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layer]-1. 자끄 루씨에
피아노, 재즈, 그리고 바흐 - 자끄 루씨에
클래식 음악가인지, 재즈 음악가인지, 대중 음악가인지 딱히 어떤 분류로 정의할 수 없는 그런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의 음악언어는 혼합된 언어이거나, 아니면 기존의 음악언어를 바탕으로 했지만, 새로운 언어에 가까운 경우이다. 아마도
자크 루씨에는 새로운 언어를 창조해낸 경우에 좀더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루씨에의 음악언어는 새로우면서도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1959년에 그가 ‘Play Bach'를 처음으로 선보였을
때에 음악애호가들은 그의 언어를 전혀 낯설게 여기지 않았다.
이는 ’Play Bach' 앨범이 6백만 장이 넘게 팔린 것으로도 증명될 수 있다.
바흐의 언어를 재즈의 언어로 차용한 경우는 역사적으로도 많다. 1920년대와 30년대에 할렘의 재즈 음악가들은 클래식 작곡가들의
작품들을 소재로 삼았다.
패츠 월러, 제임스 존슨 등이 바흐나 베토벤에게 신세를 진 것 등이 그 예이다. 그들은 헨델이나 바흐의 칸타타 등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바흐는 모든 음악의 샘이라는 말은 재즈 음악가들에게도 통했다. 아마도 가장 두드러지는 이유는 그 자신이 즉흥 연주의 대가였던
바흐의 음악에 담긴 음악성, 그리고 스윙에 적합한 음악적 구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이유 이외에도 자유로우면서도 깊은 감정을 표현하는 재즈 음악가들에게 바흐는 여느 다른 작곡가들과는 다른
감정의 깊이와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바흐는 인간의 가장 깊은 슬픔과 내면의 환희를 단지 몇 개의 음의 진행으로도 표현할 수 있었다.
음의 하강과 상승, 그리고 해결되지 않고 진행되는 불협화음 속에는 인간의 생사고락이 담겨 있다.
아마 바흐의 이러한 인간적인 면모가 없었다면 재즈 음악가들이 바흐에게서 영감을 받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쾌적한 바흐, 독창적 모더니티
자크
루씨에는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파리 음악원에서 클래식을 전공했다. 그는 바흐를 연주할 때에 악보대로 연주할 부분과 재즈적인
변형을 가할 부분, 즉흥연주를 할 부분 등을 세심하게 나누고 연구했다.
우선 그의 음악은 듣기에 너무나 즐겁다. 그의 연주는 배를 타고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 하면서 바다를 가르고 나아갈 때와 같은
쾌적함이 있다.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서 쓰이면서 새삼 알려진 'G선 상의 아리아‘의 자크 루씨에의 연주는 그 멋스러움에 있어, 클래식
애호가의 입장에서 듣더라도 작품의 본래의 정서를 고스란히 살리는 한편, 독창적인 모더니티를 부여하고 있다.
또한 마치 한 영혼의 그림자가 불빛에 비친 그림자처럼 너울거리는 그 흔들림을 우리는 자크 루씨에의 연주에서 볼 수 있다.
아마도 자크 루씨
에의
바흐는 그 자체로 하나의 고전으로 남을 만하다.
오는 2005년 1월 23일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자크 루씨에 트리오는 그동안의 음악세계를 총결산하는 콘서트를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이들은 이날 비발디의 사계 가운데 봄, 사티의 짐노페디, 베토벤의 교향곡 7번 알레그레토 악장,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브란덴 부르크 협주곡 5번 등을 연주할 예정이다.
필자 김동준은 재불 음악평론가입니다. - 하이파이클럽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