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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는 마이클 틸슨 토마스의 말러 사이클 녹음 계획을 발표했다. 그들의 보도 자료에 따르면, 다섯 시즌에 걸쳐 연주할 9개의 교향곡과 미완성 10번의 아다지에토 악장의 실황을 자체 제작 레이블로 선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프로젝트의 첫 결실인 1번과 6번, 두 가지 앨범이 발매되었는데, 주목할 사실은 CD 이후 시대의 대안으로 떠오른 SACD를 미디어로 채택했다는 점이다. 하이브리드 형인 두 신보는, 일반 CD의 PCM 음원, DSD의 스테레오과 멀티채널 등 SACD가 구현할 수 있는 세 가지 사운드를 모두 지원한다.

마이클 틸슨 토마스의 말러 시리즈는 몇 가지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우선 메이저 음반사의 투자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시점에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가 독자적으로 레코딩 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미 정착단계에 들어선 런던 심포니의 ‘LSO Live’, 뉴욕 필하모닉의 스페셜 에디션 시리즈도 비슷한 기획이다. 하지만 SACD를 채용하고 본격적인 ‘풀 프라이스’ 마케팅을 펼친다는 점에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틸슨 토마스의 말러는 앞으로 주요 악단의 자체 음반 제작에 확고한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와 연관지어, RCA의 구조조정으로 더 이상들을 수 없을 것 같았던 'MTT 사운드'(마이클 틸슨 토마스의 이름 약자에서 따온, 지휘자의 스타일을 지칭하는 용어)를 다시 맛볼 수 있다는 점은 팬들에게 매우 반가운 일이다. 지휘자의 젊은 감각이 말러와 훌륭하게 매치한다는 점을 런던 심포니와의 3번과 7번을 들은 애호가라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쌍둥이 빌딩 테러’ 다음날이 2001년 9월 12일부터 사흘간 연주된 6번은 ‘비극적’이라는 곡의 부제가 미국인들의 충격과 오버랩되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었다. 하지만 음반에 담긴 틸슨 토마스의 시각은 비극의 무게를 강조하지 않는다. 1악장 도입구부터 상쾌한 발걸음으로 시작한 지휘자는 시종 무겁거나 처지는 템포를 배제했다. 루바토는 있지만 기억에 날 정도로 인위적인 부분은 없다. 전체적인 다이내믹과 템포의 운용은 그가 런던 심포니와 녹음했던 3번과 7번의 연주를 떠올리면 아마 틀림없을 것이다. 런던의 연주자들에 비해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주자들의 테크닉은 크게 뒤지지 않는다.

특히 1악장 서두의 첼로의 앙칼진 앙상블과 3악장에서 포근하게 퍼지는 호른의 주제 악구는 선명한 녹음의 서포트를 받아 초일류의 청감을 빚는다. 바이올린 군은 명확한 트레몰로 합주를 구사하며 트럼펫과 트럼본 등 관악기 군은 날카롭지 않은 사운드로 귀를 편안하게 한다. 틸슨 토마스의 해석은 잘 정돈된 텍스트, 일사불란한 합주, 명료한 울림 등 미국 오케스트라의 기능적인 특질이 두드러지게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비극적'이라는 타이틀에 집중하여 작곡가의 감정을 과장하지 않은 스타일은 미국적이라기보다는 기존 말러 음반에 비추어 볼 때 지휘자의 고유의 말러관에서 비롯한 듯하다.

1악장에서는 전투적인 행진곡보다는 카우벨이 울리는 평온한 장면이, 2악장에서는 장난스럽고 사랑스런 트리오의 무곡이 더 주의를 끈다. 3악장에서 과도하게 탐미적이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든다. 4악장은 악곡 내내 철저하게 투쟁하지만 그 종결은 라 그랑주가 말한 패배의 씁쓸함보다 긍정적인 체념에 가깝게 느껴진다. 표제를 말러 자신이 직접 붙인 것이라고 했을 때 틸슨 토마스의 6번은 번스타인(Sony)이나 카라얀(DG)처럼 작곡가의 상념을 깊이 있게 탐구하지 못했다고 비난받을 수 있다. 그러나 몇 가지로 요약하기 어렵고 정답도 없는 말러의 해석에 생기있고 명료한 6번이 하나 추가되는 것을 거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뒤이어 나온 1번은 틸슨 토마스의 기질에 좀 더 어울리는 악곡으로 연주 역시 6번보다 호감을 준다. 음반은 1악장 도입부부터 듣는 이를 사로잡는다. 현악의 안정된 페달 포인트 위로 울리는 목관과 무대 뒤 팡파르는 자연을 깨우는 소리에 걸맞게 섬세하고 정묘하기 이를 데 없다. ‘젊은이의 노래’ 주제에 의한 1테마는 2악장의 렌틀러가 얼마나 흥겨운 리듬을 안겨줄지를 예고하는 듯 씩씩하면서도 쾌적하다. 3악장은 ‘Frere Jacques’의 캐논과 헝가리 풍의 에피소드, ‘푸른 눈동자’의 주제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어지며 악곡이 지닌 아이러니 또한 잘 부각되었다. 4악장은 누구나 기대할 만한 다이내믹의 결정체이다. 정교한 앙상블과 탁월한 관악기의 울림이 폭풍우 같은 악장의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 코다에서 템포를 크게 떨어뜨린 것은 그 전까지 틸슨 토마스가 보여주었던 인템포 해석과 다소 이질감이 있다. 하지만 그만큼 감격적인 피날레라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다.

하이브리드 음반을 CD로 듣는가, SACD로 듣는가는, 최소한 말러와 같은 작곡가에 있어서는 감상에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악기의 선명도나 울림의 깊이, 합주의 집중력과 다이내믹 레인지의 폭 모두에서 SACD의 사운드는 말러가 피아노가 아닌 오케스트라 지휘대 위에서 음악을 쓴 작곡가란 사실을 상기시킨다. 특히 1번 1악장 도입부나 6번의 4악장 타악기 소리에서 라이브의 독특한 현장감을 놓치지 않았다. 멀티채널의 경우 녹음이 처음부터 SACD를 염두에 두고 이뤄진 만큼 훌륭한 정위감을 느끼게 한다. 음량이 뒤쪽에 넉넉히 배분되어 있기 때문에 리어 스피커의 위치를 사이드 쪽에 둔다면 더 좋은 효과를 볼 것이다. 초기에 찍은 6번은 4악장에 몇 초간 음이 누락되어 큰 문제가 되었는데, 이후 대대적인 리콜 작업을 했기 때문에 우리 나라 시장에는 정상적인 음반이 유통되리라 믿고 또 필자의 리뷰용 음반도 이상이 없다.

틸슨 토마스의 말러 시리즈는 이번 달 3번의 출시로 초반 레이스를 마쳤다. 일부 언론은 이 작업에 대해 '미국 서부에서 처음 태어나는 말러 사이클'이라고 의의를 둔다. 그렇지만 처음 발매된 6번과 1번의 성과로 볼 때 전집이 완성된다면 지역을 한정짓지 않은 평가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새로운 말러 컬렉션을 준비하는 독자에게 적극 추천한다.

이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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