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밤, 금호아트홀에서 열렸던 오펠리 가야르의 바흐 무반주첼로 모음곡 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가야르의 음반 표지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더러 계실줄로 압니다. 2001년 녹음된 이 음반의 수입당시 선전문구는 이랬습니다.
"바로크 첼로의 잔다르크 - 오펠리 가이야르가 연주하는 바흐!
거침없는 운궁과 당당한 바흐 연주로 바로크 첼로 연주계에 화제를 몰고온 오펠리 가이야르의 바흐 연주음반!!! 역동적인 다이내믹과 절묘한 속도감, 무곡의 특성을 잘 살린 해석으로 완성한 바흐를 만나보십시오 ***디아파종 황금상 수상***"
당시 저는 이미 비스펠베이의 음반 신.구 녹음 두 종 모두 있던 때로, 선전문구 내용대로라면 음반이 좀 겹치겠다 싶어 수집욕을 누르고 사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지난번 셀린느 프리쉬의 골드베르그 변주곡 쳄발로 콘서트로 금호아트홀의 고음악시리즈에 좋은 인상을 갖고 있던 차에 가야르가 내한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겁니다.
금호아트홀에는 지난번 프리쉬의 콘서트때보다는 좀 적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쳄발로 실연 보기가 바로크첼로 원전악기 연주 보기보다 더 어려운 탓인지? 연주회 시간은 8시로, 저같은 직장인에게는 정말 고마웠습니다.
원래 제 표는 앞에서 12번째쯤 되는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곧 공연을 시작합니다.'라는 장내 안내멘트가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앞쪽 자리들은 텅 빈 채였습니다. 8시는 다 된 것 같은데 이 상태 대로라면 연주자가 마음의 상처를 받겠다 싶어 얼른 앞자리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그제서야 뒤에서 한꺼번에 지각한 청중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게 아닙니까. 제 좌 우에서 같은 처지의 '메뚜기'들이 쫓겨나갔는데, 운이 좋아 간발의 차이로 살아남게 됐습니다. 자리는 무대 정면 앞에서 둘째줄. 88년 이후 이렇게 앞에 앉아보기는 처음이라 기분이 들떴습니다.
선전문구의 탓일까? 그녀의 음반표지 사진, 그리고 음반속지에 든 얼굴사진으로 보건대는 양희은을 연상케 하는 풍채일 것이라고 짐작했었습니다. 무대 왼편 벽이 열리고 연주자가 나왔습니다. 생각보다 아주 호리호리하고 늘씬한 미인이었습니다. 어깨를 드러낸 드레스 차림의 가야르가 자리에 앉아 조율을 시작하는데, 저와의 거리는 약 4미터 정도밖에 안됐습니다. 활을 그으면 그에 닿은 줄이 떨리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습니다.
2장 낱장으로 구성된 가야르의 무반주 첼로모음곡 CD는 1번 2번 6번이 CD 1, 3번 4번 5번이 CD 2입니다. 이날의 프로그램은 1,3,5번이었습니다. 아무래도 1번과 3번이 훨씬 유명하다는 점이 감안된 것 같았습니다. 참고로, 왜 전곡을 안하냐고 생각할 분이 계실텐데, 하룻밤에 무반주첼로모음곡 6곡을 다 연주하는 것은 시간도 오래걸리거니와, 굉장한 체력을 요하는 일입니다. 덩치 크고 힘 좋은 비스펠베이도 4곡 반이 넘어가면서부터는 기운이 떨어지고 숨가빠 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이니, 여성연주자에게 그걸 바라는 것은 무리죠.
(* 비스펠베이 연주회 감상기 click )
이윽고 연주가 시작됐습니다. 처음부터 루바토(연주자 재량에 따라 템포를 밀고 당기며 조절하는 것)가 뚜렷하게 사용됐습니다. 같이 갔던 조용로님은 나중에 'XT컴퓨터에서 타자를 빨리 치면 글자가 한꺼번에 밀려 나오던 그 모습이 생각난다'고 비유를 하시더군요. 루바토는 3번처럼 무곡의 리듬감이 강한 곡에서는 절제되었지만 5번에서는 다시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가야르의 첼로 소리였습니다. 비스펠베이를 들을 때에 비해서 '바로크첼로'같은 느낌이 좀 덜했습니다. 어찌보면 현대첼로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그 이유중에 하나는 이것이 아닐까 합니다.
바로크 첼로는 원래 비브라토(지판을 짚은 손가락을 움직여 소리에 바이브레이션을 넣는 기법)를 쓰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대신 활 긋는 깊이와 힘을 조절해 소리의 농담과 색채를 바꾼다고 하지요. 그런데 가야르는 꽤 적극적으로 비브라토를 사용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예전에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악기와 현대악기를 모두 능숙하게 다루는 비스펠베이가 가끔 친구들에게 블라인드 테스트를 시킨답니다. 악기를 보여주지 않은 상태로 고악기와 현대악기를 연주하고는 어느 쪽이었는지 맞춰보란다는 것이죠. 우리가 음반 듣던 것을 생각하면 그게 뭐 어려우랴 싶지만, 이때 전공자들도 자주 틀린다는군요. 악기 자체뿐 아니라 주법이 음색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큰가봅니다.
연주의 전체적인 느낌은, 위에 인용한 음반사 선전문구와는 딴판이었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른바 '여성적'인 면이 두드러졌습니다. 다이내믹과 '거장성'을 추구하는 연주라기보다는 우아하고 오목조목 아기자기한 연주라는 느낌이었습니다.1번 3번같은 리듬감 강한 곡보다는 선율성이 강한 곡이 더 어울리겠다 싶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앵콜곡으로는 2번의 프렐류드를 들고 나왔습니다.
종이에 적어온 것을 보고 우리말로 직접 곡목소개를 하기도 했는데, 음색과 표현 등 모든 면에서 이날 연주 중 베스트중의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다시 소편성 연주장으로서의 금호아트홀을 칭찬하고 싶습니다. 가야르의 음량은 원전악기임을 감안해도 크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참고 : 바로크첼로는 사람을 안듯 연주자가 다리 사리에 끼우고 연주합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 바닥에는 닿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대첼로는 바닥에 '꽂아 눌러놓고' 연주합니다. 공명통이 몸에 덜 닿게 되고 힘 주기도 좋으니 현대첼로의 음량이 더 크게 되겠지요.) 만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었다면 뒷쪽에 앉은 분들은 음량이 작아 좀 답답해 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워낙 앞에 앉아 있었으므로, 집에서 오디오로 들을때 만큼이나 많은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첼로와 섹스하는 듯한 연주자의 숨소리, 지판 짚는 소리 등등.. 연주자와 저의 거리까지도 제 방의 청취 위치와 음상간 거리와 엇비슷해서 더욱 '오디오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날 연주회는 유명세가 좀 떨어지는만큼 아주 진지한 분위기였습니다. 핸드폰 소리의 공해가 한번도 없는 - 저로서는 이례적인 - 공연이었습니다. 6곡씩 3세트, 합해서 18개의 소곡이 연주되는 동안 '삑사리 박수'가 한번도 없었다는 점도 놀라운 일이구요. 자던 아이가 갑자기 깼는지 마지막 즈음에 아이 우는 소리가 좀 났던 것 외에는 청중의 분위기도 만족스러웠습니다. 음악수필과 스케치로 유명한 신동헌 화백도 오셨더군요. 제가 앉은 줄 끝에 계셨는데, 파스텔이 스케치북 위를 지나가는 소리가 의외로 크게 났습니다. 그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좀 거슬릴 때도 있을 정도로말이죠. 아마 가야르의 귀에도 들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금호아트홀은 경비절감 차원에서 연주회 프로그램을 통합해서 찍기 시작했나봅니다. 1000원이라는 싼 가격에 팔길래 받아보니 3개월치 연주스케줄을 얇은 흑백 책자 한권에 모아서 내놓았습니다. 싸인을 받기에는 좀 허접한 외양이어서 고민하다가 여기 실린 그녀의 흑백 독사진에 하나, 갖고 있던 티켓 표면에 하나를 받았습니다.
2003년 금호아트홀 원전악기 시리즈의 다음 순서는 4월29일 (화요일) '판타즘 비올 콰르텟'의 연주입니다. 비욜과 바로크첼로 주자이자 저명한 바흐 학자이기도 한 로렌스 드레이퍼스가 이끄는 단체라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이현식.hyunsik@sbs.co.kr
당시 저는 이미 비스펠베이의 음반 신.구 녹음 두 종 모두 있던 때로, 선전문구 내용대로라면 음반이 좀 겹치겠다 싶어 수집욕을 누르고 사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지난번 셀린느 프리쉬의 골드베르그 변주곡 쳄발로 콘서트로 금호아트홀의 고음악시리즈에 좋은 인상을 갖고 있던 차에 가야르가 내한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겁니다.
금호아트홀에는 지난번 프리쉬의 콘서트때보다는 좀 적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쳄발로 실연 보기가 바로크첼로 원전악기 연주 보기보다 더 어려운 탓인지? 연주회 시간은 8시로, 저같은 직장인에게는 정말 고마웠습니다.
원래 제 표는 앞에서 12번째쯤 되는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곧 공연을 시작합니다.'라는 장내 안내멘트가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앞쪽 자리들은 텅 빈 채였습니다. 8시는 다 된 것 같은데 이 상태 대로라면 연주자가 마음의 상처를 받겠다 싶어 얼른 앞자리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그제서야 뒤에서 한꺼번에 지각한 청중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게 아닙니까. 제 좌 우에서 같은 처지의 '메뚜기'들이 쫓겨나갔는데, 운이 좋아 간발의 차이로 살아남게 됐습니다. 자리는 무대 정면 앞에서 둘째줄. 88년 이후 이렇게 앞에 앉아보기는 처음이라 기분이 들떴습니다.
선전문구의 탓일까? 그녀의 음반표지 사진, 그리고 음반속지에 든 얼굴사진으로 보건대는 양희은을 연상케 하는 풍채일 것이라고 짐작했었습니다. 무대 왼편 벽이 열리고 연주자가 나왔습니다. 생각보다 아주 호리호리하고 늘씬한 미인이었습니다. 어깨를 드러낸 드레스 차림의 가야르가 자리에 앉아 조율을 시작하는데, 저와의 거리는 약 4미터 정도밖에 안됐습니다. 활을 그으면 그에 닿은 줄이 떨리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습니다.
2장 낱장으로 구성된 가야르의 무반주 첼로모음곡 CD는 1번 2번 6번이 CD 1, 3번 4번 5번이 CD 2입니다. 이날의 프로그램은 1,3,5번이었습니다. 아무래도 1번과 3번이 훨씬 유명하다는 점이 감안된 것 같았습니다. 참고로, 왜 전곡을 안하냐고 생각할 분이 계실텐데, 하룻밤에 무반주첼로모음곡 6곡을 다 연주하는 것은 시간도 오래걸리거니와, 굉장한 체력을 요하는 일입니다. 덩치 크고 힘 좋은 비스펠베이도 4곡 반이 넘어가면서부터는 기운이 떨어지고 숨가빠 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이니, 여성연주자에게 그걸 바라는 것은 무리죠.
(* 비스펠베이 연주회 감상기 click )
이윽고 연주가 시작됐습니다. 처음부터 루바토(연주자 재량에 따라 템포를 밀고 당기며 조절하는 것)가 뚜렷하게 사용됐습니다. 같이 갔던 조용로님은 나중에 'XT컴퓨터에서 타자를 빨리 치면 글자가 한꺼번에 밀려 나오던 그 모습이 생각난다'고 비유를 하시더군요. 루바토는 3번처럼 무곡의 리듬감이 강한 곡에서는 절제되었지만 5번에서는 다시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가야르의 첼로 소리였습니다. 비스펠베이를 들을 때에 비해서 '바로크첼로'같은 느낌이 좀 덜했습니다. 어찌보면 현대첼로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그 이유중에 하나는 이것이 아닐까 합니다.
바로크 첼로는 원래 비브라토(지판을 짚은 손가락을 움직여 소리에 바이브레이션을 넣는 기법)를 쓰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대신 활 긋는 깊이와 힘을 조절해 소리의 농담과 색채를 바꾼다고 하지요. 그런데 가야르는 꽤 적극적으로 비브라토를 사용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예전에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악기와 현대악기를 모두 능숙하게 다루는 비스펠베이가 가끔 친구들에게 블라인드 테스트를 시킨답니다. 악기를 보여주지 않은 상태로 고악기와 현대악기를 연주하고는 어느 쪽이었는지 맞춰보란다는 것이죠. 우리가 음반 듣던 것을 생각하면 그게 뭐 어려우랴 싶지만, 이때 전공자들도 자주 틀린다는군요. 악기 자체뿐 아니라 주법이 음색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큰가봅니다.
연주의 전체적인 느낌은, 위에 인용한 음반사 선전문구와는 딴판이었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른바 '여성적'인 면이 두드러졌습니다. 다이내믹과 '거장성'을 추구하는 연주라기보다는 우아하고 오목조목 아기자기한 연주라는 느낌이었습니다.1번 3번같은 리듬감 강한 곡보다는 선율성이 강한 곡이 더 어울리겠다 싶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앵콜곡으로는 2번의 프렐류드를 들고 나왔습니다.
종이에 적어온 것을 보고 우리말로 직접 곡목소개를 하기도 했는데, 음색과 표현 등 모든 면에서 이날 연주 중 베스트중의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다시 소편성 연주장으로서의 금호아트홀을 칭찬하고 싶습니다. 가야르의 음량은 원전악기임을 감안해도 크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참고 : 바로크첼로는 사람을 안듯 연주자가 다리 사리에 끼우고 연주합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 바닥에는 닿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대첼로는 바닥에 '꽂아 눌러놓고' 연주합니다. 공명통이 몸에 덜 닿게 되고 힘 주기도 좋으니 현대첼로의 음량이 더 크게 되겠지요.) 만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었다면 뒷쪽에 앉은 분들은 음량이 작아 좀 답답해 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워낙 앞에 앉아 있었으므로, 집에서 오디오로 들을때 만큼이나 많은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첼로와 섹스하는 듯한 연주자의 숨소리, 지판 짚는 소리 등등.. 연주자와 저의 거리까지도 제 방의 청취 위치와 음상간 거리와 엇비슷해서 더욱 '오디오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날 연주회는 유명세가 좀 떨어지는만큼 아주 진지한 분위기였습니다. 핸드폰 소리의 공해가 한번도 없는 - 저로서는 이례적인 - 공연이었습니다. 6곡씩 3세트, 합해서 18개의 소곡이 연주되는 동안 '삑사리 박수'가 한번도 없었다는 점도 놀라운 일이구요. 자던 아이가 갑자기 깼는지 마지막 즈음에 아이 우는 소리가 좀 났던 것 외에는 청중의 분위기도 만족스러웠습니다. 음악수필과 스케치로 유명한 신동헌 화백도 오셨더군요. 제가 앉은 줄 끝에 계셨는데, 파스텔이 스케치북 위를 지나가는 소리가 의외로 크게 났습니다. 그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좀 거슬릴 때도 있을 정도로말이죠. 아마 가야르의 귀에도 들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금호아트홀은 경비절감 차원에서 연주회 프로그램을 통합해서 찍기 시작했나봅니다. 1000원이라는 싼 가격에 팔길래 받아보니 3개월치 연주스케줄을 얇은 흑백 책자 한권에 모아서 내놓았습니다. 싸인을 받기에는 좀 허접한 외양이어서 고민하다가 여기 실린 그녀의 흑백 독사진에 하나, 갖고 있던 티켓 표면에 하나를 받았습니다.
 오펠리 가야르 싸인.jpg)
2003년 금호아트홀 원전악기 시리즈의 다음 순서는 4월29일 (화요일) '판타즘 비올 콰르텟'의 연주입니다. 비욜과 바로크첼로 주자이자 저명한 바흐 학자이기도 한 로렌스 드레이퍼스가 이끄는 단체라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이현식.hyunsik@sb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