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에 돌아온 한 여름 밤의 두칼레 궁전 야외 오페라
베르디 : 오델로

60대에 접어든 쥬세페 베르디는 오페라 작곡을 중단한 사실상의 은퇴상태였는데, 리코르디 출판사의 대표인 줄리오 리코르디는 이 대작곡가가 재능을 허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를 설득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작곡가는 자신이 은퇴를 끝내고 다시 작곡을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자신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훌륭한 대본이 필요하다고 말을 했다.
 
그러던 와중에 1870년 2월 리코르디는 막 오페라 [네로네]의 대본을 완성한 아리고 보이토를 베르디에게 소개하며 이 작품을 오페라로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거절했고, 1871년 2월에는 보이토의 친구인 프랑코 파치오의 [암레토]를 제안했지만 이 또한 신통치 않은 반응을 보였다. 이후에도 여러 번에 걸쳐 새로운 오페라를 제안했지만 계속 거절당하기만 했다. 이 1870년대에 베르디는 유일하게 이탈리아의 대문호인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서거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음악으로 [레퀴엠]을 작곡, 1974년 초연하여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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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1879년 밀라노로 돌아온 베르디는 라 스칼라에서의 [레퀴엠]이 시민들로부터 엄청난 환호를 받는 것을 경험한 자리에서, 1857년에 마지막 개정을 한 [시몬 보카네그라]를 다시 개정하자는 제안을 받으면서 리코르디는 세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오페라로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함께 전달했다.
 
베르디는 1847년에 [맥베스]를 오페라로 옮긴 바 있었고 1865년 파리에서 개정판을 선보였지만 그다지 큰 호응을 받지 못한 바 있다. 그런 까닭에 그는 [리어왕]을 오페라로 옮기고 싶었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만큼 [오텔로] 제의는 그의 흥미를 끌었다. 이렇게 베르디가 관심을 보이자 리코르디는 [메피스토펠레]로 성공을 거둔 보이토를 리브레티스트로 추천하고, 이에 베르디는 [오텔로]를 위한 사전작업이라는 의도와 보이토라는 젊은 음악가의 재능을 시험해 보고자 자신의 [시몬 보카네그라] 개정판 작업을 그에게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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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년 라 스칼라에서 재상연된 [시몬 보카네그라] 개정판이 성공을 거두고 보이토에 대한 신뢰가 생기자 베르디는 [오텔로]를 오페라화하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1881년부터 84년까지 대본작업이 우선 이루어졌고 1884년부터 본격적으로 작곡을 시작했다.
 
당시 유럽은 바그너 악극의 광풍에 휩싸여있을 때로서 이탈리아 또한 바그너의 악극 원리를 신봉하는 젊은 엘리트들이 많았다. 더군다나 그러한 경향의 선봉장이었던 보이토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베르디는 이 [오텔로]를 작곡하는 데에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변화된 모습을 음악에 담아냈다. 일부 등장인물에게 라이트모티브를 부여하거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2막을 연상시키는 듯한 1막 마지막 듀엣, 아리아보다는 쉼 없이 펼쳐지는 드라마의 연속과 오케스트라 사운드의 압도적인 역할 등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베르디는 [나부코]로부터 발화된 자신의 완고한 개성을 억누르고 바그너를 추종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40년 넘게 발전시켜온 이탈리아 오페라의 극적 개념을 70세가 넘어서까지 지켜야 할 이유 또한 없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세익스피어의 희곡을 얼마나 완벽하고 극적으로 오페라화(化)할 수 있는가였고, 이를 위해 새로운 요소들을 과감하게 시도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베르디의 [오텔로]는 온전히 베르디만의 방식과 개성으로 창조된, 이탈리아 오페라의 새로운 미래라고 말할 수 있는 독창적인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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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이탈리아 오페라 양식에서 탈피하여 보다 세익스피어적인, 즉 연극적인 호흡과 극적인 지속력을 유지하기 위해 보이토는 원래 희곡의 1막(베니스에서의 서막과 줄거리의 전제)을 제거하고 그 내용을 1막 마지막 오텔로와 데스데모나의 2중창에 압축하여 배치했다.
 
그리고 베르디의 뜻에 따라 악의 화신인 이아고는 2막에서 독백인 이아고의 크레도가 추가되었다. 운명에 의해 비극으로 치닫는다는 고전적인 설정을 기반으로 각 등장인물들은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리얼한 표현력과 숨가쁜 대화, 격정적으로 변화하는 심정을 토로하는 짧은 오텔로의 아리아와 같은 혁신적인 구성을 통해 이탈리아 오페라는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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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새로운 것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2막 마지막 오텔로와 이아고의 2중창 같은 남성-남성 듀오와 4막 데스데모나의 길고 애절한 데스데모나의 아리아는 베르디 특유의 개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버들의 노래-아베 마리아’는 그 자체로 소프라노의 기량을 돋보이기 위한 화려한 아리아라기보다는 마지막 오텔로의 죽음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기 위해 설계된 구조적, 연극적 장치로서의 의미 또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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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까지 무려 6년 동안 작곡에 매달린 끝에 작곡을 완성한 베르디는 보이토의 대본은 물론이려니와 캐스팅, 의상, 무대, 연출까지 모든 것을 구상하고 리허설까지 직접 참관했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이 작품에 매달렸다. 결국 노 작곡가가 혼신의 힘을 쏟은 [오텔로]는 1887년 2월 5일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을 가졌고 전대미문의 성공을 거두었다.
 
초연시 오텔로역에는 당시의 전설적인 테너인 프란체스코 타마뇨가, 이아고는 빅토르 모렐, 데스데모나역엔 로밀다 판타넬로니가 맡았다. 이전 작품인 [아이다]를 초연(1871)한 지 16년 만에 베르디에게 쏟아진 영광스러운 초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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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자랑하는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그 어떤 오페라보다 [오텔로]에 엄청난 애정과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는 최고의 해석가로 일컬어진다. 2013년 7월, 원작의 배경인 베네치아에서 열린 야외 오페라 [오텔로] 무대는 그 동안 음반과 콘체르탄테로만 접할 수 있었던 정명훈의 [오텔로]를 실제 오페라 무대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두칼레 궁전에서 연주한 이 야외 연주회는 1949년부터 1967년까지 정기적으로 상연되었던 행사로서, 이번 정명훈의 [오텔로] 공연은 무려 50년 만에 부활한 뜻깊은 자리였다. 특히 [오텔로]는 1960년과 1962년, 1966년 세 번에 걸쳐 연주되었던 작품으로서 마리오 델 모나코, 티토 곱비, 마르첼라 포베 등이 무대에 섰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한 만큼 정명훈은 라 페니체 극장 오케스트라로부터 전례가 없을 정도의 극단적인 다이내믹과 처절한 비장미를 강조함과 동시에 베르디 음악으로서의 정묘한 호흡과 연극적인 효과를 강조하는 극한의 디테일을 보여준다. 오래 전에 발매된 바스티유 극장에서의 레코딩(DG)보다 훨씬 원숙해진 해석과 확신에 찬 지휘가 이 베네치아 영상물을 보는 이로 하여금 완전히 극에 몰입하여 주인공에 동화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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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 미켈리의 연출과 에도아르도 산치의 무대, 실비아 아이모니노의 의상으로 올려진 무대는 두칼레 궁전의 안쪽 마당에 설치되었다. 영사기로 건물에 폭풍우 및 밤하늘, 여러 이미지들을 비추어 무대적 효과를 만들었고 그리고 색색의 조명이 아름답고 화려한 두칼레 궁전 건물을 무대 배경으로 고스란히 장식한다.
 
넓은 목조 무대 외에 궁전 건물의 계단과 발코니에도 가수들의 동선이 일부가 이어지며 무대의 일부로 사용되었다. 오케스트라 피트는 무대 앞에 있지 않고 왼쪽 구석에 방사형으로 위치해 있어 관객들이 무대를 보다 가깝게 볼 수 있도록 설치되었다. 연출가 미켈리는 무대 위에 구름다리를 설치하여 주요 인물들이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동선을 마련해 주었고, 다리로 이어진 양쪽의 작은 원형 무대는 각각 심리적 공간 및 실내 공간으로 구분하여 중요한 장면들과 아리아들이 연출된다.
 
성모 마리아 상과 검은 옷의 악마들이 캐릭터들의 심리를 반영하는 미장센으로 등장하는 한편, 데스데모나가 3막 마지막 부분에서 겉옷을 벗고 흰 속옷으로 보이며 죽음과 순결을 은유하는 장면, 2막 마지막에서 오텔로가 하얀 가면을 통해 사랑하는 마음을 질투로 가리는 상징이 이채로움을 더한다. 특히 데스데모나가 죽은 뒤 유령으로 부활하여 미소를 지으며 자결한 오텔로의 영혼과 함께 손을 잡고 퇴장하는 해피앤딩적 연출이 색다른 감흥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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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텔로 역을 맡은 그레고리 쿤데는 2013년 봄 서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정기 연주회 [오텔로] 콘체르탄테에 등장하여 엄청난 화제를 몰고 온 드라마틱 테너다. 도니제티의 [돈 파스콸레]나 로시니의 [젤미라], 벨리니 같은 벨칸토 레퍼토리의 음반과 영상물에서 접할 수 있었던 그가 최근 오텔로 같은 드라마틱 롤로 전향했다는 것이 놀라움을 안겨주었는데, 무엇보다도 빛나는 고음과 탁월한 연기력,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놀라운 지구력으로 오텔로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두칼레 무대에서도 고스란히 조형해 낸다.
 
데스데모나 역의 카르멜라 레미지오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리릭 소프라노로서 이아고로 유명한 알도 프로티를 사사한 뒤 지금까지 많은 오페라 무대와 음반, 영상물에 등장한 연기파 가수다. 그녀는 데스데모나의 이미지를 연약하고 순종적이라기보다는 조금 적극적이고 표현력 강한 성격을 만들어내며 극의 리얼리티를 높이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한편 이아고 역을 맡은 루치오 갈로는 클라우디오 아바도나 리카르도 무티와 함께 하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바리톤으로 명성을 쌓은 베테랑 가수. 사악함의 극단을 단선율적으로 보여주는 것에도 벗어나 어딘지 갈등하고 연민이 깃들어있는 듯한, 그러나 결국 자신의 본성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복합적인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보여준다.

Verdi : OTELLO
노래 : Lucio Gallo
노래 : Carmela Remigio
노래 : Gregory Kunde
노래 : Elisabetta Martorana
지휘 : 정명훈
오케스트라 : Orchestra e Coro del Teatro La Fenice


베르디 : 오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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