너는 자기 주장이 워낙 강하고 독선에 가득 찬 면모를 보여 음악을 접하기도 전에 편견을 갖기 쉬운 사람입니다. 물론 바그너 탓도 있지요. 항상 어떤 이슈에 대해서도 자기 주장이 있으며 그걸 마음에 간직하기 보다는 늘 떠들고 다녔으니까 적도 많았구요. 특히 반유태적인 말과 행동으로 히틀러의 모델이 되었다는 오해도 많이 받습니다.
음악은 어떠냐며 대부분 2시간을 넘기는 곡을 썼고 심하면 10시간이 넘는 곡을 써서 청중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독선을 보여줍니다. 바그너 음악을 들을 시간에 다른 작곡가의 음악을 5-6곡을 들을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의 음악에 빠지기 위해서는 일종의 적응과 카리스마에 복종하는 단계가 필요하므로 그런 걸 싫어하는 사람의 경우는 참 좋아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바그너의 음악속에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삶의 본질에 대한 성찰과 예술적인 비전이 농축되어 있으므로 한번 참고 들으면 좀 친해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니벨룽의 반지"는 바그너가 약 20년에 걸쳐 창작한 4부작의 대작으로 그의 삶과 사회에 대한 비전, 그리고 오페라에 대한 입장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서사적인 작품입니다. 청장년기에 무정부주의에 경도되어 드레스덴 봉기에서 만만치 않은 역할을 맡다가 지명수배되어 긴 망명의 길을 떠나게 되는데 그의 예술관과 인생관도 많이 변하게 됩니다.
예술관에서는 그리스 비극에 경도되어 그리스가 타락하게 된 것은 예초에 종합예술이었던 악극이 시와 음악으로 분리되어 독자의 길로 발전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다시 한번 시와 음악을 융합시키려고 했었는데, 모짜르트가 이도메네오의 창작과정에서 그의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토로한 바와 같이 어디까지나 음악이 주이고 가사는 종속적이다라고 말한 것과는 반대로, 바그너는 가사에 음악을 종속시키려고 했습니다. 그게 1부작인 라인의 황금인데 영 어색합니다.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음악이 주이고 가사는 부속적이다라고 했는데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그의 친구가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공연에서 어떻게 감상해야 되냐고 물었더니 그는 가사는 들을 것도 없이 그냥 음악만 들어 했답니다. 이런 태도가 4부작인 신들의 황혼에서 보입니다. 브륀힐데가 불속으로 뛰어 들어가기전에 나오는 아름다운 라이트 모티브의 향연은 가사없이도 그 의미가 전달됩니다.
이렇듯 그의 예술관 음악관에서도 긴 여정을 보여줍니다. 그가 인생을 보는 눈도 많이 변하는데 라인의 황금을 작곡할 당시에는 정치적으로 무정부주의자이고 인간이 사회를 바꿀수 있으며 그 역할을 혁명 또는 정치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의 중반을 넘기면서 정치가 크게 무엇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환멸: 환상을 멸하다, disillusion: 환상을 버리다) 점차 내면의 세계로 경도됩니다.
그때 쇼펜하우어의 저서를 접하게 됩니다. 쇼펜하우어는 불교의 영향을 크게 받은 철학자로 어차피 우리가 겪는 세계는 가상으로 실상은 우리가 모두 한데 얽혀 있는 관계로 사실은 타자가 아니라 다 모두 큰 하나의 자식이요 가지라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힌두교의 브라만이나 불교의 사상과 비슷한데, 따라서 서로가 서로를 해치는 것은 사실은 자신을 해치는 것이라고 보고 삶의 방편책으로서 자비(compassion)를 주장하게 됩니다.
여기에 깊이 감화받은 바그너는 불교경전까지 읽게 되는데 말년에는 쇼펜하우어의 책과 불교 경전을 늘 읽었으며 정원에는 불상까지 모셔다 놓게 됩니다. 나중에는 '부다'라는 불교 오페라를 작고하려했지만 끝내 못하고 대신 이야기의 줄거리만 중세기독교에서 빌리고 내용은 실은 불교적인 Parsifal을 작곡합니다.
* '니벨룽의 반지'에 그려진 세계는?
힘과 억압과 계약과 부권적인 가치가 횡행하는 세상에서 배려와 희생과 자비와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가 주도하는 세상을 꿈꾼 것이 바로 "니벨룽의 반지"입니다.
가부장적인 권위로 대표되는 보탄은 계약의 신입니다. 그의 창에는 신성한 계약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힘을 유지하기 위한 성을 짓기 위해 거인과 자신의 처제를 거래합니다. 권력과 인간적인 것과의 거래입니다. 그게 잘 되지 않자 기만적인 술책을 써서 역시 난장이 알베리히가 강제로 강탈한 라인의 황금으로 만든 반지를 뺏어서 거인에게 줍니다.
그 금을 알베리히가 라인의 처녀에게 뺏을 때 그는 " 나는 사랑을 포기하고 그 반지를 갖게다"고 맹세합니다. 사랑을 포기하고 그 댓가로 받는 반지는 물신, 권력의 상징입니다. 그 반지를 소유하는 사람마다 죽습니다. 즉 물신을 갖는 대신 생명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부권 또는 계약으로 구성된 사회로 대표되는 발할라-보탄과 신들이 사는 성채(편집자 주)-는 생명 또는 사랑으로 대표되는 브륀힐데를 추방한 후 사멸하기 시작합니다. 지그프리트 또한 물신에 눈이 멀어 링을 포기하지 않다가 살해당합니다.
이 극에서 끝까지 제 정신을 잃지 않는, 아마도 작곡가의 story carrier인 브륀힐데는 링을 다시 주인에게 돌려주면서 불에 뛰어 들어 극을 마감하는데 부권적이고 권력지향적인 세상에서 여성적 가치가 존중받고 사랑의 연대로 맺어진 사회로 이행하는데 불로써 정화되는 또는 희생하는 역할을 합니다. 워낙에 썼다가 지운 브륀힐데의 마지막 가사는 이렇습니다.
From the realm of the world I depart,
the realm of illusion I adjure for ever;
I closed behind me
the open gates
of endless becoming;
to the free-from-desire, free-from-illusion,
holiest, chosen land-
the goal of worldwide wondering-
she who has achieved wisdom now goes.
Do you know how I reached
this blessed end
of all that is endless?
My eyes were opened
by the profoundest suffering
of grieving love.
I saw the world end.
이 구절은 쇼펜하우어적인 말미입니다. 또한 I saw the world end는 아쉽게도 요절한 음악학자인 데릭 쿡의 링에 대한 책의 제목입니다.
현실에서는 죽지만 불로써 정화되어 티끌없는 몸으로 저세상으로 가서 사랑과 자비가 기반이 된 세상을 살겠다는 염원이라고 봅니다. 동시에 가부장적, 권위적인, 계약적인 것에 바탕을 둔 세상 "발할라"는 불에 타 멸망합니다. 브륀힐데가 불속으로 뛰어 들기전에 나오는 음악은 이 곡의 백미 중의 백미로 언제나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바그너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라고 봅니다.
* 추천음반과 서적
제가 듣고 가지고 있는 링은 푸르트벵글러의 밀라노 라디오 공연, 솔티의 데카판, 크나퍼츠부쉬의 전곡 그리고 오늘 소개드릴 구달(Goodal)의 영어판 링입니다. 음질이나 곡의 심리학적인 면을 잘 살릴 연주로는 단연 구달의 영어판 링이라고 봅니다.
영국에는 세상의 모든 오페라를 영어로 바꾸어서 부르는 단체가 있는데 바로 Enlgish National Opera입니다. 사들러스 웰스 오페라단이 전신이었고요. 이들이 노래한 '링'은, 최고의 보탄과 브륀힐데라고 칭송받기도 합니다. 영어라서 가끔 리브레토를 보지 않고도 그냥 들을 수 있어 좋구요. 단점은 나중에 독어판 링을 들으면 굉장히 헤멘다는 데 있습니다. 당연히 CD로 나와있습니다.
고맙게도 Chandos 레이블에서 revival했습니다. 따로 살 수도 있고 다 같이 살 수도 있습니다. 마침 동호인에게서 이게 우리나라에 전곡이 다 들어왔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전해드립니다. 음질도 좋고 더구나 할인판매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그너를 좋아하신다면 꼭 읽을 책이 있는데 그것은
1.Wagner and philosophy, Bryan Magee, Allen Lane the Penguin Press
2.Richard Wagner Der Ring des Nibelungen a companion by Rudolph Sabor
3.The power of the ring, A Jungian feminist perspective, Jean Shinoda Bolen, MD, Nicolas Hays.
4.I saw the world end, Deryk Cooke
입니다.
1번은 너무나 유명하고 좋은 책입니다. 바그너의 인생, 사상, 작품에 대해 영국의 철학자가 쓴 책입니다. 2번은 5권으로 된 책으로 대사와 그 옆에 라이트 모티브를 정리했습니다. 음악들을 때 보고 들으면 good입니다.
3번은 미국의 여성 정신과의사가 쓴 책으로 너무 재미있어서 4일만에 읽었습니다. Jungian psychology와 feminist적인 시각에 의존해서 링을 anima(여성성)과 animus(남성성)의 관점에서 풀어나간 책입니다. 300페이지 정도 되는데 정말 좋은 책입니다. 4는 요절하는 바람에 1권만 발간되었는데 링에 나오는 모든 라이트 모티브에 대한 분석입니다. 골수만 읽으면 되겠습니다.
바그너를 싫어하고 싶은 분은 다음과 같은 책을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1.Wanger and Hitler (The prophet and His disciple), Joachim Kohler, Polity
2.Wagner - Race and Revolution, Paul Laurence Rose
바그너를 아주 히틀러같은 놈이라는 책입니다. 사실 히틀러는 바그너 음악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그걸 자기네 음악으로 차용했지요. 참모 중에 음악들을 줄 아는 놈은 바그너 음악이 제 3제국의 이념과 아주 대치되는 위험한 음악이라고 툴툴댔지요.
히틀러가 바이로이트에 그렇게 자주 간 것은 사실은 바그너의 손녀와 연인사이였기 때문입니다. 반유태주의로 따지자면 베니스의 상인을 쓴 세익스피어가 더 심했는데 하필이면 이놈의 히틀러가 자기네 심볼로 바그너를 썼고 아우슈비츠같은데서도 지크프리트의 목가등을 틀어대서 그런 것으로 봅니다. (끝)
 바그너-구달 경.jpg)
제가 듣고 가지고 있는 링은 푸르트벵글러의 밀라노 라디오 공연, 솔티의 데카판, 크나퍼츠부쉬의 전곡 그리고 오늘 소개드릴 구달(Goodal)의 영어판 링입니다. 음질이나 곡의 심리학적인 면을 잘 살릴 연주로는 단연 구달의 영어판 링이라고 봅니다.
영국에는 세상의 모든 오페라를 영어로 바꾸어서 부르는 단체가 있는데 바로 Enlgish National Opera입니다. 사들러스 웰스 오페라단이 전신이었고요. 이들이 노래한 '링'은, 최고의 보탄과 브륀힐데라고 칭송받기도 합니다. 영어라서 가끔 리브레토를 보지 않고도 그냥 들을 수 있어 좋구요. 단점은 나중에 독어판 링을 들으면 굉장히 헤멘다는 데 있습니다. 당연히 CD로 나와있습니다.
고맙게도 Chandos 레이블에서 revival했습니다. 따로 살 수도 있고 다 같이 살 수도 있습니다. 마침 동호인에게서 이게 우리나라에 전곡이 다 들어왔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전해드립니다. 음질도 좋고 더구나 할인판매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그너를 좋아하신다면 꼭 읽을 책이 있는데 그것은
1.Wagner and philosophy, Bryan Magee, Allen Lane the Penguin Press
 Wagner and Philosophy.jpg)
2.Richard Wagner Der Ring des Nibelungen a companion by Rudolph Sabor
3.The power of the ring, A Jungian feminist perspective, Jean Shinoda Bolen, MD, Nicolas Hays.
4.I saw the world end, Deryk Cooke
입니다.
1번은 너무나 유명하고 좋은 책입니다. 바그너의 인생, 사상, 작품에 대해 영국의 철학자가 쓴 책입니다. 2번은 5권으로 된 책으로 대사와 그 옆에 라이트 모티브를 정리했습니다. 음악들을 때 보고 들으면 good입니다.
 Ring-a companion.jpg)
3번은 미국의 여성 정신과의사가 쓴 책으로 너무 재미있어서 4일만에 읽었습니다. Jungian psychology와 feminist적인 시각에 의존해서 링을 anima(여성성)과 animus(남성성)의 관점에서 풀어나간 책입니다. 300페이지 정도 되는데 정말 좋은 책입니다. 4는 요절하는 바람에 1권만 발간되었는데 링에 나오는 모든 라이트 모티브에 대한 분석입니다. 골수만 읽으면 되겠습니다.
바그너를 싫어하고 싶은 분은 다음과 같은 책을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1.Wanger and Hitler (The prophet and His disciple), Joachim Kohler, Polity
2.Wagner - Race and Revolution, Paul Laurence Rose
바그너를 아주 히틀러같은 놈이라는 책입니다. 사실 히틀러는 바그너 음악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그걸 자기네 음악으로 차용했지요. 참모 중에 음악들을 줄 아는 놈은 바그너 음악이 제 3제국의 이념과 아주 대치되는 위험한 음악이라고 툴툴댔지요.
히틀러가 바이로이트에 그렇게 자주 간 것은 사실은 바그너의 손녀와 연인사이였기 때문입니다. 반유태주의로 따지자면 베니스의 상인을 쓴 세익스피어가 더 심했는데 하필이면 이놈의 히틀러가 자기네 심볼로 바그너를 썼고 아우슈비츠같은데서도 지크프리트의 목가등을 틀어대서 그런 것으로 봅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