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피아노가 저곳에서 연주되고 있다고 해서 그 소리마저 저곳에 묶여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AIX 미디어 그룹과 AIX 레코드의 설립자이자 대표인 마크 월드렙의 생각이다. 그가 주목한 것은 청취자를 둘러싼 공간인데, 이를 채집하는 방법으로 선택한 방법은 ‘New Recording Made 96kHz/24bit - All Digital’이다. 모든 음원을 96kHz /24비트 의 디지털로 새로 녹음하며, 이후의 모든 작업도 디지털로 통일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얻게 되는 것이 음질과 해상도의 손실이 없는, 진정한 96kHz/24비트의 소리를 담아낸 DVD 오디오 음반인 것이다. 녹음 현장 여기저기에 배치된 오케스트라의 경우에는 단원들 사이에도 배치된 마이크가 일반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것 이상의 깨끗한 소리와 함께 자연적인 반사음까지도 훌륭하게 잡아낸다. ‘최고 수준의 녹음’이야말로 이들의 작업에 주어지는 단 하나의 목표인 것이다. 실제로 메리디언의 설립자이자 대표인 밥 스튜어트는 AIX 레코드의 "라틴 재즈 트리오"를 듣고는 근래 들어본 중 최고의 소리라고 평가했다는 일화가 있기도 했다. 메리디언이 DVD 오디오를 위한 MLP의 개발사이며, AIX 레코드와는 다른 각도에서 ‘All Digital(소스 기기에서 액티브 스피커까지를 디지털로 연결)’을 추구한 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밥 스튜어트의 평가는 비단 소리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그들이 선택한 노선에 대한 공감과 격려의 표현이었다고 해석할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녹음된 음원을 5.1채널로 분배하는 문제를 고민한 결과 얻게 된 것이 ‘오디언스 믹스’와 ‘스테이지 믹스’이다. 오디언스 믹스는 청취자에게 콘서트홀의 가장 이상적인 위치에서 듣는 것과 같은 경험을 주는데, 연주와 청취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매우 자연스럽게 재현된다. 일단 녹음된 음원에 대해서는 일체의 음향적/음질적 가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AIX 레코드의 방침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리어 채널에서 들려주는 잔향음은 차라리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에 반해 스테이지 믹스는 연주자들로 하여금 청취자를 둘러싸도록 소리를 재배치하고 있다. 이때 부각되는 것은 현장감보다는 거리감인데, 눈을 감으면 자신으로부터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연주자를 느낄 수 있다. 만약 실제로 물건을 던진다면 연주자를 맞출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런 식으로 형성된 가상의 공간이 각별한 재미를 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일단 이것이 엄격하게 제한된 공간이며 나를 둘러싼 장벽이라고 느껴지는 순간부터는 일종의 위압감마저 느껴져 숨이 막히기도 한다. AIX 레코드의 음반에는 이러한 오디언스 믹스와 스테이지 믹스가 모두 수록된다. 특히 커다란 주얼 케이스에 패키징된 음반들은 양면 복층 구조의 디스크로 제작되며, DVD 오디오 전용(붉은 라벨)인 면에는 MLP와 96kHz/24비트의 PCM 스테레오 트랙이 수록된다. DVD 비디오 호환(푸른 라벨)인 반대쪽 면에는 각기 다르게 믹싱된 DTS와 돌비 디지털 트랙 및 동영상, 그리고 각 음반에 어울리는 스페셜 피처가 수록된다. 공통적으로 수록되는 스페셜 피처로는 기기 설정에 관한 개괄적인 정보 및 DVD 포맷에 대한 질문/답변 형식의 문서, 그리고 자체적인 5.1채널 테스트 톤 등이 있다. 동영상의 화질은 그저 평범하며, 콘서트홀의 열띤 분위기 대신 녹음에 임하는 연주자들의 모습을 멀티앵글로 차분하게 감상할 수 있다. 이제 AIX레코드가 발표한 DVD 오디오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그 참맛을 느껴 보도록 하자.

베토벤 "전원교향곡", 레스피기 "로마의 소나무" 제넥 마칼(지휘), 뉴저지 심포니 오케스트라 AIX Records 80006	브람스 "피아노 5중주"(stage mix) 델로레스 스티븐스 (피아노) / 아이브즈 현악 4중주단 AIX Records 80005

클래식

브람스는 피아노곡과 관현악곡을 전혀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았는데, 그의 "피아노 5중주"에서는 이러한 생각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실내악답지 않게 큰 스케일을 보여주는 이 곡에서 아이브스 현악 4중주단은 기죽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으며, 피아노의 돌로레스 스티븐스는 오히려 여유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들은 곡의 표정이 급변하더라도 비장함이라는 끈은 단단히 부여잡고 있다. 이미 쇤베르크에 의해 오케스트라 연주용으로 편곡된 적도 있는 곡이긴 하지만, 이렇게 원곡을 틀어놓고 머리속으로 편곡해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한편 이 음반에는 매우 의미 있는 부록들이 수록되어 있다. 브람스의 사진이나 초상, 그리고 자필 악보 등은 그를 매우 가깝게 느끼도록 만들고 있으며, 발명왕 에디슨이 축음기로 녹음한 “내가 요하네스 브람스요!”라는 육성 한 마디는 오디오의?시초에서 최첨단까지(축음기에서 DVD 오디오까지를) 단번에 관통하고 있다.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과 레스피기의 "로마의 소나무"에는 일부 DVD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음성 해설이 수록되어 있다. "전원 교향곡"에서는 레오나드 번스타인의 딸인 제이미 번스타인이, "로마의 소나무"에서는 이 곡을 연주한 지휘자 제넥 마칼이 해설을 들려준다. 먼저 제이미 번스타인은 악보와 곡의 내용을 위주로 자상하고 유쾌한 해설을 들려주는데, 꼼꼼한 설명에 곁들인 난무하는 감탄사와 흥얼거림은 뉴저지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섬세한, 그러나 포인트를 놓치지 않는 연주와 어울려 기분 좋은 상승효과를 낳는다. 한편 제넥 마칼의 해설은 단원들의 연주까지도 짚어주고 있는데, 지휘자로부터 직접 해설을 듣는다는 것은 DVD라는 매체가 아니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상기해볼 때 매우 의미 있는 시도라 하겠다. 이 음반은 2002년 12월 처음 열린 서라운드 뮤직 어워드의 베스트 믹스-오케스트라 분야에 노미네이트된 앨범이기도 하다.

루마니아의 제오르제 에네스쿠 필하모닉 오케스트라(크리스티앙 만딜 지휘)가 연주한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모음곡", 모차르트의 "교향곡 26번 & 41번 주피터",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3번 & 5번/G 선상의 아리아"와 제오르제 에네스쿠 목관 5중주단이 연주한 스카를라티의 "여섯 소나타" 등 4장의 음반은 동영상 없이 단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음반의 오디언스 믹스는 홀 전체에 울려 퍼지는 잔향음을 매우 훌륭하게 전달하고 있어서, 그 현장감과 공간감은 다른 음반들과도 구분될 정도로 훌륭하다. 한편 이 루마니아의 연주자들은 비록 완숙함은 덜할지언정 능글맞지 않은 연주를 들려준다. 특히 "교향곡 26번 & 41번 ‘주피터’"에서는 전체적으로 넘치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으며, 모차르트 특유의 재기 발랄함과 장중함 역시 잘 표현되고 있다. "불새"에서는 눈앞을 어지럽게 날고 있는 앙증맞은, 그러나 섣불리 손댈 수 없는 불새의 모습을 정교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G 선상의 아리아"에서는 다소 경직된 듯한 연주가 음악에 몰두하기 힘들게 한다. 간혹 들리는 오보에의 키 누르는 소리가 오히려 매력적인 "6개의 소나타"에서는 다섯 멤버들의 조화로운 호흡이 돋보인다.

모차르트 "교향곡 26번 & 41번 주피터" AIX Records 1337 AX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3번&5번 G선상의 아리아" AIX Records 1338 AX	스카를라티 "6개의 소나타", 배토벤 "목관 5중주 Op. 71" AIX records 1341 AX	스트라빈스키 "불새 모음곡" (1919) 라벨"볼레로" AIX Records 1339 AX

재즈 & 보컬

오스카 피터슨과 동격의 테크니션으로 인정받아온 재즈 피아니스트 폴 스미스의 "폴 스미스 트리오"가 갖는 정서는 한마디로 편안함이다. 때론 멤버들과 건반을, 때론 그저 앞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폴 스미스의 눈빛에선 음악과 인생에 대한 애정이 따뜻하게 배어나고 있으며, 베이스와 드럼은 여기에 자연스럽게 동화되고 있다. 엘라 피츠제랄드와 무려 11년간이나 함께 일했고 그녀의 라이브 앨범 에서도 함께 무대에 섰던 그가 연주하는 ‘Lullaby of Birdland’(엘라가 즐겨 불렀던)에서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즐거웠던 기억이 교차하기도 한다. 빌 에반스의 의 타이틀곡인 ‘On green dolphin street’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유명한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또다른 뮤지컬 "오클라호마!"의 삽입곡 ‘Surrey with the fringe on top’에 이르기까지 폴 스미스 트리오는 멤버 각자의 경력에 걸맞은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데이빗 가필드의 모던한 피아노와 데이빗 카펜터의 절제된 베이스에 루이스 콘테의 화려한 퍼커션이 어우러지는 "라틴 재즈 트리오"는 ‘라틴’이라는 간판을 내건 여타 사이비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전체적으로는 스탠다드 재즈의 명반이자 자코 페스트리우스의 유작이기도 한, 브라이언 멜빈 트리오의 "스탠다드 존"을 계승하는 연주를 들려준다. 그러나 루이스 콘테의 퍼커션은 시종일관 라틴의 정서를 느끼게 해주며, ‘Song for my father’나 ‘Rumba del Cielo’와 같은 곡에 이르러서는 전 멤버가 똘똘 뭉쳐 라틴 재즈란 이런 것임을 선언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동영상에서는 루이스 콘테가 자신을 둘러싼 각종 퍼커션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볼 수 있는데, 콩가와 팀발레스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며 하이햇을 맨손으로 두드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유명 뮤지션들이 그를 찾는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한때 DVD 매니아들 사이에서 레퍼런스로 통했던 산타나의 "슈퍼내추럴"을 유심히 보면 콧수염을 기르고 콩가를 두드리는 루이스 콘테를 발견할 수 있다.

폴 스미스 트리오 AIX Records 80010	루이스 콘테, 데이빗 가필드, 데이빗 카펜터 (라틴 재즈 트리오) AIX Records 80005

"피아노, 드럼 & 베이스"에서 패트리스 루센의 피아노는 매우 다양한 개성을 표출한다. 시작할 때는 과감하고 선이 굵은 연주를 들려주더니 어떤 곡에서는 주체하기 힘든 격정을, 그리고 잠시 뒤에는 살며시 속눈썹을 적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데뷔해 그동안 쌓아온 경륜은 그녀가 이성을 잃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곡의 감정에 따라 각 파트가 호흡을 맞추는 방식이 상당히 호전적이라는 점이다. 이렇다보니 이 음반에는 전체적으로 활력이라고 부르기는 어색한, 일종의 호기 비슷한 것이 흐르고 있다. 이 음반을 플레이어에 걸 때에는 이들 세 사람과 한꺼번에 맞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앞서 소개한 2장의 음반을 포함해 3장의 앨범들이 모두 재즈의 스탠다드를 연주하고 있지만 각각의 개성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 또한 재미있다.

제피어의 "자유의 목소리"를 플레이어에 걸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남성의 굵은 목소리가 여성의 여린 목소리보다 윤기 있고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이다. 만약 이 음반을 일반 CD로 들었다면 어떠했을까를 생각해본다면 "자유의 목소리"는 뉴 미디어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라고 말할 수 있다. 16세기의 프로그램 샹송(4번 트랙)에서부터 20세기의 퀸(22번 트랙)에 이르기까지, 4백년이라는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와진 남녀 12명의 목소리는 인간의 음성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악기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변화무쌍한 감정의 기복 속에서도 중용을 지키고 있어서, 무거운 노래라도 부담스럽지 않으며 가벼운 노래라도 경박스럽지 않은 매력을 지니고 있다. 콘서트에서는 굳이 무반주를 고집하지 않으며 자신들이 무대 위에서 부를 노래를 인터넷을 통해 공모하기도 하는 제피어의 음악은 확실히 젊고 충분히 아름다우며, 질리지 않고 즐길 만하다.

패트리스 루센, 다렉 올레스키에비츠, 느두구 첸클레어 "피아노, 베이스 & 드럼스" AIX Records 80009	루이스 콘테, 데이빗 가필드, 데이빗 카펜터 (라틴 재즈 트리오) AIX Records 80005

음악의 장르나 연주자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기호가 선택의 기준이 되겠지만, 음질과 구성만을 놓고 본다면 AIX 레코드의 음반은 확실히 구매가치가 있다. 처음부터 DVD 오디오를 목적으로 이루어진 녹음과 그 결과물, 그리고 DVD라는 매체의 특징을 잘 살린 구성은 역시 한 걸음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신순홍

본 리뷰는 "Stereophile & Home Theater" 제3호(2003년 3월호)에 게제된 기사입니다. "Stereophile & Home Theater"의 정기구독을 원하시면 여기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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