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 新명반! 라흐마니노프 피협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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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터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은 이미 DG에서 나왔던 것과는 다른 음원입니다. DG것은 비슬로츠키 지휘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협연의 59년 연주입니다. (The originals CD의 경우63년 카라얀 지휘 빈 심포니와 협연한 차이코프스키 피협과 같이 수록)
이번 예당 음반의 라흐피협2번 협연은 59년 2월18일 쿠르트 잔데를링 지휘의 레닌그라드 필과의 연주입니다.
* 또한명의 주인공, 쿠르트 잔더를링
소련정권의 관리 아래 동구권에서만 연주를 가졌던 리히터가 서방무대에 진출한 것은 1960년의 핀란드 공연이 시작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자못 극적인 시기의 리히터 연주를 듣고 있는 셈입니다. 협연을 이끈 쿠르트 잔더를링(Kurt Sanderling)은 구동독 최고 명성의 지휘자입니다. 1912년 9월12일 동프로이센 아리스에서 태어나 베를린에서 음악교육을 받았고 20세때인 1932년 베를린 시립가극장 부지휘자로 발탁됐습니다. 그러나 유대계인 그는 35년 나치하 독일을 떠나 소련에 입국, 지휘자로서 꽃을 피우게 됩니다. 나치정권하 베를린에서 이산가족이 되어 런던에 망명했던 그의 어머니는 54년에 소련 방송을 통해 나오는 공연 방송을 듣고 아들의 건재를 알게 되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그는 60년 동독에 돌아와 그를 위해 그해 재편성된 동베를린 시립 베를린심포니의 수석지휘자로 취임, 장기간 베를린심포니를 이끌고 육성했고 64-67년에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수석지휘자도 겸하여 많은 지휘활동을 했습니다. 쇼스타코비치나 브람스 교향곡 연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브람스 교향곡은 요즘 수입돼 팔리는 신반과 구반이 있는데, 구반이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대신 평가는 더 높습니다.) 쿠르트 잔더를링 1.jpg)
이 두 사람이 빚어낸 라흐피협2번은 시작부터 묵직하고 진중합니다. '피아노,몸으로 울었다'라고 영화제목처럼 말해야 할만큼 리히터의 터치는 울림이 크고 깊습니다. 현악군은 곱지만은 않은 질감에 강렬한 인상입니다.
므라빈스키 레닌그라드필의 연주에서 받을 수 있는 그런 느낌과 유사한데, 잔더를링이 42년부터 이 연주를 지휘했던 59년까지 레닌그라드 필의 제2 지휘자로서 므라빈스키를 보좌했던 것과 무관치 않은듯 싶습니다.
잔더를링의 지휘에서 제가 제일 인상깊었던 부분은 2악장의 노랫결입니다. 에릭칼멘의 팝송 'All by myself'의 원곡으로도 잘 알려진 아름다운 멜로디를 넉넉하고도 진한 비브라토에 실어 애수띤 가락으로 뽑아내는 그 솜씨가 일품입니다.
3악장에 이르면 다소 과장섞인, 그러나 그때문에 오히려 더 러시아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연주가 이어집니다. 3악장 코다 부분에 진입하면 오케스트라가 '솔라 솔라 솔라 솔~!'하고 노래한 뒤 피아노가 상승스케일을 치고 나옵니다. 그런 끝에 바위를 덮치는 거대한 파도처럼 '촹-!'하고 부서지는 음향을 냅니다.
이 부분의 스케일과 박력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마지막에 흥분을 폭발시키며 쿵 쿠구궁! 하고 장중하게 마무리할때의 무게감도 압권입니다.
* DG반과 비교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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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로츠키/바르샤바필과의 협연인 DG반을 이번 예당반과 비교하자면, 녹음의 퀄리티는 DG것이 훨씬 낫습니다 ('낳습니다'가 아닙니다!). 예당것은 소스 자체가 음반화를 전제로 하지 않은 것인듯, 50년대 실황녹음치고도 그다지 상태가 좋은 편이 못됩니다.
DG것에 비해서 음색이 좀 거친 편이고 약간 부기가 덜 빠진 듯한 느낌이 나며, 스테이지도 좁습니다. 예당은 이번 시리즈를 내면서 96khz/24bit Neural Audio processing에 골드 CD라고 선전을 합니다만, 원래 마스터의 상태 자체가 안좋아서 그런진 몰라도 전반적으로 녹음은 그리 뛰어난 편이 못됩니다.
그러나 연주 내용으로는 예당것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리히터의 연주는 거의 같은 시기의 것으로서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데, 아무래도 비슬로츠키보다는 잔더를링쪽의 오케스트라가 훨씬 힘과 깊이가 있으며, 스케일도 큽니다.
3악장의 경우가 특히 차이가 납니다. 비슬로츠키는 다소 빠른 템포로 밀어부치지만 무겁게 꾹꾹 눌러가면서 넓게 펼치는 잔더를링보다 좀 가벼운 티가 납니다. 잔더를링-리히터의 예당 음반은 녹음의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별 다섯개짜리(★★★★★)의 명연주입니다.
라흐피협2번과 관련해서는 별처럼 많은 좋은 연주들이 있습니다만, 제가 들어본 것들을 소개하자면 우선 예브게니 키신(p)과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협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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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기예프는 본란에서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6번 교향곡에 제가 극찬을 한 바 있는 므라빈스키의 후예죠.
게르기예프는 가끔 지나치게 인위적인 연출을 시도한다는 느낌이 들때가 있는데 (이를테면 베르디 레퀴엠 같은 경우) 이 연주는 아주 자연스럽고 유려하다는 것을 오히려 특징으로 들어야겠습니다. 무게감, 센티멘탈, 템포 루바토의 활용 등이 아주 적절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다만 리히터 음반에 비하자면 3악장 피날레 부분에서 피아노 음량이 오케스트라에 약간 묻히는 듯 하고 (사실 이런 현상은 실제 연주때문인지 마스터링 과정에서 빚어진 것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조금씩 악단과 피아노의 호흡이 어긋나는 듯한 미세한 느낌을 받습니다 .
참, 라흐마니노프 본인을 빼고 이 협주곡의 명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의미하겠죠. 라흐마니노프는 그 자신이 미국무대에서 활약한 대 피아니스트였던 관계로, 꽤 많은 분량의 연주녹음이 남아있습니다. RCA레이블로 나오는 'Rachmaninoff plays rachmaninoff' 시리즈가 대표적이겠고, 그 외 저작권시한이 만료된 녹음들을 군소 마이너레이블에서 복각해 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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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CA redseal로 나온 그의 피아노협주곡 음반은 2번이 레오폴트 스토코프스키와의 협연(1929년 4월10일~13일),3번이 유진 오먼디와의 협연(1939년 12월4일과 1940년 12월24일 연주)으로 되어 있습니다.오케스트라는 둘 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랍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요즘 일반화되어 있는 것보다는 다소 빠른 템포로 곡을 끌고 갑니다. 빠를 때는 상당히 빠르지만 가끔씩 템포를 죽여 장중함을 강조할때는 또 상당히 느린, 속도변화가 큰 해석입니다. 전체적으로 프레이징 처리하는 스타일을 보면 요즘 우리가 듣는 연주들이 작곡가 자신이 그어놓은 틀에서 많이 나가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어 흥미롭습니다.
(다음 글에 계속)
이현식 hyunsik@sb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