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디지털의 맹점

디지털 파일 음원 재생이라는 화두가 처음 대두되었을 당시 우리는 아무도 현재 같은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단지 CD를 재생하는 패턴을 바꾸어 푸바2000이나 J-River 로 재생하는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트리밍 방식은 계속해서 진화했고 네트워크 스트리밍, 뮤직 서버의 세계로 발 빠르게 진입했다. 디지털은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 아날로그처럼 잡음 속에서도 선명하게 음악신호가 보존되지 않는다. 노이즈가 음악신호를 잡아먹어버리며 비슷한 음파들이 노이즈에 잠겨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음원 스트리밍은 대세도 따를 수밖에 없다. 수천, 수만곡을 자유롭게 스트리밍으로 즐길 수 있는 상황에서 CD만 고집할 수 없다. 그러나 이 편리함은 여러 음질적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단지 저렴한 네트워크 플레이어 하나로 음질적 만족을 얻을 수 있다면 되레 다행이다. 왜냐하면 이 험난한 고음질 재생의 길은 많은 돈과 시간 그리고 지식을 필요로 하니까. 지속적인 디지털의 맹점이 발견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까다로운 오디오파일 앞에 나타난 웨이버사 시스템즈는 커다란 위로를 건네고 있다.

패밀리 라인업의 완성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WDAC3MKII는 처음부터 나의 마음에 쏙 들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웨이버사 시스템즈는 계속해서 진화하며 펌웨어 업데이트를 이어갔다. 한번 사용해보고 더 이상 발전가능성을 보이지 않는 디지털 기기와 태생부터 달랐고 그 종착점이 어딘지 아직도 모른다. 가장 큰 음질적 진화는 WCORE라는 룬 전용 코어와 합체되었을 때다. 미세 다이내믹스는 물론이며 전체적인 토널 밸런스, 디테일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드라마틱한 상승이 있었다.

현재까지 WDAC3MKII 는 WCORE 와 스마트허브 그리고 WNAS3, WStreamer와 합체하며 일군의 패밀리로 발전했다. 뿐만 아니다. 기존에 룬(ROON)의 RAAT 프로토콜을 사용했던 상황에서 웨이버사 시스템즈는 WNDR이라는 통신 규격을 개발해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RAAT 도 뛰어난 음질과 인터페이스를 가지지만 WNDR이라는 통신규격은 룬의 인터페이스는 그대로 활용하되 또 한 번의 음질적 개가를 이루었다. 이제 WDAC3MKII라는 DAC는 모델명만 동일할 뿐 다른 생명체로 진화중이다.

토탈 솔루션 - W라우터

여기서 끝났을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하나 더 남았다. 바로 라우터다. 사실 라우터까지 신경 쓰게 되면 거의 네트워크 스트리밍의 끝까지 달려왔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라우터는 네트워크 스트리밍의 캐스팅보트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스트리밍 기기를 많이 접하다보면 라우터로 인한 노이즈 싸움에 한번쯤은 마주치게 된다. 고가의 스트리밍 기기를 운용하면서도 정작 네트워크 통신의 출발점인 라우터에 대해선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네트워크 스트리밍의 사각지대, 그 곳에 라우터가 있다.

W라우터는 웨이버사 시스템즈에서 결국은 출시했어야할 기기다. 아마도 예전부터 개발 로드맵에 위치해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드디어 출시되어 테스트에 들어갔다. 그런데 제품 컨셉과 기능에 놀라고 말았다. W 라우터는 단순한 라우터가 아니다. 아니, 제품명 자체를 바꾸어야할 정도로 여러 기능이 통합되어 있다.

W라우터는 우선 첫 번째로 유무선 라우터 기능이 주요 기능으로 기가비트를 지원한다. 후면 포트를 보면 WAN 한 개 포트, LAN 세 개 포트 그리고 오디오 전용 LAN 포트를 총 네 개 마련해놓고 있다. 총 8개 포트. 내부엔 무선 랜카드를 내장하고 착탈식 안테나를 지원하고 있는 모습이다. 오디오 및 비디오 관련 모든 기기들을 연결해 간단히 세팅, 훨씬 더 쾌적한 네트워크 환경을 구축할 수 있게 해준다.

W라우터는 라우터면서 동시에 네트워크 스트리밍 기능을 갖는다. 기존에 W코어를 사용했던 유저라면 W스트리머를 기억할지도 모른다. W코어를 사용하고 싶으나 적당한 룬 대응 네트워크 스트리머를 찾을 수 없거나 또는 기존에 사용중인 USB DAC와 연결할 수 있는 솔루션이 바로 W스트리머였다. 그러나 W라우터에 이 기능이 들어가면서 W스트리머 없이도 여타 USB DAC 사용자에게 웨이버사 시스템즈의 기술과 인터페이스, 음질적 장점을 일부 즐길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더불어 W라우터는 WAP, 즉 웨이버사 오디오 프로세서를 전격 탑재했다. 만일 기존에 웨이버사 제품을 사용 중이라면 WAP 레벨에 따른 음질적 상승효과를 경험했을 것이다. 저충실도 음원도 WAP를 거칠 경우 훨씬 더 자연스럽고 아날로직한 음질을 얻을 수 있다. 원본 마스터에 가깝게 추적, 보정하는 WAP 레벨은 WAP가 적용된 웨이버사 제품을 함께 사용할 경우 누적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결론적으로 W라우터는 ROON, WNDR, DLNA, Airplay 등 모든 네트워크 스트리밍 프로토콜에 대응하는 스트리머이며 라우터로 기능한다. W라우터는 단순한 라우터가 아니다. 지금까지 네트워크 스트리밍에서 사각지대에 있었던 라우터의 혁신이며 웨이버사 시스템즈 및 여타 메이커 제품까지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토탈 솔루션이다.

W라우터의 하드웨어 섹션은 W코어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기본적으로 전원 노이즈 차단을 위해 통절삭 두랄루민 섀시를 채용했으며 각 회로를 격벽으로 구분해 간섭을 피하고 있다. 더불어 물리적 진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판을 플로팅시키는 등 전기적, 기구적으로 이상적인 형태로 디자인했다. 전원부는 리니저 전원부를 기반으로 오디오 전용 포트는 가장 뛰어난 품질의 배터리 전원부를 구성하는 등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 외에도 고정밀 클럭을 사용하고 랜 포트에도 별도의 아이솔레이션을 적용해 음질적 해악이 될 수 있는 원인을 최소화한 모습이다.

리스팅 테스트 1> W라우터로써의 성능

테스트는 B&W 802D3 스피커를 중심으로 웨이버사 시스템즈 W프리앰프와 W모노블럭 파워앰프 그리고 소스기기로는 WNAS3, WDAC3MKII 그리고 W코어를 활용했다. W라우터 성능 테스트는 보편적인 IPTIME 공유기와 비교를 통해 이루어졌다. 평소 테스트 용도로 자주 사용하는 레퍼런스 레코딩을 반복적으로 들어보며 그 차이점을 살폈다.

Woong San - I love you

I love you

우선 보편적인 라우터와 기능은 물론 하드웨어 특성 자체가 다르다. 전원부 품질 및 전원 관련 노이즈, 차폐와 관련된 점이 음질적으로 그대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 웅산의 ‘I love you’(24/176.4, flac)같은 곡에서 웅산의 보컬은 심지가 곧고 밀도가 높아진다. 보컬 음상은 더 내려와 차분해지면 들뜨는 듯한 느낌이 사라진다. 약간 펑퍼짐하게 퍼져있던 음상이 또렷하게 당겨지면서 포커싱이 명확해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Arne Domnerus - Somtimes I feel like a motherless child

A Blues

배음 부분에서도 변화는 상당히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는 웬만한 케이블 비교보다도 더 쉽게 다가온다. 예를 들어 아르네 돔네러스의 ‘Sometimes I feel like a motherless child’(16/44.1, flac)같은 곡은 좋은 비교 결과를 이끌어낸다. 관악기의 복잡다단한 하모닉스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 일단 고역에서 중역 사이 주파수 구간에서 정보량이 매우 상승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풍부한 배음의 디테일이 살아나면서 악기의 세부적인 표현이 더 잘 드러나는 모습이다.

HRX Sampler - Crown Imperial(Finale)

HRX Sampler 2011

또 하나 흥미로운 부분은 저역 해상도와 다이내믹스 변화다. 예를 들어 레퍼런스 레코딩스의 HRX 샘플러 중 ‘Crown Imperial(Finale)’(24/176.4, flac)같은 곡에서 뚜렷하게 증명된다. 우선 저역을 두드리는 타악은 매우 빠르고 급격하게 떨어진다. 약간 탁하게 비추던 저역 바닥이 W라우터로 변경한 뒤엔 대단히 맑아졌다. 전반적으로 선명한 시야를 확보해주며 더불어 각 악기의 강/약 구분이 더 높아져 기존 라우터에서는 상당히 밋밋하게 재생되었음을 반증해준다.

리스팅 테스트 2> 네트워크 스트리머로써의 성능

W라우터에 내장된 네트워크 스트리머는 거의 W스트리머의 그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과 같다. WDAC3 등 네트워크 스트리밍 기능을 갖춘 DAC는 물론이며 현재 보유중인 USB DAC를 모두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물론 W코어와 세트로 사용했을 때 그 성능이 극대화되는 것이 사실이다. 더불어 W라우터의 스트리머 기능까지 활용한다면 하나의 혜택이 더 주어진다. 바로 WAP 3단계를 추가 적용할 수 있다는 것.

Rebecca Pidgeon - Auld Lang Syne (24/96, flac)

Retrospective

동일한 환경에서 W라우터의 USB출력을 통해 WDAC3MKII 의 USB입력단과 연동시켜 그 성능을 살펴보았다. 일단 사용 편의성은 상당히 간단하고 편리한 편이지만 음질 성향은 조금 변동한다. 예를 들어 레베카 피존의 ‘Auld Lang Syne’(24/96, flac)을 들어보면 미립자가 느껴질 만큼 해상도 높고 에지 있는 사운드로 표현된다. 무게 중심은 여전히 낮고 뚜렷하며 두 대를 뒤로 살짝 물러가 원근이 깊게 형성된다. 전체적으로 고해상도에 윤곽이 뚜렷하고 타이트한 소리다.

Empire Brass Quintet - Sibley Sanctus (16/44.1, flac)

Stereophile Test CD3

스테레오파일 샘플러 중 엠파이어 브라스 퀸텟의 ‘Sibley sanctus’(16/44.1, flac)에서는 아주 여린 음들이 번개처럼 빠르게 찍히며 전진한다. 소리의 어택이 빠르고 간결하며 에너지의 강/약 세기 표현이 명료하게 구분되어 들린다. 이 외에 ‘Crown Imperial’(24/176.4, flac)같은 곡은 다이내믹하면서도 스테이지를 넓고 깊게 표현해준다. 웨이버사 제품과 함께 모두 WNDR통신을 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일반 USB DAC와 사용해도 충분히 쓸만한 스트리머로 활약할 수 있을 듯하다.

총평

네트워크 스트리밍의 시대로 진입한 오디오파일은 여러 난제 속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세계로 음질적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 이젠 단순히 디지털, 아나로그 섹터가 아니라 IT 제품까지 신경써야하는 시대가 왔다. 그 중 가장 커다란 걸림돌이 라우터가 아니었나 한다. 시중에 출시되어 있는 것 중 아무리 비싼 제품을 사용하더라도 일반 데이터가 아닌 음악을 다루는데 최적화된 라우터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접지를 해보기도 하고 차폐를 해보기도 하지만 원천적인 대책이 세워지지 않는 한 넘어설 수 없는 벽에 가로막히곤 했다.

오디오를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디지털, IT 기술에 뛰어난 제조사는 해외에서도 흔치 않다. 웨이버사 시스템즈가 만든 라우터는 오디오파일이 원하는 음질 우선주의에 정확히 부합한 제품이다. 게다가 라우터 기능은 물론 네트워크 스트리밍 기능까지 더해진 W라우터는 현재 최선의 선택지다. 최근 몇 년간 디지털 스트리밍 분야에서 오디오파일을 울리고 웃겼던 웨이버사 시스템즈는 결국 사각지대까지 점령하고 나섰다. 첨언하자면, 분명 라우터에 기백만원을 투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조차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기능과 성능을 감안할 때 W라우터는 바겐세일에 가깝다. 강력히 추천한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